신체기능검사 자동화로 항노화 도전하는 ‘디파이’
근감소 크면 회복 ‘불가능’… 노쇠 막는 약은 아직 요원
질환 얻기 전 변화 탐지 중요… 의학자와 공학자 만나 창업
몸 상태 맞는 운동이 ‘최고’… ‘디지털 치료법’도 개발 중
근력은 생명의 동아줄이다. 나이가 들수록 그렇다. 쇠약해져 보행기에 의지해야 하는 상태라면 건강한 노년과 그렇지 못한 노년의 갈림길에 서 있다고 볼 수 있다.
디파이(DYPHI)는 근력 및 신체기능 측정 방법을 자동화한 솔루션으로 개인의 노화를 늦추는 데 도전하는 스타트업이다. 약물에 의존하지 않고 운동으로 그 최적의 개선 방식을 찾는 것에 다가서고 있다. 장기적으로는 식이요법까지 결합해 신체기능 개선 효과를 더 높이고 싶어 한다. 11일 서울 송파구 사무실에서 만난 윤성준 디파이 대표이사(33)는 “근육이 감소해 일상이 힘들어지는 순간은 누구나 맞게 되는 ‘확정된 미래’다”며 “노쇠한 상태에서 근감소가 크면 회복이 불가능한 만큼 몸의 변화를 잘 감지하는 것이 건강한 노년을 위한 첫걸음”이라고 했다.
● 비만처럼 근감소증도 질병
근육 부족으로 일상이 멈추는 순간은 반드시 온다. 이런 상황을 늦추려면 근육과 수명의 관계를 사실적으로 상상할 수 있어야 한다. 근육이 빠지면 걷는 게 불편해진다. 그러면 덜 움직이게 된다. 근육은 더 빠지고 침대에 의지하는 시간은 더 길어진다. 움직이지 않으면 뇌의 인지 기능이 약해진다. 섬망 증상이 나타나기도 한다. 요양병원의 많은 환자들이 섬망 증상을 겪는다. 뇌는 본래 움직임이 많은 생명체에 필요한 기관이다. 심신이 무너지는 출발선에 근육 빠짐이 있는 것이다.
인류는 병이 아니던 비만을 1996년 질환으로 분류해 건강 수명을 늘리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근육이 감소하는 근감소증도 2016년부터 질병으로 분류했다. 우리나라는 2021년 근감소증에 질병코드를 부여했다. 근감소증은 근육의 양과 근력, 신체기능검사 등을 종합해 판단한다.
근감소증 발생 예측에 중요한 노인의 신체기능 테스트는 미국 국립노화연구소(NIA)가 만든 ‘간편신체기능(SPPB) 검사’를 통해 이뤄진다. 1978년에 나온 SPPB 검사는 근감소증 여부와 낙상 위험도 등 노인의 건강 위험도를 예측하는 수많은 연구에서 ‘표준’이 되다시피 한 상태다.
하지만 SPPB 검사는 의사나 간호사가 초시계를 들고 대상자에게 주의를 기울여 가며 측정하는 식으로 진행된다. 디파이는 이를 자동화했다. SPPB 검사가 나온 미국에도 자동화한 검사기기는 없다. 세계에서 유일하다. 윤 대표는 “검사법은 있었지만 의료계에 인력이 부족하다 보니 SPPB 검사를 제대로, 자주, 대규모로 활용하는 데는 어려움이 있었다”며 “이제는 노인복지센터나 요양시설 같은 곳에서도 쉽게 활용할 수 있게 돼 근감소증과 노화와 관련된 연구가 더 활발해질 수 있다”고 했다.
●‘노화’ 측정을 자동화
SPPB 검사의 총점은 12점이다. 3가지 세부검사 각각 4점이 만점이다. ‘정적 균형 검사’는 한 발을 다른 한 발 앞쪽에 붙인 일자 형태로 서 있는 상태를 10초 이상 유지하는 등 세 종류의 서 있기에 모두 성공하면 4점을 받는다. 디파이는 무게 센서를 장착한 발판으로 자동화했다. ‘보행 속도 검사’는 라이다(LiDAR) 센서를 활용했다. 삼각대 위의 센서를 향해 걷기만 하면 속도가 측정(4m 보행에 4.82초 미만 4점)된다. ‘일어서기 검사’에는 라이다 센서와 무게 센서가 적용됐다. 의자 위에 놓을 수 있는 방석에 두 센서를 내장해 착석 여부와 횟수를 자동으로 측정(5회 기립에 11.2초 미만 4점)한다.
측정값을 표시하고 저장하는 앱까지 포함한 세트의 이름은 ‘안단테핏’. 측정 결과 SPPB 점수가 9점 이하면 근감소증이나 낙상 발생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제시하는 식이다. 신체나이 및 노쇠지수(여러 병력 등도 고려해 정상적인 노화보다 더 쇠약해진 정도를 표시)도 함께 추산해 준다. 병원이나 사회복지기관의 공간 활용을 고려해 보관과 이동이 간편한 형태로 개발했다. 윤 대표는 “현재 전국 45개 상급종합병원 중 서울대병원과 세브란스병원, 삼성서울병원 등 25곳 이상에서 안단테핏을 사용 중”이라며 “신체기능을 평가하는 도구로 시장을 선점 중”이라고 했다.
●‘근감소증 디지털 치료기기’도 개발 중
노인 인구 증가는 세계적인 현상이다. MSD와 노바티스, 사노피 등 세계적인 제약기업들은 근감소증이 질병으로 인정되기 전인 2007년부터 근감소증 치료제 개발을 시작했다. 하지만 임상 2상까지 진행했지만 유의미한 결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근육량의 증가에서는 유의미한 효과를 보였지만 신체기능 개선에서는 효과를 확인하지 못했다. 제약업계는 아주 오랜 시간이 더 걸릴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임상적으로 유일하게 검증된 근감소증 치료법은 적절한 운동과 영양을 병행하는 다면적 중재(다양한 접근법과 해결법을 동시에 사용하는 방식)다. 2010년 중반 강원 평창군에서 진행된 노인 대상 코호트 연구는 인상적이다. 의료진이 SPPB 검사 점수가 7점 정도인 노인들에게 적절한 운동을 하게 하고 단백질 음료 등을 6개월간 제공했더니 그 점수가 11점대까지 높아졌다. 노쇠지수도 유의미하게 감소했고, 기관 입소 예방 효과도 유의미하게 나타났다. 윤 대표는 “세계적인 제약사들이 치료제 개발 과정에서 SPPB 점수를 1점도 높이지 못한 것과 비교하면 놀라운 결과”라고 했다.
디파이는 이런 연구들을 바탕으로 앱을 이용해 노인이 근력을 키우고 신체기능을 원활히 할 수 있는 ‘근감소증 디지털 치료기기’도 개발 중이다. 노인의 쇠약 정도를 정확하게 측정해 몸 상태에 맞춘 운동을 지속적으로 할 수 있도록 했다. 스쾃 동작을 할 때 거동이 불편한 이들에게는 벽에 기대서 하거나 의자에 앉았다가 일어나는 동작 등으로 대체해 제시한다. 서울 강서구 치매안심센터와 양천구 노인복지관에서 진행한 실증시험에서는 8∼12주 사이에 온라인 운동만으로 SPPB 점수가 2∼4점 개선되는 효과를 확인했다. 내년에는 상급병원과 임상을 진행할 예정이다. 윤 대표는 “노인들이 휴대전화 사용에 취약할 것이라는 편견이 있지만 적절한 곳에 앱을 고정해 두고, 가족과 자식들의 응원이 있으면 충분하게 잘 활용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했다. 디파이는 치료법을 국내 유명 병원의 노인의학 전문의들과 협업해 개발 중이다.
● 의학자와 공학자들의 의기투합
윤 대표는 KAIST에서 전기 및 전자공학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대학원 재학 당시 같이 공부하던 노현철 박사(기술개발 총괄)와 정희원 박사(임상 총괄·서울아산병원 노년내과 임상조교수) 등과 창업했다. 노 박사는 로봇공학으로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정 박사는 서울대 의학 학사와 석사 학위를 받고 KAIST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윤 대표는 “정 박사님으로부터 초시계로 신체기능을 측정한다는 얘기를 듣고 창업 아이디어 경진대회에 이를 개선한 시제품을 만든 것이 창업의 출발이 됐다”고 했다.
디파이의 안단테핏은 2021년에 나와 국내에서는 병의원과 한방병원, 노인복지기관 등으로 서서히 공급을 확대하고 있다. 우리보다 이른 2018년에 근감소증을 질병으로 인정한 일본에서는 신체기능지표를 활용해 돌봄 계획을 세우고 평가를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신체기능지표를 개선한 노인 돌봄 기관에는 가산 수가를 주는 방식으로 예산 집행의 효율을 높이고 있다. SPPB 점수를 아날로그 방식으로 재던 일본 후쿠이(福井)현 에치젠(越前)시의 한 요양시설은 올해 2월 안단테핏을 도입했다. 디파이는 일본 진출을 확대할 계획이다. 윤 대표는 “돌봄 산업이 단순 요양을 넘어서 기능 회복을 제공할 수 있도록 하는 데 기여하는 기업이 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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