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각국은 의약품과 의료기기, 식품 등을 국민들이 안전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다양한 장치를 마련하고 있다. 국제기구들은 이러한 장치를 조화롭게 하기 위해 공통된 기준을 만드는 데 많은 공을 들인다. 국제적인 공통 기준을 제정하려면 높은 수준의 과학적 근거가 요구되고, 이를 실제 산업현장에 적용하는 과정에서 많은 비용이 든다. 이런 이유로 국제 공통 기준에 가입할 수 있는 국가는 제한적이며, 그래서 이러한 기준은 소위 ‘선진국들만의 리그’로 여겨진다.
최근 우리나라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세계보건기구(WHO)의 우수 규제기관 목록(WLA)에 세계 최초로 등재됐다는 반가운 소식을 접했다. WLA는 세계보건기구가 각 국가의 의약품 및 백신 규제기관의 시스템과 업무 수행 능력을 평가, 선정한 ‘우수 의약품 규제기관’을 뜻한다.
WHO는 미국, 영국 등 36개국으로 구성된 기존 우수 규제기관 국가 목록(SRA)을 WLA로 대체하는 작업을 3년 전부터 추진해 왔다. 식약처는 WLA 등재에 팔을 걷어붙였고 그 결과 스위스, 싱가포르와 함께 세계 최초로 이름을 올리는 영예를 안았다.
이번 소식은 식약처 차원의 낭보를 넘어 국내 제약바이오산업계에도 각별한 의미가 있다. 우리나라 제약바이오산업은 과감한 투자를 바탕으로 성과가 가시화되고 있다. 한국제약바이오협회에 등재된 파이프라인은 2100여 개로, 급증 추세다. 최근에는 블록버스터급 매출이 기대되는 의약품을 무기로 세계시장 진출에 속도를 내고 있고 대규모 기술 수출 소식도 잇따르고 있다.
기업들이 해외시장에 진출하기 위해선 나라마다 달리 적용되는 규정 등 이중, 삼중의 장벽을 넘어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이런 점을 고려할 때 식약처의 WLA 등재는 선진 규제 기관으로 공인받음으로써 실질적으로 매우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올 것이다.
우선 유엔 산하기관에 의약품·백신을 공급하기 위해 받아야 하는 사전품질인증 절차가 생략될 것으로 보인다. 또한 우리나라 의약품을 수입하는 국가의 인·허가 절차가 간소화될 것으로 전망됨에 따라 의약품·백신의 수출이 한층 수월해질 것으로 본다.
WLA 등재는 의약품뿐만 아니라 K브랜드, 즉 한국에 대한 신인도 제고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경제적 가치를 넘어 ‘신뢰’라는 무형자산의 가치를 높인 값진 성과다. 우리가 강점을 갖고 있는 반도체, 자동차, 조선 등에 이어 제약바이오산업이 글로벌 선두 그룹으로 올라설 수 있는 국제적 신뢰를 확보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경제성장과 국민 건강에 기여하는 제약바이오 산업에 대한 기대감이 매우 높다. 정부는 ‘바이오·디지털헬스 글로벌 중심국가 도약’을 핵심 국정 과제로 천명, 바이오헬스 신시장 창출 전략, 제3차 제약바이오산업 육성·지원 5개년 종합계획, 바이오헬스혁신위원회 출범 등을 통해 산업 육성 기조를 구체화하고 있다.
산업계 역시 국민적 지지에 부응해 부단한 연구개발을 바탕으로 세계시장에서 글로벌 빅파마들과 경쟁할 수 있는 역량을 키우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혁신적 연구개발을 수행할 수 있는 생태계를 구축하고 안정적으로 의약품을 공급할 수 있는 기반을 다져나가고 있다. 제약바이오산업계의 혁신과 도전,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정부의 역량이 어우러지는 민·관 협력의 여정이 ‘세계 6대 제약바이오강국’ 실현으로 만개할 날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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