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위복(轉禍爲福)이란 게 이런 것인가. 보트를 타다 사고로 허리 압박 골절 및 분리 진단을 받고 2년 가까이 고행하다 근육 운동을 시작해 완전히 새로운 삶을 살고 있다. 대한민국 전통 악기 해금을 중학교 1학년 때부터 연주해 이화여대에서 학사 석사까지 전공했던 그가 어느 순간 보디빌딩 트레이너로 변신한 것이다. 프리랜서 해금 강사이자 보디빌딩 트레이너인 한민지 씨(40)는 웨이트트레이닝 덕분에 건강하고 활기찬 삶을 살고 있다.
“2018년 경기 청평으로 보트를 타러 갔을 때 허리를 다쳤어요. 보트를 정박할 때 운전 미숙으로 다른 보트랑 부딪혔죠. 허리에 압박 골절 및 분리 진단을 받아서 2달 병원에 누워있었어요. 퇴원하고도 통증이 너무 심해 1~2년은 제대로 된 생활을 못하고 거의 누워있다시피 했죠. 그러던 중 재활 담당 의사 선생님이 제대로 근육 운동을 하라고 조언해 시작했습니다.”
건강을 위해 요가나 필라테스를 하긴 했지만 운동을 본격적으로 한 것은 처음이었다. 처음엔 헬스클럽에서 혼자 근육을 키웠는데 소득이 없었다. 2021년 말부터 전문트레이너에게 배웠다. 그러자 몸이 달라졌다. 바짝 말랐던 몸이 탄탄해졌다. 웨이트트레이닝을 본격 시작한 뒤 거의 매일 하루 3시간 이상 운동했다. 1시간은 유산소, 2시간은 근육 운동에 할애했다.
웨이트트레이닝으로 근육을 키울 때 달리기 등 유산소 운동은 필수다. 체내 지방을 태우며 근육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마른 사람도 복부 등에 지방이 있을 수 있다. 한 씨는 러닝머신 위를 달렸고 인터벌트레이닝(Interval Training)도 했다. 인터벌트레이닝은 일정 강도의 운동과 운동 사이에 불완전한 휴식을 주는 훈련 방법이다. 예를 들어 100m를 자기 최고 기록의 70%에서 최대 90%로 달린 뒤 조깅으로 돌아와 다시 100m를 같은 강도로 달리는 것을 반복하는 훈련이다. 인터벌트레이닝을 하면 에너지 소비가 많다. 운동 생리학적으로 강도 높은 훈련과 불완전 휴식을 반복하면 그 자체로 엄청난 체력을 소비하게 된다.
한 씨는 유산소 운동으로 등산도 시작했다. 북악산과 인왕산, 북한산, 아차산 등 수도권 산을 주로 올랐다. 한 씨는 근육 운동을 지속적으로 한 뒤 41kg까지 떨어졌던 체중이 51kg까지 올랐고 계속 유지하고 있다. 근육 운동으로 근육량이 늘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웨이트트레이닝으로 근육을 키우면 근육량이 증가해 체중이 증가한다. 운동 생리학적으로 웨이트트레이닝을 열심히 하면 운동으로 인한 에너지 소비와 근육량이 증가해 대사량이 높아져 다이어트 효과도 볼 수 있지만 마른 체형의 경우엔 체중을 증가시킨다. 물론 규칙적으로 근육 운동을 하며 적당한 영양분을 섭취해야 한다. 한 씨는 먹는 것에 민감해 하던 과거와 달리 이젠 가리지 않고 먹는다.
“늘 달고 살았던 허리 통증도 어느 순간 사라졌어요. 체중도 늘고 입맛도 좋아졌죠. 제가 건강하다는 것을 느끼니까 근육 운동을 더 열심히 하게 됐죠. 거의 헬스클럽에서 살다시피 했습니다.”
근육은 부상을 막고 통증도 없애준다. 김용권 전주대 운동처방학과 객원교수(전주본병원 본스포츠재활병원 대표)는 “근육은 우리 몸에서 지렛대 역할을 하는 뼈를 바르게 잡아주는 역할을 한다. 근육이 조화롭게 발달돼 있으면 뼈도 제 위치에 있어 관절 부상 위험도 없어진다. 한 씨가 허리 압박 골절 및 분리 증상에서 회복될 수 있었던 배경이다. 김 교수는 ”관절을 잡아주는 근육의 경우 힘의 밸런스가 깨지면 관절이 맞닿게 돼 염증이 생긴다. 퇴행성관절염이 생기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척추 협착 등 디스크도 근육 강화로 통증을 막을 수 있다. 김 교수는 ”허리 협착으로 통증이 오면 근육이 과긴장(근섬유 단축)을 해 관절 면이 좁아지면서 디스크를 압박해 통증을 강화한다. 이땐 근육을 풀어줘야 하는데 스트레칭 체조도 좋지만 허리와 목 등을 강화하는 근육 운동이 더 효과적이다“고 말했다. 그는 ”근력이 강화되면 뒤로 밀려나는 디크스를 막아 통증을 없애준다. 근력 강화로 인한 통증 완화는 근력의 힘으로 신경 눌림 현상을 막아주는 것이지 협착이 없어진 것은 아니다. 꾸준한 근력운동이 필요하다“라고 설명했다.
한 씨는 근육을 본격 만들기 시작하면서 대회 출전이란 목표를 정한 게 주요했다고 했다. 그는 “목표가 있으면 더 열심히 할 것 같았다. 나만의 도전이었다”고 했다. 한 씨는 지난해 5월 대전지역 보디빌딩 미스터&미즈 코리아 대회에 출전해 비키니피트니스 165cm 이하에서 3위를 차지했다. 비키니피트니스는 다른 종목에 비해 상대적으로 근육질을 덜 강조한다. 근육과 여성성의 조화를 중시한다. 그는 올해도 대전지역 보디빌딩 미스터&미즈 코리아 대회에 출전해 비키니피트니스에서 3위를 차지했다.
“사실 전 깡마른 체격이었죠. 근육이 붙으니까 기분이 좋아지는 겁니다. 활기차고 자신감도 생기고…. 과거엔 걱정도 많았는데 어느 순간 뭐든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죠. 이건 걸 전화위복이라 하나요? 다쳤을 땐 너무 절망했죠. 움직이는 거 자체가 고욕이었어요. 오래 쉬다 보니 해금 지도하는 일도 다 끊겼죠. 그런데 근육 운동을 하면서 새로운 인생이 시작된 겁니다.”
한 씨는 몸이 건강해지면서 다시 해금을 가르치고 있다. 국악 창작그룹 ‘화연’에서 연주도 한다. 지난해부터 준비해 올해 보디빌딩 생활체육지도자 자격증도 획득했다. 그는 “웨이트트레이닝이 너무 재밌고 좋은 운동이라는 것을 체득한 뒤 다른 사람들에게도 알려주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자격증을 따기 위해 운동 생리학과 해부학 등을 공부하면서 보디빌딩의 원리에 대해서도 더 잘 이해하게 됐다”고 했다. 한 씨가 요즘 유행하는 속칭 ‘N 잡러(여러 직업을 가진 사람)’가 된 것이다. “친구들도 요즘의 절 보면 다 놀라요. 체육을 싫어했던 애가 체육인이 됐다고 하죠. 또 뼈밖에 없던 애가 탄탄하게 바뀌었다고 해요.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는 절 알아보지도 못해요. 그러면서 저에게 어떻게 운동해야 하냐고 물어보죠.”
해금 연주와 보디빌딩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 한 씨는 “언뜻 보기에 완전 다른 분야인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둘 다 꾸준히 해야 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하루 이틀만 안 해도 연주가 달라지고 몸이 달라진다. 몸이 건강해지니 해금 연습과 연주가 더 쉬워졌다. 과거엔 쉽게 지쳤는데 이젠 그렇지 않다”고 했다. 한 씨는 낮 12시 전후에 웨이트트레이닝으로 몸을 단련한다. 오전 오후 및 저녁 시간엔 해금 강의나 보디빌딩 트레이너로 활동하고 있다.
“제가 말랐을 땐 39kg까지 내려간 적이 있었어요. 지나치게 예민했고 스트레스받으면 식욕도 없어졌죠. 지금은 어떤 스트레스에도 흔들리지 않아요. 근육 운동이 제 삶을 완전히 바꿨습니다.”
한 씨는 초보자들에게 “즐기며 운동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 정말 운동이라는 것을 처음 했어요. 그래서 욕심을 버리고 차근차근 천천히 했고, 즐기려고 마음먹었습니다. 자신의 몸에 맞게 단계적으로 운동하면서 웨이트트레이닝 그 자체를 즐기면 좋습니다. 그럼 몸이 좋아지고, 그 맛에 더 열심히 하게 됩니다. 제가 그랬거든요. 여러분도 해보세요. 인생이 달라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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