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에 단 4차례 열리는 남자 골프 4대 메이저대회(마스터스, US오픈, PGA챔피언십, 디 오픈)는 모든 골퍼들에겐 ‘꿈의 무대’다. 엄격한 자격조건을 통과한 세계 최고의 선수들만이 이 대회들에 초청받는다.
그런데 한국 선수 중 유일하게 메이저대회 평생 출전권을 가진 선수가 있다. 제주 출신의 ‘바람의 아들’ 양용은(52)이다.
양용은은 2009년 열린 PGA챔피언십에서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미국)를 꺾고 아시아 선수 최초로 메이저대회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양용은은 대회 우승자 자격으로 자신이 원하면 언제나 이 대회에 출전할 수 있다.
미국프로골프(PGA)투어 일반 대회 우승도 쉽지 않지만 메이저대회 우승은 ‘하늘의 별 따기’만큼 어렵다. 김주형, 임성재, 김시우 등 후배 선수들이 종종 PGA투어에서 우승했지만 아직 메이저대회 우승과는 인연을 맺지 못했다. 양용은 이후 아시아 출신 메이저대회 챔피언은 2021년 마스터스를 제패한 마쓰야마 히데키(일본)가 유일하다.
메이저대회 우승자들은 이듬해 역대 챔피언들을 모아 식사를 대접하는 ‘챔피언스 디너’ 행사를 연다. 양용은 역시 매년 PGA챔피언십 챔피언스 디너의 초청대상이다. 사정이 있을 때를 제외하곤 근사한 정장을 차려입고 행사에 참여해 왕년의 챔피언들과 옛이야기를 나누곤 한다. 양용은은 “매년 15~20명 안팎의 챔피언들이 행사에 참여한다. 예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내가 유일한 아시아 출신이다. 그런 점에서 뿌듯한 마음이 있다”고 했다.
양용은은 골프를 늦게 시작했다. 집안 사정이 넉넉지 않았던 그는 고교 때 학비라도 아낄 생각에 보디빌딩을 했다. 하지만 성적은 신통치 않았고 대학 진학도 꿈꾸기 어려웠다. 일찌감치 생활 전선으로 뛰어든 그는 건설 현장에서 일하다가 다리를 다치기도 했고, 나이트클럽 웨이터로 일하기도 했다.
단기사병으로 군대를 다녀온 후 생활비라도 벌어볼 요량으로 자리를 잡은 게 골프 연습장이었다. 숙식을 제공하는 제주의 한 골프 연습장에서 골프공을 줍고 각종 뒤치다꺼리를 하며 독학으로 골프를 익혔다. 어깨너머로 프로들의 샷을 배우고, 비디오테이프를 돌려보며 하루 12시간씩 공을 때렸다. 그는 “돌이켜보면 PGA투어 3승을 거둔 김주형 나이에 골프를 시작했던 것”이라며 “늦은 나이에 시작했지만 당시만 해도 국내 선수층이 그리 두텁지 않았다. 어쨌든 잘 견뎌내고 프로가 될 수 있었다”고 했다.
1996년 프로에 데뷔한 뒤 그는 ‘야생마’처럼 전 세계를 돌았다. 2002년 한국프로골프(KPGA) 코리안투어 SBS프로골프 최강전에서 우승한 뒤 일본으로 건너가 5승을 거뒀다. 유럽 투어에서도 2승을 거뒀다. 그리고 꿈에 그리던 PGA투어에 진출해 2009년 혼다클래식에서 첫 우승을 거뒀고, 그해 PGA챔피언십을 제패하며 커리어의 정점을 찍었다.
그는 “한국과 일본은 이동은 편하지만 아무래도 시장이 그리 크지 않다. 유럽은 대회 환경은 좋지만 이동하는 게 쉽지 않다. 유럽 각국을 쉴 새 없이 다녀야 하는데 한국 식당도 찾기가 힘들다”며 “역시 가장 좋은 건 PGA투어다. 물론 거의 매주 이동해야 하지만 잘 치는 만큼, 또 노력한 만큼 보상과 성취를 누릴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양용은은 2022년부터 50세 이상의 선수들이 출전하는 PGA 챔피언스투어를 주 무대로 뛰고 있다. 지난 2년간 52개 대회에 출전해 52번 모두 컷을 통과했다. 준우승 1회, 톱5 5회, 톱10 11회 등 꾸준히 좋은 성적을 올리고 있다. 그는 “PGA투어가 모든 게 번잡한 대도시의 느낌이라면 PGA 챔피언스투어는 한가롭고 여유로운 시골 분위기가 난다. 오랫동안 함께 했던 선수들과 플레이하니 한결 편안하고 분위기가 좋다”고 했다.
하지만 이 무대 역시 승부의 세계다. 베테랑들도 우승컵을 두고 치열한 경쟁을 하는 건 마찬가지다. 지난 시즌 124만 달러(약 16억 원)의 상금을 벌어 이 부문 15위에 오른 양용은은 “새해에는 꼭 한 번 우승을 해보고 싶다. 상금 순위도 10위 안으로 끌어올리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사실 당장 은퇴해도 괜찮은 나이이긴 하다. 하지만 아직도 골프가 너무 재미있다”며 “언제까지 골프 선수로 살 수 있는 건 아니다. 그전까지, 힘닿는 데까지 열심히 해보자는 생각”이라며 웃었다.
새 시즌을 앞두고 양용은은 요즘 미국 집이 있는 하와이에서 체력을 키우고 있다. 그가 하와이에 집을 마련한 건 7, 8년 전이다. PGA투어 뿐 아니라 한국, 일본, 유럽 등을 고루 다니기 좋은 장소를 찾다가 하와이에 터를 잡았다. 그는 “무엇보다 이곳 날씨가 너무 좋다. 한겨울에도 기온이 20도 이상 올라갈 정도로 따뜻하다. 체력을 키우고 샷 연습을 하기에 좋다. 은퇴 이후까지 고려한 결정이었다”고 했다.
그는 요즘 사흘 훈련, 하루 휴식 일정으로 훈련을 진행하고 있다. 훈련일엔 체력훈련과 샷 연습을 번갈아 한다. 오전에 체력 훈련을 하면, 오후에 필드에 나가는 식이다.
가장 공을 들이는 건 역시 체력 훈련이다. 50대가 되면서 근력이 예전 같지 않은 걸 몸으로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고교 때 잠시 보디빌딩을 했던 그는 한때 고중량 웨이트트레이닝을 했다. ‘3대 500(스쾃, 데드리프트, 벤치프레스 중량을 합쳐 500kg의 무게를 드는 것)’까지는 아니지만 ‘3대 300’정도는 가뿐히 해냈다. 하지만 그 여파 때문인지 10년 전쯤 목 부위에 큰 부상이 왔다.
그는 “나도 모르게 무게 욕심이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지금은 무게는 줄이고 횟수를 늘리는 방식으로 운동을 한다. 중년 이후의 나이에서는 근력을 키우는 것보다 유지만 해도 괜찮은 것 같다”고 했다.
한 때 벤치프레스로 80kg이상을 한 번에 10~12회씩 들어 올렸던 그는 요즘은 30~40kg 정도의 무게를 든다. 대신 3, 4세트를 하던 걸 5, 6세트로 늘렸다. 스쾃이나 데드 리프트 역시 마찬가지다. 그는 “확실히 몸에 무리가 덜 가면서도 운동 효과는 뛰어나다”고 했다.
몸무게도 7kg가량 줄였다. PGA투어에서 뛸 당시 90kg에 육박하던 몸무게가 지금은 83kg정도 나간다. 그는 “딱히 음식을 가려 먹거나 하진 않는다. 하루 세끼를 먹고 저녁에는 고기와 생선 등을 골고루 먹는다”며 “다만 튀김 음식과 탄산음료 등은 가능한 한 입에 대지 않으려 한다. 전체적인 먹는 양도 좀 줄였다”고 말했다. 그는 “나이가 들수록 체중 관리는 계속 하는 게 좋다는 걸 느끼고 있다”며 “90kg였을 때는 필드를 걸을 때 발바닥이 종종 아프곤 했는데 체중이 줄어든 후에는 발바닥 통증이 씻은 듯이 사라졌다”고 말했다.
양용은은 2월 중순 시작되는 새 시즌을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다. 빡빡한 일정에 나흘 경기가 기본인 PGA투어와 달리 PGA챔피언스 투어는 상대적으로 경기 수도 적고 사흘 경기가 기본이라 한결 여유롭다. 예전에는 시간에 쫓겨 비행기를 타고 이동하곤 했지만 지금은 아주 먼 거리가 아니면 아내와 함께 자동차로 대회장엔 간다. 그는 “다섯 시간 안쪽이면 대개 차를 운전해 대회장에 간다. 아내와 교대로 운전하며 더 긴 자동차 여행을 하기도 한다. 작년엔 차로 14시간을 이동한 적도 있다”고 했다.
그는 “언제까지 선수 생활을 이어갈지 모르겠지만 현재로서는 60세까지는 투어를 다닐 것 같다”며 “그때까지는 집중해서 선수 생활을 하고 이후에 새로운 계획을 세워볼 것이다. 지금도 여전히 골프장에 가는 게 즐겁고 재미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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