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2년 MBC 대학가요제에서 숙명적인 이별의 아픔을 노래한 ‘참새와 허수아비’로 대상을 수상한 가수 조정희 씨는 20여 년 전부터 산을 타기 시작해 히말라야 등 세계의 명산까지 누비며 건강한 삶을 만들어가고 있다.
“2003년 등산 마니아인 지인의 산행 초대로 월악산(충북) 제비봉에 올랐어요. 평소 피트니스센터에서 운동을 하고 있어 체력에는 자신이 있었는데 하산 때부터 다리가 너무 아픈 거예요. 그래서 정형외과 전문의를 찾았더니 안 쓰던 근육을 갑자기 써서 그렇다고 하더군요. 그때 등산이 전신 운동이라는 것을 확실히 알게 됐어요.”
산 사랑의 시작이었다. 보통 힘들면 다시 산에 안 갈 수도 있었지만 그는 달랐다. 산이 그를 불렀다. 그는 “그때 만약에 제가 아프다고 포기했다면 오늘의 저는 없었을 것이다”고 했다. 가수 생활을 뒤로하고 결혼한 뒤 아이들 육아에 집중했고, 30대 중반부터 헬스로 몸을 만들던 그였다. 먼저 집에서 멀지 않은 청계산과 대모산을 시작으로 북한산, 북악산, 인왕산 등 수도권 산을 올랐다. 그리고 설악산, 지리산. 한라산 등 전국의 명산도 탔다. 주 4일을 등산할 만큼 열심이었고 지금도 시간이 허락되면 주 2~3일 산에 오르고 있다.
“산을 타면서 더 건강하고 단단한 몸을 선물로 받았어요. 우리가 누릴 수 있는 자연 가운데 저는 산이 가장 좋습니다. 말없이 받아주는 그 넉넉한 품이 늘 그립습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4계절 다른 느낌을 주는 아름다운 산길을 걷다 보면 절로 탄성이 나옵니다. 1월 산행을 15회 갈 정도로 겨울 산을 좋아합니다. 여름엔 적당한 우중 산행도 즐깁니다. 살갗에 빗물이 부딪히고 빗줄기를 보며 걷는 그 맛은 경험하지 않으면 모릅니다. 힘들지만 피톤치드를 흠뻑 마시며 산행을 마치고 나면 제 몸이 말합니다. ‘너무 좋다’고.”
조 씨는 지난해 말 병원을 찾아 골밀도 검사를 했는데 허리 T스코어(측정된 골밀도를 건강한 젊은 성인의 평균과 비교해 표준화한 점수)에서 +1.5로 나왔다. T스코어 -1.0 이상이면 정상, -1.0 미만에서 –2.5 초과는 골감소증, -2.5 이하는 골다공증으로 정의하는데 그보다 훨씬 좋게 나온 것이다. 그는 “4년 6개월 전 검사 때보나 수치가 더 좋아졌다. 의사도 젊은 사람보다 더 좋다며 놀랐다”고 했다. 백대현 방배성모정형외과 원장은 “등산은 햇볕을 맞으면서 하기 때문에 골 생성에 필수인 비타민D가 합성되고, 지속적인 산행으로 뼈를 자극 함으로써 골밀도를 높인다”고 했다. 인바디 측정 결과 근육량도 늘고 있다. 체중도 55kg을 꾸준히 유지하고 있다.
모 라디오 프로그램을 진행하던 2010년대 중후반엔 정기적인 산행이 쉽지 않았다. 방송을 그만두고 2018년부터 다시 본격적으로 산행에 나섰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확산한 2020년 초부턴 ‘산악인’으로 거듭났다. 그는 “헬스클럽 등이 다 막혔고 산이 유일한 해방구였다”고 했다. 코로나19가 잠잠해지면서 해외로 눈을 돌렸다. 조 씨는 “당초 2019년부터 해외 산행을 준비했는데 코로나19 확산하면서 가지 못했다”고 했다. 2022년 11월 히말라야 안나푸르나 트레킹과 피케이피크를 오른 뒤에는 강한 성취감을 얻었다.
“히말라야는 산을 오를수록 신비로움에 휩싸여요. 네팔의 작은 에베레스트로 불리는 피케이피크에서는 히말라야의 고봉들을 한눈에 볼 수 있어요. 정말 환상적이죠. 그런데 히말라야는 전기와 난방, 화장실 등 생활 환경이 열악해요. 산을 오르면서 고산병도 극복해야 하죠. 그런 여건에 적응하고 극복하면서 정신적으로도 크게 성장했어요. 경이롭고 위대한 자연 앞에서 저 자신이 손톱만큼의 점도 안 되는 존재임을 느끼며 겸손도 배웠어요.”
“산을 타면서 비움의 철학도 배웠어요. 가치와 관점이 이동됐다고 할까요. 살면서 가치를 두는 기준이 달라졌어요. 같은 상황이라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관점의 변화가 생기는 것 같습니다. 힘든 산을 오르고 또 오르면서 호연지기는 물론, 정신적 물질적으로 스스로 슬림화하고 싶다는 생각이 강해지더라고요.”
조 씨는 “산행과 신앙은 닮아 있다”고 했다.
“저는 기독교인입니다. 살아가면서 누구도 어려움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죠. 산행과 신앙은 모두 스스로를 다스리고 이겨내야 한다는 점에서 서로 닮아있는 것 같습니다. 산을 오르는 건 힘든 일입니다. 도전하며 고통을 이겨내는 산행을 통해서 마음의 근육을 얻게 되는 것 같습니다.”
조 씨는 지난해 4월엔 남아프리카공화국에 있는 두 명산 테이블마운틴과 라이온스헤드를 올랐다. 5월엔 미국 미네와스카 주립공원 샤완겅크산에도 갔다. 7월엔 ‘버킷리스트’였던 노르웨이 3대 피오르와 로포텐제도 트레킹을 다녀왔다. 그는 “전 바위산을 좋아하는데 3대 피오르 중 하나인 셰라크 볼텐 트레킹 코스가 가장 좋았다. 흙과 나무가 거의 없는 화강암 바위산이다. 절벽 사이에 낀 바위가 절경인데 정말 인상적이었다”고 했다.
국내 산 중에서도 바위가 많은 설악산을 좋아한다.
“우리나라 산은 다 좋아요. 그중 설악산은 그 깊이와 웅장함이 우릴 푸근하게 품어주잖아요. 공룡능선, 한계령, 오색약수 코스 등 설악산 코스는 다 좋아요. 저는 바위가 주는 느낌이 좋아요. 바위의 기운이랄까? 신발이 바위에 닿는 느낌이 좋고, 바위산은 깨끗해요. 정상이나 큰 너럭바위가 있으면 한참을 머물며 바위를 느끼는 것을 좋아합니다.”
산행은 지인들과 함께한다.
“저는 되도록 혼자 산에 가진 않아요. 만일의 사고에 대비해서도 혼자 산에 가는 것은 위험하지요. 또 단체 산행보다는 서너 명이 가는 산행을 선호합니다. 산행은 긴 시간 함께 하잖아요. 정말 힘든 상황에서 거의 극기 훈련 같을 때도 있어요. 그때 자신을 다 노출할 수밖에 없지요. 서로를 이해해주는 배려심이 필요합니다. 그런 좋은 사람들과 아름다운 산을 오르는 것 자체가 즐거움이고 행복이라고 생각합니다.”
등산을 하면서도 헬스도 계속 즐긴다. 힘들게 산을 오른 다음 날 스트레칭을 하고 달리고 나면 몸이 훨씬 개운하다. 그는 “운동을 하는 건 우리가 매일 밥 먹고 숨 쉬는 거와 같다. 그러니까 그걸 안 하고서 어떻게 우리가 건강하기를 바랄 수 있겠나. 건강하게 살기 위해 운동은 꼭 필요하다”고 했다.
등산을 즐기며 폐활량이 좋아져 노래할 때 큰 도움이 된다고 했다. 그는 “지난해 7월 노르웨이 산행을 마치고 왔는데 모 방송에서 출연 요청이 왔다. 한동안 노래를 부르지 않아 망설였는데 노래방 가서 불러보니 호흡이 예전보다 좋아져 출연을 결정했다”고 했다.
대학가요제는 왜 나갔을까?
“제1회 대학가요제 대상 수상곡 ‘나 어떡해(샌드페블즈)’를 듣고 신선한 충격을 받았어요. 이후 매년 이어지는 대학가요제를 보면서 대학에 가면 꼭 나가야겠다고 마음먹었어요. 노래를 잘하고 좋아했던 저에게 대학가요제 출연은 자연스러운 일이었어요.”
왜 가수로 활동하지 않았을까?
“대상을 받은 뒤 대학 축제에 불려 다녔고, 방송 출연, 음반 발매 제안 등 큰 기회가 제게 왔죠. 그런데 어린 마음에 감당하기 버거웠어요. 대학가요제는 노래를 잘하고 좋아하는 대학생이면 출전할 수 있었기 때문에 나간 것입니다. 이것을 가수가 되기 위한 등용문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어요. 어떤 방송 프로그램 녹화에 갔는데 아침 9시부터 밤까지 리허설을 했어요. 종일 기다렸다가 노래했다를 반복했어요. 굉장히 힘들었어요. 음악 하는 건 좋았는데 이걸 직업으로 삼는 건 자신이 없었어요.”
조 씨는 남은 학업(산업디자인)을 마쳤고 졸업한 뒤 얼마 후 결혼했다. 그는 세 아이의 출산과 육아, 학업 뒷바라지에 온 힘을 기울였다. 모 대학에서 신문방송 석사 과정도 마쳤다. 음악과 방송에 대한 완전연소되지 않은 그리움을 순간순간 느끼고 있다. 또 ‘참새와 허수아비’를 기억하고 애정하는 고마운 팬들에게 어떻게 보답을 할지 고민 중이라고도 했다. 건강한 미래를 위해 그는 지속적으로 산을 타고 있다.
“등산은 실력이 아니라 의지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전 아주 심하지 않으면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산행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영국의 등반가 조지 말로리가 ‘거기 산이 있으니 간다’고 했지요. 저도 그래요. 산이 좋습니다. 늘 순수와 열정, 진정성 이런 단어들을 마음에 담고 살아가려 합니다. 산을 오를 때도 그렇고요. 100세 시대, 국민 여러분께서도 산과 더욱 친해져서 산이 갖고 있는 그 여여함의 힘을 늘려나가는 2024년이 되길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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