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어느 날이었어요. 나중에 ‘삼둥이 아빠’로 유명해진 배우 송일국 씨가 철인3종 대회에 출전해 완주하는 모습을 방송을 통해 보게 됐어요. 당시 저는 무릎이 아파 운동을 못하고 있었죠. 그때 ‘저 배우도 하는데 난 뭐지?’라는 생각을 하면서 저도 시작하겠다는 마음을 먹었습니다.”
반도체 개발 및 설계 전문 업체 라온텍의 김보은 대표(55)는 2010년 배우 송일국 씨(53)가 트라이애슬론(철인3종) 대회를 완주하는 모습을 보며 ‘나도 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수영은 대학 시절 배웠고 사이클만 타면 마라톤은 어떡하든 완주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축구 명문 부산 동래고 다닐 때부터 축구를 즐겼고, 대학 때부턴 등산도 했기 때문에 운동엔 자신이 있었다. 다만 2005년 다친 왼쪽 무릎 연골이 문제였다.
“등산과 축구, 농구 등을 하다 연골이 파열돼 수술을 받았어요. 6주 목발을 짚고 다닐 정도로 큰 부상이었죠. 의사는 과격한 운동은 아예 하지 말라고 했어요. 솔직히 약간 언덕만 올라도 통증을 느껴 운동은 꿈도 못 꿨어요. 수술 후 5년 동안 운동을 안 하고 살다 보니 인생이 너무 무료했습니다. 그런데 우연히 TV에서 송일국 씨가 철인3종을 완주하는 것을 보며 ‘무릎이 아파도 한 번만 도전해볼까?’라는 생각을 했죠.”
경기도 성남 분당철인클럽에 가입해 수영과 사이클에 집중했다. 무릎 때문에 달리기는 거의 하지 않았다. 그런데 어느 순간 7km를 달려도 통증이 없었다. 2010년 10월 통영트라애슬론월드컵 대회 올림픽코스(수영 1.5km, 사이클 40km, 마라톤 10km)에 출전해 3시간 8분 13초에 완주했다. 10km를 달렸는데 무릎이 아프지 않았다. 그는 “수영하고 사이클 타면 무릎에 무리를 주지 않으며 주변 근육을 키워 무릎관절에 도움이 된다는 것을 그때 알았다. 왜 이런 얘기를 의사들은 안 해줬는지 좀 아쉬웠지만 고장 난 무릎을 철인3종 덕분에 돌려받아 너무 기뻤다”고 했다.
얼마 안 돼 철인3종 하프코스(수영 1.9km, 사이클 90km, 마라톤 21.0975km)에도 도전해 완주했다. 2011년 서울마라톤 겸 동아마라톤 풀코스에서 4시간 56분 39초를 기록했다. 발톱이 4개 빠지긴 했지만 이번에도 무릎이 아프지 않았다. 그해 7월 그레이트맨 아산에서 아이언맨(철인) 코스(수영 3.9km, 사이클 180km, 마라톤 42.195km)도 완주했다. 16시간 35분 56초. 철인3종 올림픽코스부터 시작해 마라톤 풀코스, 철인3종 철인코스 완주를 9개월 안에 다 이뤄냈다.
“철인코스 첫 완주 때 비가 많이 왔죠. 양쪽 발바닥이 물집으로 엉망이 됐고 발톱도 6개나 빠졌어요. 그런데 그 고통을 참고 완주했을 때 ‘아 이런 것을 인간이 할 수 있구나’는 생각을 했어요. 물론 자신감도 얻었죠.”
김 대표는 2011년 8월 목포철인3종대회 철인코스에서 15시간 42분 32초의 개인 최고기록을 세웠다. 김 대표는 2022년 6월 제주 태양의 철인대회까지 철인코스를 10회 완주했다. 그의 철칙은 ‘절대 무리하지 말자’이다. 그는 “철인3종의 마라톤 땐 사실상 걷는다. 전체 거리 중 10~20%를 달리고 80~90%를 걷는다. 시속 6km로 걸으면 7시간이면 완주한다”고 했다. 실제로 그의 철인3종에서 마라톤 완주 기록은 6시간 후반에서 7시간 중반대다. 그러고도 17시간 이내 완주하면 철인 칭호를 주는 철인코스에 10회 출전해 모두 완주했다. 그는 지금까지 철인3종 하프코스 8회, 올림픽코스 14회, 마라톤 풀코스 9회, 그리고 울트라마라톤 100km도 1회 완주했다.
“저는 철인3종이 운동에 미친 사람들만 할 수 있는 극한의 스포츠가 아닌, 보통의 일반인도 많은 시간을 들이지 않고 훈련을 적당히 하면서도 충분히 완주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습니다. 철인3종은 생각과 달리 몸에도 정말 좋은 스포츠라는 것을 알리고 싶습니다. 솔직히 전 사업이 바빠 주중엔 거의 운동을 못합니다. 해외 출장도 많습니다. 그래서 주말 시간 있을 때 주로 사이클을 탑니다. 그러면서도 철인코스에 도전해 한 번도 포기하지 않았어요. 철인3종 완주는 엄청난 고통이 따르지만 인내하고 완주하면서 ‘내 삶에 불가능은 없다’는 자신감을 갖게 됐습니다. 제 삶에도 긍정적인 변화를 줬어요.”
철인3종을 완주하며 쌓은 체력과 정신력으로 사업도 키웠다고 했다. 그는 “회사가 몇 번 망할 뻔했는데 각고의 노력으로 살려냈다. 철인3종의 힘이었다. 정신력 단련에선 정말 매력적인 운동이다. 우리 집사람도 인정한다”며 웃었다. 이렇다 보니 자연스럽게 회사 직원들에게도 운동을 권하고 있다. 기회 되면 함께 사이클도 타고, 수영도 하고 있다. 대회 출전 땐 경비도 지원한다. 지난해 8월엔 15명의 회사 동료들과 철인3종 릴레이대회에도 함께 출전하는 등 대회 출전에도 동행하고 있다. 회사 안에 달리고 근육 운동을 하며 사이클까지 탈 수 있는 피트니스센터도 만들었다.
“한땐 사원 전원에게 자전거를 사주기도 했죠. 건강해야 일도 잘하고 어떤 어려움도 헤쳐나갈 수 있으니까요. 당시 자전거 타고 워크숍에 갔습니다. 처음엔 40km, 그리고 60km, 90km까지 가서 워크숍을 하고 돌아왔습니다. 지금은 그렇게까진 못하고 운동을 할 수 있도록 돕고 있습니다.”
라온텍은 공장이 없는 팹리스 회사다. 반도체 칩 등을 기획, 설계해 제조를 외주에 맡긴 뒤 다시 마케팅하고 판매하는 회사다. 주로 스마트 안경에 들어가는 마이크로 디스프레이를 만든다. 국내보다는 해외 판매 비중이 높다.
분당철인클럽 회장인 김 대표는 “회원들 중 제가 가장 게으르다. 사이클은 한 번 탈 때 3~4시간 100km 탄다. 그것도 2주에 한 번 정도다. 마라톤 훈련으론 한 달에 약 30km 정도 달린다. 수영도 가끔 한다. 그래도 철인코스 완주에는 큰 문제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사이클 운동의 중요성에 대해 설명했다.
“사이클만 타도 몸은 탄탄해집니다. 사이클은 전신 운동입니다. 다리부터 엉덩이, 복근, 가슴, 어깨, 팔 등 전신을 다 활용합니다. 사이클을 타고 긴 거리를 달리며 오르막 내리막을 반복하다 보면 어느 순간 탄탄한 몸으로 바뀌어 있습니다. 전 무릎이 아파 많이 달리진 못하지만 이렇게 사이클로 몸을 만들고 가끔 달리고 수영하는 것으로도 철인3종을 완주할 수 있다는 것을 체득했습니다. 이거 아세요? 우리 클럽에서 철인코스 10번 완주한 사람이 제가 처음이었습니다.”
김 대표는 다시 강조했다. “훈련도 중요하지만 완주하려는 자세가 더 중요합니다. 전 철인3종 대회에 참가해 질주하다 죽는 게 가장 행복할 것 같아요. 계속 관리해서 80세까진 철인3종 하프코스를 완주할 계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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