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품질의 상향 평준화로 디자인은 브랜드 경쟁력을 좌우하는 핵심 요소로 자리 잡았습니다. 내·외관 디자인이 트렌드를 반영하지 못하면, 제품 성능이 좋더라도 소비자의 외면을 받기 때문입니다. 이에 각 제조사는 자신들의 정체성과 가치를 다양한 라인업에 일관적이고 창의적으로 전달할 디자이너 영입에 필사적입니다. 자동차 업계를 대표하는 뛰어난 디자이너들은 이같은 고민을 어떻게 풀어내고 있을지 월간 연재 코너인 [자동차 디자人]을 통해 살펴봅니다.
세계 3대 명차 브랜드로 꼽히는 롤스로이스는 1906년 설립돼 120여년 역사를 지닌 기업이다. 부유층 자제이자 자동차 마니아였던 찰스 롤스가 자신의 조국인 영국에 명차가 없다는 사실에 안타까움을 느껴 엔지니어인 헨리 로이스와 동업해 설립한 기업이다.
오랜 시간 자타공인 최고급 자동차 브랜드로 널리 명성을 떨치고 있는 롤스로이스 역시 전동화 전환이라는 거대한 변화를 맞이하고 있다. 지난해 자사 첫 번째 전동화 모델인 스펙터(Spectre)를 공개하며, 전동화 물결에 합류한 것이다. 유서 깊은 자동차 브랜드의 첫 전기차 디자인을 주도한 인물은 앤더스 워밍(Anders Warming) 롤스로이스 디자인 디렉터다.
덴마크 태생인 앤더스 워밍은 자신을 자동차에 대한 열정이 높은 가정에서 자란 인물로 소개했다. 가족 모두가 자동차를 좋아하는 덕분에 자연스럽게 자동차에 대한 관심을 키우며 성장했다는 앤더스 워밍. 그는 특히 자동차 스케치를 즐기며 미래지향적인 디자인과 비전, 이미지를 종이 위에 그리곤 했다고 회상했다.
이 밖에도 미술 전시회 방문과 자연환경, 기타 연주를 즐기며 디자인에 대한 영감을 얻었다는 그는 미국 캘리포니아와 스위스에 캠퍼스를 둔 명문 디자인 학교, 아트 센터 칼리지 오브 디자인(ArtCenter College of Design)에 입학, 교통 디자인을 전공했다.
BMW 그룹서 20여년간 활동 후 워밍 디자인 설립…2021년 롤스로이스 디자인 디렉터로 임명
앤더스 워밍은 대학을 졸업한 이듬해인 1997년 BMW 그룹에 입사해 책임 디자이너로 일을 시작, 10년 뒤인 2007년에는 BMW 외관 디자인 총괄으로 임명됐다. 2011년에는 미니(MINI) 수석 디자이너로 자리를 옮겨 6년간 직무를 수행하는 등 20여년간 BMW 그룹 차량 디자인에 큰 영향을 미쳤다.
일례로 BMW를 대표하는 로드스터인 Z4 역시 앤더스 워밍의 대표적인 작품이다. 현 BMW i 디자인 총괄인 '카이 랭어'는 IT동아와의 인터뷰에서 앤더스 워밍이 디자인한 로드스터, ‘BMW Z4’에 매료돼 오직 BMW 입사만을 목표로 학업에 매진했다고 회상한 바 있다.
앤더스 워밍은 BMW 미니(MINI) 수석 디자이너로 자리를 옮긴 후 미니 차량의 미래 디자인을 제시한 ‘미니 비전’을 2013년에 공개해 큰 주목을 받았다.
당시 미니 비전에는 육각형 라디에이터 그릴과 동그란 헤드라이트 주변을 감싼 링 형태의 라이트, 원형의 실내 중앙 디스플레이, 도어 안쪽에 영국을 상징하는 유니언잭 디자인을 적용한 모습 등 현재 미니를 상징하는 디자인 요소가 가득 담겨있다.
앤더스 워밍이 총괄한 미니 비전 디자인을 적용한 3세대 미니 해치백 모델은 독일 자동차 잡지 ‘아우토 모토 운트 스포트’가 선정한 소형차 부문 ‘2014년 가장 아름다운 차’로 뽑히기도 했다.
앤더스 워밍은 BMW 그룹에서의 업적을 바탕으로 독일 보그바르트 그룹의 디자인 디렉터로 자리를 옮겼다가 자신이 설립한 디자인 회사, 워밍 디자인의 수석 디자이너를 역임했다. 이후 2021년 롤스로이스 디자인 디렉터로 임명돼 지금까지 브랜드 내·외관 디자인을 총괄하고 있다. 브랜드 첫 전기차 스펙터 디자인 총괄…’롤스로이스 먼저, 전기차는 그다음’ 원칙으로 디자인
롤스로이스로 자리를 옮긴 앤더스 워밍에게는 막중한 책무가 기다리고 있었다. 브랜드 첫 전기차의 내·외관 디자인을 총괄하는 역할이다.
앤더스 워밍은 평소 스토리텔링의 중요성과 예술성에 집중하며 디자인하는 철학을 지닌 인물이다. 특히 자신이 만지는 것과 느끼는 모든 것은 중요한 배경을 지닌다고 믿는 그는 롤스로이스 헤리티지를 이해하기 위해 엔지니어링을 비롯해 제조 분야 장인과 소통하며 브랜드 첫 전기차 디자인 작업을 시작했다고 회상했다. 그 다음 롤스로이스 소비자가 무엇을 원하는지 알기 위해 롤스로이스 애호가 클럽을 방문해 자료실과 자동차 일지를 조사하는 등 소비자 니즈를 파악했다고 덧붙였다.
그 결과 앤더스 워밍은 브랜드 첫 전기차인 스펙터를 ’롤스로이스 먼저, 전기차는 그다음’ 원칙으로 디자인하기 시작했다. 미래에 대한 대담함과 진보적인 모습을 담은 전기차라도 브랜드를 상징하는 디자인 적용은 타협의 대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누가 봐도 롤스로이스 차량이라는 사실을 알아보도록 디자인한다는 원칙을 고수했다고 전했다.
이렇게 탄생한 롤스로이스 첫 전기차 스펙터는 브랜드를 상징하는 요소를 대부분 담고 있다. 앤더스 워밍은 2도어 4인승 쿠페인 ‘스펙터’를 지붕부터 후면까지 유려하게 떨어지는 루프라인이 특징인 패스트백(Fastback)으로 디자인하는 과감한 시도를 하면서도 롤스로이스를 상징하는 전면부 판테온 그릴과 보닛 위 환희의 여신상을 그대로 배치했다.
다만, 판테온 그릴을 원활한 공기 흐름을 위해 롤스로이스 차량 중 가장 넓게 설계했으며, 환희의 여신상 또한 총 830시간의 디자인 작업과 윈드 터널 테스트를 거쳐 기능을 고려해 배치했다. 덕분에 스펙터의 공기저항계수는 브랜드 차량 중 가장 낮은 0.23Cd에 불과하며, 2m에 달하는 전폭에도 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km까지 가속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4.5초에 불과하다.
앤더스 워밍은 브랜드가 어디에서 왔는지 이해하고, 또 어디로 가는지 아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미래에 대한 제안을 디자인하는 것은 근본적인 엔지니어링 기술에 대한 지식과 이해를 바탕으로 삼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전설적인 자동차 메이커의 아이디어와 의도에서 영감얻고, 자신만의 기술 연마해야
끝으로 앤더스 워밍에게 자동차 디자이너를 꿈꾸는 이들을 위한 제언을 요청했다.
앤더스 워밍은 ▲자신만의 기술을 연마할 것 ▲유서 깊은 브랜드의 유산을 이해할 것 ▲항상 모험할 것을 당부했다.
그는 “저의 경우 유년시절부터 아이디어를 종이에 적고 자동차 디자인을 스케치하는 습관이 있었다. 이 습관은 자연스럽게 자신만의 기술을 연마하는 과정으로 이어졌다”며 “항상 유서 깊은 브랜드의 유산을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전설적인 자동차를 만드는 사람들의 아이디어와 의도에서 영감받았고, 그 차량을 소유했거나 소유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꿈과 포부를 이해하려 노력했다”고 말했다.
이어 “가장 중요한 것은 꿈을 품는 것”이라며 “항상 모험을 두려워하지 말고 결실을 보기까지 모든 상황을 바라보고 즐겨야 한다. 여러분 앞에 놓인 가장 어려운 길을 걷는 과정에서 이전에 발견하지 못한 새로운 기회가 열릴 것”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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