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초기투자기관협회(KESIA)는 중기부 주관 민간주도형 예비창업 지원 프로그램 ‘시드팁스(Seed TIPS)’의 주관 기관이다. 시드팁스는 민관 협력 창업 프로그램 TIPS의 이전 단계 지원 프로그램이다. 전문성을 갖춘 민간 운영사 7곳(인포뱅크, 프라이머 시즌 5, 앤틀러코리아, 소풍벤처스, 엔슬파트너스, 탭엔젤파트너스, 와이앤아처)이 스타트업의 창업팀 구성부터 시드 투자 유치까지 초기 단계 성장을 책임지고 지원한다.
기업의 영업 활동에서 기본이 되는 건 고객과 관계를 맺고 이를 관리하는 일이다. 과거에는 이를 영업사원의 인적 네트워크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규모가 커지고, 관리하는 고객이 많아질수록 이를 영업 사원의 개인기에만 맡기는 건 불가능에 가까워진다. 이 때문에 필요한 게 체계적인 영업을 돕는 고객 관계 관리(CRM) 소프트웨어다.
B2B CRM 솔루션 '세일즈맵'을 만든 스타트업 세일즈맵의 정희영 대표는 “CRM을 어떻게 하면 쉽게 설명할 수 있을까 챗GPT에게 물었더니 친구 관리 노트에 빗대어 설명하더라”고 말했다. 이 친구는 뭘 좋아하고, 나랑 언제 만났었고, 이 친구와 관계를 더 진전시키려면 뭘 해야할지 계획을 짜는 노트 역할하는 소프트웨어가 바로 CRM이라는 것이다.
지난 5월 샛별처럼 등장한 세일즈맵은 1년도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이미 토스페이먼츠, 패스트캠퍼스, 중고나라, 원티드, 그렙, 식권대장 등 다수 고객사를 확보했다. 글로벌 기업들의 CRM 솔루션이 있음에도 세일즈맵이 선택받을 수 있었던 건 국내 기업들의 업무 방식에 최적화된 솔루션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정희영 대표는 “서비스형 소프트웨어(Saas)라는 건 결국 업무 방식을 소프트웨어로 풀어낸 것”이라며 “CRM은 그냥 사서 쓰기만 하면 되는 소프트웨어가 아니라 회사의 B2B 세일즈 전략, 마케팅 전략을 어떻게 풀어낼지 함께 고민해 줄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정 대표는 창업 전 여러 직무의 현업인들을 만나며 이들이 어떤 제품을 쓰고 있고, 어떤 불편함이 느끼고 있는지 경청했다. 이 과정에서 의외로 많은 이들이 비싼 돈을 내고 글로벌 기업의 CRM 제품을 이용하면서도 이를 충분히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글로벌 기업의 제품은 리셀러에 의해 판매가 이뤄지다 보니 맞춤형 컨설팅이나 고객 지원에 약점이 있었고, 제품 자체가 국내 기업의 업무 방식이나 인프라와는 다소 맞지 않는 부분도 있었다. 한국어 지원이 다소 부족하거나, 활용법을 공유할 한국 내 이용자 커뮤니티 부재한 점도 제품 활용도를 떨어뜨리는 이유라고 정 대표는 진단했다.
세일즈맵이 지향하는 건 프로젝트 관리 앱인 ‘노션’처럼 사용하기 편한 CRM이다. 국내 스타트업, 정보통신기술 업계에서는 노션을 활용하는 이들이 많은데, 이들이 쉽게 익숙해지고 편히 쓸 수 있는 제품을 만들겠다는 의도다.
이메일 마케팅 자동화와 데이터 분석, 딜 파이프라인 관리, 세일즈 대시보드, 마케팅 대시보드 등 현업인들이 CRM에서 꼭 필요로 하는 핵심 기능만 꾹꾹 눌러 담은 점도 특징이다. 이외에도 문자 대량 발송 서비스, 전자 계약, 세금 계산서 등 국내 다른 인프라나 블로그 및 서비스들과의 연동에도 힘을 실었다.
정희영 대표를 비롯한 세일즈맵 창업 멤버들은 카이스트를 졸업하고 티맥스 등에서 근무하며 B2B 소프트웨어를 만들던 개발자들이다. 첫 창업 아이템은 이런 이력과는 다소 동떨어진 ‘가족 여행객을 위한 여행지 추천 플랫폼’이었다. 결국 별 성과를 거두지 못한 채 사업을 접어야 했다. 랜딩 페이지 테스트에서 좋은 성과를 냈다는 이유만으로 아이템을 고른 게 화근이었다. 정 대표는 “가족 여행의 결정권은 보통 엄마들이 쥐고 있는데 돌이켜 보면 저희는 공대생들이라 엄마의 마음을 몰랐고, 아이들에게도 관심이 없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때 얻은 깨달음이 세일즈맵이 빠르게 현업인들이 원하는 제품을 개발해 시장에 안착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 됐다. 잘하고, 잘 아는 분야에 도전해야 성공할 수 있다는 생각에 다시 B2B 소프트웨어를 선택했고, 철저한 시장 조사를 거친 후 선택한 게 CRM이었다.
물론 글로벌 기업의 제품이 즐비한 CRM 시장에 스타트업이 진입한다는 게 마냥 쉽지만은 않았다. 레퍼런스도 없는 스타트업의 B2B 솔루션을 채택하는 건 기업 입장에서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정 대표는 “창업 후 7~8개월은 자취방에서 코딩만 했을 정도”라고 회상했다. 하지만 처음에는 무료로 서비스를 제공하며 진입장벽을 허물고, 점차 고객사를 늘려갔다. 세일즈맵 스스로가 자신들의 CRM을 영업에 활용할 수 있었던 것도 도움이 됐다.
지난해 10월 전면 유료화를 시작했지만 여전히 대부분 고객사는 세일즈맵을 사용 중이다. 꼭 필요한 기능은 다 갖추고 있으면서도, 가격은 주요 글로벌 기업 제품의 절반에도 미치지 않을 정도로 저렴하기 때문이다. 기존에 CRM을 이미 쓰고 있던 업체들 입장에선 세일즈맵이 충분히 매력적인 선택지인 셈이다.
이런 세일즈맵의 성장을 도와준 지원군 중 하나가 한국초기투자기관협회의 시드팁스다. 세일즈맵은 프라미어를 통해 예비창업기업으로서 시드팁스에 참여했다. 정 대표는 “창업 멤버 전원이 개발자 출신인 데다 아직 초기 스타트업이라 부족했던 관련 법률, 회계 등에 관한 전문가의 교육을 받을 수 있어 많은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무엇보다도 다른 스타트업과의 네트워킹을 통해 고객사를 확보할 수 있었던 것도 세일즈맵에게는 큰 힘이 됐다.
세일즈맵은 올해 하반기 구현을 목표로 생성형 AI를 활용한 기능 고도화에 나선다. 챗봇 형태 인터페이스로 CRM을 좀 더 쉽고 편하면서도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게 한다는 계획이다.
정희영 대표는 “예전처럼 만들면 다 팔리는 공급자 중심 시대는 끝났다. 시장이 소비자 중심으로 재편되면서 경쟁이 치열해졌다. 세일즈, 마케팅 역량이 그만큼 더 중요한 시기”라고 말했다. 이어 “세일즈맵은 앞으로도 사용자 친화적인, 한국 시장에 맞도록 제품을 고도화해 고객사들과 함께 성장해 나가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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