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게임 시장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기업을 꼽자면 중국의 텐센트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2023년 약 3029억 6천만 위안(한화 약 55조) 규모로 성장한 중국 게임 시장에서 텐센트는 게임 분야에서만 33조의 매출을 올려 시장 전체 매출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엄청난 성과를 기록했습니다. 전 세계 4위 규모를 손꼽히는 한국 게임 시장 규모가 22조 수준이라는 것을 고려하면 하나의 기업이 세계 4위 국가의 시장 매출보다 더 높은 수치를 기록한 셈입니다.
여기에 텐센트의 연 매출은 114조 5천억으로 어지간한 대기업보다 높은 규모를 자랑하며, 이 막대한 자본을 바탕으로 ‘액티비전 블리자드’, ‘에픽게임즈’, ‘유비소프트’, ‘라이엇게임즈’ 등 세계 유수의 게임 개발사의 지분 상당수를 보유한 투자사이기도 합니다.
한 가지 재미있는 것은 이 시총 470조에 이르는 거대 기업 텐센트의 토대를 닦은 것이 바로 한국의 게임이었다는 겁니다.
●한국 시장에서 실패한 게임. 중국에서 터지다
사실 텐센트는 처음에는 게임과 크게 관련 없던 인터넷 서비스 기업이었습니다. 1998년 창립한 텐센트는 ‘QQ 메신저’를 중심으로 인터넷 서비스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이 ‘QQ 메신저’는 서비스 9개월 만에 사용자 수가 100만 명에 이를 정도로 성장했고, 2000년대 들어 텐센트는 중국 최대 규모의 메신저 서비스 기업으로 성장하게 됩니다.
하지만 당시 인터넷 환경과 IT 기술력의 한계로 인터넷 메신저 서비스의 성장은 한계가 있었고, 이에 텐센트는 2000년대 당시 폭발적으로 성장하던 게임 시장에 눈을 돌렸습니다.
2000년대 초반 중국 게임 시장의 성장은 한국 게임사들의 작품이 주도했습니다. 2001년 ‘미르의 전설2’(중국명: 熱血傳奇-열혈전기)가 엄청난 성공을 거두자 이를 지켜본 중국의 게임사들은 앞다투어 한국 게임 퍼블리싱에 열을 올렸죠.
텐센트 역시 중국 최대의 인터넷 기업이라는 타이틀을 앞세워 이 한국 게임 퍼블리싱에 뛰어들었지만, 이제 막 게임 사업을 시작한 기업과 선뜻 손을 잡는 회사는 드물어 수입에 애를 먹었습니다. 바로 이때 나타난 회사가 바로 ‘크로스파이어’의 부진으로 고민하던 스마일게이트였습니다.
2006년 당시 한국 게임 시장은 ‘스페셜포스’, ‘서든어택’ 등의 게임이 등장하며, 온라인 FPS의 황금기를 맞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등장한 ‘크로스파이어’는 이들 게임에 밀려 전혀 기를 펴지 못했고, 동남아 시장에서 나름의 조명을 받는 수준이었습니다.
이처럼 국내에서 활로를 찾지 못한 크로스파이어는 해외 시장 진출을 적극적으로 진행했고, 이 ‘크로스파이어’의 중국 서비스를 시작한 기업이 바로 텐센트였습니다. 물론, 초반 성적은 그리 좋지 못했습니다. 당시 중국 게임 시장에 FPS 장르의 게임 자체가 드물었고, 이용자들의 반응 역시 뜨뜻미지근해 동접자 역시 실망스러운 수준이었죠.
이에 스마일게이트의 권혁빈 의장이 직접 텐센트의 직원들과 중국 현지를 관찰하며, 중국 유저들을 분석했고, 그 결과 중국인들이 선호하는 색상으로 게임을 대거 수정했습니다. 바로 총기 색상을 빨간색과 금색으로, 중국인들이 선호하는 화려한 홍등과 간판으로 가득한 차이나타운 스타일의 맵을 추가한 것이죠.
●글로벌 e스포츠 리그도 활발히 진행 중
밀리터리 FPS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텐센트와 스마일게이트는 과감히 총기의 디자인과 맵 디자인을 교체했고, 이 부분이 제대로 먹히면서 ‘크로스파이어’는 중국 서비스 1년 만에 동시접속자(이하 동접자) 100만 명을 달성했습니다.
이후 끝없이 성장한 ‘크로스파이어’는 러시아, 대만, 남미 서비스를 시작하며, 2013년 연 매출 1조 클럽에 가입하며, 전세계에서 가장 많은 매출을 올린 게임으로 선정된 것은 물론, 2015년 전체 동접자 800만 명을 돌파하는 등 지금도 중국 최고의 게임 중 하나로 손꼽히고 있습니다.
●게임을 찾아 헤매던 텐센트 ‘던파’에 모험수를 던지다
이 ‘크로스파이어’와 함께 텐센트의 기틀을 닦은 게임이 또 있습니다. 바로 넥슨의 자회사 네오플의 ‘던전앤파이터’(이하 ‘던파’)입니다.
2005년 서비스를 시작한 ‘던파’는 출시 첫날 곧바로 동시접속자 1만 5천 명을 기록하는 등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게임이었고, 수많은 중국 퍼블리셔들의 구애를 받던 작품이었습니다.
‘크로스파이어’의 성장과 함께 ‘던파’의 가능성에 주목한 텐센트는 2008년 그야말로 파격적인 로열티 맺으며, ‘샨다’, ‘나인유’ 등의 굵직한 퍼블리셔를 따돌리고 중국 서비스 권한을 따내는 데 성공했는데요.
당시 중국 로열티 계약에 대한 공식적인 내용은 없으나 텐센트가 중국 서비스의 홍보, 서버관리, 게임 유통을 모두 책임지고 무려 매출의 30~40%에 달하는 로열티를 지급하는 파격적인 계약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텐센트의 입장에서는 게임 하나를 런칭하기 위해 굉장한 무리수를 둔 셈이었습니다.
하지만 2008년 ‘지하성과 용자’(중국명: 地下城与勇士)라는 타이틀로 중국에 서비스된 ‘던파’는 이 무리수를 대박으로 바꿔놓습니다.
던전앤파이터의 중국 서비스를 맡은 텐센트는 공격적인 마케팅과 광고를 진행했고, 네오플의 직원들이 중국 전역을 돌아다니며, 진행한 현지화와 발 빠른 업데이트와 서비스 역량까지 더해지면서 서비스 6개월 만에 동시접속자 100만 명을 돌파. 그야말로 초대박을 달성합니다.
이후 ‘던파’는 2009년 동시접속자 290만 명을 달성하며, 중국국제디지털상호작용게임전람조직위원회가 주최하는 ‘중국 온라인게임 대상’에서 2개 부분을 2년 연속 수상할 정도로 중국 시장 게임 시장 전체를 뒤흔들기 시작합니다.
여기에 중국 현지화에 주력하여 국에서 선호도가 높은 무기인 창을 활용한 캐릭터 ‘마창사’를 선보이기도 했으며, 춘절, 국경일 등 중국 연휴 기간에 맞추어 대대적인 이벤트를 진행하는 등 ‘던파’는 중국 유저들에게 단순 게임을 넘어선 콘텐츠 이상의 위치에 올라섰습니다.
이러한 노력 속에 10년간 서비스를 이어간 던전앤파이터는 중국 동시접속자 500만 명을 기록한 것은 물론, 전 세계 7억 명의 회원과 누적 매출 150억 달러라는 엄청난 기록을 달성하며, 텐센트의 사업 확장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실제로 이 ‘던파’와 ‘크로스파이어’의 성공으로, 텐센트는 2009년 한해에만 온라인게임 매출이 전년 대비 132% 성장한 ‘53.9억 위안’에 달했고, 중국 전체 게임 시장의 21.1%를 차지하는 등 막대한 성과를 거두며, 거대 기업으로 성장하는 토양을 마련했습니다.
이렇듯 될 성 푸른 게임을 미리 선점해 막강한 수익원으로 키워낸 텐센트는 이후 중국 시장의 매출을 기반으로 적극적인 M&A(기업의 매수&합병) 작업에 착수했습니다. 2011년 리그오브레전드의 개발사 라이엇게임즈를 4,700억 원에 달하는 금액으로 지분 인수를 진행한 것을 시작으로, 액티비전 블리자드, 유비소프트, 슈퍼셀, 에픽게임즈 등 세계 유수의 게임사들의 지분을 사들습니다.
특히, 이러한 지분 인수는 2020년 절정에 달해 텐센트 하나의 기업이 무려 31개에 달하는 기업의 지분 투자와 인수를 진행하여 전세계 M&A 인수 금액을 대부분을 텐센트가 지출했을 정도로 기록적인 M&A 행보를 보이기도 했습니다.
여기에 텐센트는 블루홀(현 크래프톤)의 2대 주주이며, 넷마블, 카카오게임즈, 라인게임즈 등 다수의 게임사에 자본을 투입한 국내 게임 시장의 큰손이기도 합니다.
이처럼 텐센트는 설립 초기 ‘던파’와 ‘크로스파이어’ 두 한국 게임의 성공을 교훈 삼아 양질의 IP(지식재산권)를 지닌 기업을 미리 선점하는 공격적인 투자와 적극적인 현지화 및 개선을 진행해 다양한 사업을 성공시키며, 현재 시총 470조 원에 이르는 거대 기업으로 성장했습니다.
이러한 텐센트의 행보는 국내 게임 기업도 충분히 되짚어 볼 만한 모습인데요. 촉망받는 IP를 과감히 품에 안고 이를 발전시켜 새롭게 선보인다는 텐센트의 사업 전략은 IP의 개발과 성장의 중요성이 어느 때보다 주목받고 있는 현재 게임산업 트랜드와 일맥상통하기 때문입니다.
‘던파’와 ‘크로스파이어’ 두 개의 작품을 통해 성장의 토대를 닦았던 텐센트와 같이 과연 어떤 한국의 게임사들이 숨겨진 원석을 발굴하고 갈고 닦아 거대한 성장을 이뤄낼 수 있을지 앞으로의 모습이 궁금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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