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체신호 처리 반도체 솔루션으로 글로벌 진출 네메시스
디지털 헬스 기기 전문 칩 제조… 생체신호와 잡음 구별이 관건
늘어나는 건강관리 수요 파악해… 범용 아닌 센서 맞춤 설계로 승부
경기 성남시 분당구 판교신도시에 있는 ‘네메시스’는 사람이나 동물의 몸에서 발생하는 생체신호를 ‘똑똑하게’ 처리하는 반도체를 설계하는 회사다. 움직이는 생체에서 나오는 신호를 악조건에서도 제대로 처리해야 하고, 초소형 최소 전력으로 설계하는 것이 관건이다. 8일 판교 본사 사무실에서 만난 왕성호 대표이사(57)는 “생체신호를 처리하는 반도체는 지금까지 글로벌 회사들이 내놓은 범용의 신호처리 칩을 사용해 왔다”며 “생체신호 처리에 특화된 반도체를 전문으로 설계하고, 센서 특성에 맞춰 칩을 최적화해 제작해주는 곳은 세계에서 우리가 유일하다”고 했다.
건강을 위해 자신의 몸을 모니터링하는 기기들이 최근 들어 늘어나고 있다. 심박수와 운동량 등을 측정하는 반지, 수면 관리를 위한 뇌파 측정기, 침대나 옷에 설치하는 심전도 측정 장치 등이 나오고 있다. 혈당 관리를 위한 연속혈당측정기는 다이어트나 건강관리용으로도 쓰인다. 팔뚝에 붙여 둔 센서를 통해 2주 동안 휴대전화로 자신의 혈당을 실시간으로 알 수 있다. 당뇨나 당뇨 전 단계 사람들의 혈당 관리는 물론이고 건강에 해로운 식습관 개선을 원하는 일반인에게도 유용하다. 왕 대표는 “디지털 헬스 기기 개발 회사들은 생체신호를 감지하는 센서를 만든 뒤 우리가 만든 반도체와 융합해 완성도 높은 헬스 기기를 만들 수 있다”고 했다.
● 움직임 많은 생체신호 처리 노하우
바이오 신호는 노이즈가 많고 불규칙하다. 왕 대표는 “생체가 움직이면 발생하는 신호의 강도가 급격히 변하기도 하고, 주변 전자기장의 간섭도 많이 받는다”며 “신호와 잡음을 구분하려면 바이오와 반도체 부문을 모두 통합해서 다룰 수 있는 전문성과 노하우가 필요하다”고 했다.
저전력으로 구동할 수 있도록 설계하는 것도 필수적인 기술이다. 전지가 작아지면 헬스 기기의 사용감이 좋아지고, 오랫동안 사용할 수 있으며 편의성이 좋아진다.
헬스 기기 개발 회사들은 자신들이 개발한 센서의 특성에 딱 맞춘 반도체를 공급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 대신 일반 용도로 나온 범용 칩을 개조해서 써야 한다. 만약 생체 센서의 출력값이 범용 칩의 입력값 범위 밖에 있으면 센서와 반도체를 결합시키느라 애를 먹는다. 왕 대표는 “신호처리 반도체를 만드는 우리가 센서의 출력값에 맞춘 설계를 해주면 문제는 쉽게 풀린다”고 했다.
이어 그는 “어렵게 개발한 기기에 범용 칩을 사용하면 칩의 모델 번호 등으로 인해 그 기능이 쉽게 드러나기 때문에 기기 개발 회사가 차별화된 경쟁력을 유지하기 힘들 수 있다”며 “우리는 고객 맞춤형으로 칩을 제작해주기 때문에 기기 회사에 더 많은 이점을 제공한다”고 했다.
●“초소형 머신러닝 수행 칩도 개발”
네메시스는 다양한 반도체 칩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먼저 전기화학 기반의 바이오 신호를 처리하는 칩이 있다. 몸속 체액과의 화학적 반응으로 생기는 전기신호를 감지한 센서의 신호를 넘겨받아 정확한 데이터로 변환해주는 제품이다. 연속혈당측정기나 뇌파측정기 등에 사용된다. 타액이나 소변 등을 검사하는 체외 진단 기기에도 활용할 수 있다. 네메시스는 2년여 전까지 연속 혈당 측정을 할 수 있는 센서까지 직접 개발했지만 지금은 센서 사업은 접고 반도체 설계 기술에만 집중하고 있다.
스마트반지나 스마트시계 등 여러 생체신호를 측정하는 기기에 쓰는 ‘멀티 바이탈 사인 모니터링용 신호처리 칩’도 만든다. 여러 신호를 하나의 칩에서 처리하려면 필요한 때에 특정 신호만 감지할 수 있도록 최적으로 설계하는 기술이 관건이다. 그래야 부피와 전력을 줄일 수 있다.
초소형(tiny) 머신러닝 기반의 바이오 신호처리 시스템온칩(SoC)도 개발했다. 프로세서와 메모리 등을 한 칩에 집적한 후 생체신호를 머신러닝을 기반으로 처리해 신호를 정확하게 구별하고 처리한다. 이런 칩들은 인체는 물론이고 동물에게도 적용할 수 있다. 개나 고양이 같은 반려동물의 건강상태를 모니터링하는 기기가 늘고 있다. 가축으로 키우는 소의 경우 가임기간이 하루 정도여서 새끼를 낳게 하려면 배란 시기를 아는 것이 중요한데, 이를 알아내기 위한 모니터링 기기에도 반도체 칩이 쓰인다.
● 두 번째 창업
KAIST 공학박사 출신인 왕 대표는 회로설계 전문가다. 2000년대 초까지 SK하이닉스에서 근무했다. 근거리 무선 통신 기술의 미래를 보고 2003년 레이디오펄스를 창업했다. 직비(ZigBee)라는 근거리 무선 통신 표준을 활용해 여러 통신 칩과 기기를 만들었다.
이 회사는 2015년 나스닥 상장 기업에 팔았다. 주요 주주의 주식만 넘기는 방식이 아니라 회사 지분 100%를 매각하는 방식이어서 창업 멤버뿐만 아니라 주식을 갖고 있던 대부분의 직원에게 회사 매각 수익이 돌아갔다. 왕 대표는 매각 이후 2017년까지 첫 회사의 운영을 돕다가 2017년 퇴직하고 네메시스로 두 번째 창업을 했다.
네메시스에는 학계나 업계에서 경험을 쌓은 전문가가 많다. 최고기술책임자이자 공동창업자인 김근회 부사장은 연세대 공학박사 출신으로 레이디오펄스에서도 최고기술책임자를 맡았던 멤버다. 공동창업자이자 기술고문으로 활약 중인 KAIST 제민규 교수는 생체신호 처리 분야의 전문가다. 역시 공동창업자인 최현무 부사장은 삼성전자 출신으로 국내와 아시아 부문 세일즈를 책임지고 있다. 공동창업자인 길준호 상무는 네메시스 SoC연구소 소속이다. KAIST 공학박사 출신이다. 레이디오펄스도 공동으로 창업했다.
왕 대표는 “스타트업으로는 드물게 칩 설계와 생산, 판매에 경험이 많은 인력이 포진해 있다”며 “20년 이상 칩 양산 경력을 갖추고 레이디오펄스 시절에 3000만 개 이상의 칩을 불량 이슈 없이 삼성과 LG에 공급했다”고 했다.
●“생체신호 처리 반도체 전문회사로 글로벌 진출”
네메시스는 파운드리(반도체 위탁 생산)를 통해 올해 2종의 칩을 대량 생산할 계획이다. 4종의 주요 칩은 실제 반도체 칩으로 만들어 성능 테스트를 끝낸 상태다. 디지털 헬스 기기에 언제든지 활용할 수 있다는 의미다.
왕 대표는 “생체신호 처리 반도체는 그동안 판매량이 적었지만 연속혈당측정기처럼 2주에 한 개 사용하고 교체하는 기기들이 나오고 있어 앞으로 수요가 크게 늘어날 것”이라고 했다. 또 중요하게 보고 있는 것은 의료 체계의 변화 조짐이다. 의사의 진단과 처방, 복약으로 진행되던 일방적 방식에서 모니터링 기기의 발달로 진단과 처방, 복약 이후 모니터링 결과를 의사가 다시 참조하는 양방향으로 바뀌는 것이다. 모니터링 기기에 들어갈 반도체 칩의 수요도 함께 늘어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네메시스는 올해 1월 중소벤처기업부가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개최한 ‘초격차 창업기업 투자설명회(IR)’에 참석해 글로벌 벤처캐피털들에 회사의 기술 현황과 전략을 알렸다. 네메시스는 글로벌 시장 개척에 전력을 다할 예정이다. 왕 대표는 “디지털 헬스 기기에 맞춤식 반도체를 제공하는 세계적인 기업이 되는 것이 네메시스의 비전”이라고 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