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디자人] 벤틀리 코리아 에디션 그려낸 추상화가 ‘하태임’

  • 동아닷컴
  • 입력 2024년 4월 30일 21시 08분


자동차 품질의 상향 평준화로 디자인은 브랜드 경쟁력을 좌우하는 핵심 요소로 자리 잡았습니다. 내·외관 디자인이 트렌드를 반영하지 못하면, 제품 성능이 좋더라도 소비자의 외면을 받기 때문입니다. 이에 각 제조사는 자신들의 정체성과 가치를 다양한 라인업에 일관적이고 창의적으로 전달할 디자이너 영입에 필사적입니다. 자동차 업계를 대표하는 뛰어난 디자이너들은 이같은 고민을 어떻게 풀어내고 있을지 월간 연재 코너인 [자동차 디자人]을 통해 살펴봅니다.
벤틀리 코리아 리미티드 에디션 디자인에 참여한 하태임 작가 / 출처=벤틀리모터스코리아

영국 럭셔리 카 브랜드 ‘벤틀리’가 최근 한국 소비자를 위한 한정판 모델, ‘컨티넨탈 GT 코리아 리미티드 에디션’을 공식 출시했다. 벤틀리는 단 10대만 제작한 한정판 차량에 한국적인 색깔을 입히기 위해 추상화가 하태임 작가와 협업을 진행했다. 처음으로 한국 아티스트와 협업을 진행한 벤틀리가 선택한 하태임 작가는 어떤 인물일까.
추상화가 하태임 작가 / 출처=하태임 작가
추상화가 하태임 작가 / 출처=하태임 작가

화가 출신 부모님의 영향…시그니처 ‘컬러밴드’로 우주 질서와 순환 표현

하태임 작가는 대를 이어 화가의 길을 걷고 있다. 한국 1세대 추상화 거장으로 꼽히는 하인두 작가의 딸인 하태임 작가는 아버지의 영향으로 어린 시절부터 여러 전시회를 다니며 미술에 대한 관심을 키웠다고 한다.
유년시절 하태임 작가의 가족사진 / 출처=하태임 작가
유년시절 하태임 작가의 가족사진 / 출처=하태임 작가

유년시절 아버지의 작품 활동을 곁에서 지켜보며 자연스럽게 미술을 접한 하태임 작가는 화가의 꿈을 키웠지만, 한때 미술을 전공으로 삼는 것에 확신이 없었다고 회상했다. 한 살 어린 남동생이 워낙 뛰어난 그림 실력을 보였기 때문이다. 당시 스스로 미술에 재능이 없다고 판단한 하태임 작가는 플루트를 취미로 연주하며 음악에 관심을 보이다가, 글쓰기 작가를 꿈꾸기도 했었다고 전했다.

미술 전공을 주저하던 하태임 작가에게 확신을 심어준 것은 그의 아버지 하인두 작가다. 하태임 작가를 ‘그림을 할 녀석’이라고 불렀다는 하인두 작가는 파리 유학을 추천하며 입시 준비를 열정적으로 도왔다고 한다. 아버지의 도움과 파리 유학 생활에 대한 기대 덕분에 하태임 작가는 파리 국립미술학교에 진학, 9년간 프랑스에서 유학 생활을 하며 추상화가로 성장했다.

하태임 작가는 유학 기간 동안 색채의 차이와 반복, 여러 조합을 연구하며 미술에 더욱 깊숙이 빠져든다. 그 과정에서 소통의 역할을 하는 수많은 언어와 문자, 기호를 뛰어넘는 그 무언가가 진정한 의미의 소통을 가능하게 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문자와 언어를 그려 넣고 지우는 작업도 반복했다고 한다.

진정한 소통은 단순히 언어와 문자에 있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으로 오랜 시간 공들여 그린 문자를 물감으로 덮고 지우는 행위를 반복했다는 하태임 작가. 애써 그린 문자를 물감으로 덮고 지우는 행위들의 반복과 집적된 형태가 패턴으로 나타나 곡면의 색띠가 탄생했다고 전했다. 이같은 그의 철학이 작품에 반영돼 형성된 컬러밴드는 우주의 질서와 순환을 다채롭게 표현하는 하태임 작가의 시그니처로 자리 잡는다. 서로 같은 곳을 바라보거나 등을 지기도 하는 컬러밴드는 운동성과 방향성을 기반으로 하태임 작가의 의도를 리듬감 있게 또는 고요하게 캔버스 위에서 형상화한다.
통로라는 뜻의 ‘Un Passage’를 주제로 제작된 하태임 작가의 작품 / 출처=하태임 작가

하태임 작가의 컬러밴드에 매료된 벤틀리 협업 제안

영국 럭셔리 카 브랜드 벤틀리는 한국 소비자만을 위한 코리아 에디션 차량 제작을 위해 고심하고 있었다. 한국 아티스트와 첫 협업을 진행하는 만큼, 한국적인 색깔을 차량에 입히면서도 벤틀리 철학과 일치하는 작가의 작품을 선택해야 했기 때문이다.
통로라는 뜻의 ‘Un Passage’를 주제로 제작된 하태임 작가의 작품 / 출처=하태임 작가
통로라는 뜻의 ‘Un Passage’를 주제로 제작된 하태임 작가의 작품 / 출처=하태임 작가

벤틀리의 선택은 하태임 작가였다. 벤틀리는 컬러밴드를 통해 우주의 무한한 질서와 순환을 형상화한 하태임 작가의 작품 세계가 소비자 요구에 따라 맞춤형 차량 제작에 나서는 벤틀리의 무궁무진한 가능성·철학과 일치한다고 판단했다. 하태임 작가의 컬러밴드 곡면이 확장되면 원을 시사하는데 그 원이 벤틀리 상징인 원형 에어벤트와도 자연스럽게 이어진다는 사실 또한 벤틀리의 시선을 끌었다.

벤틀리의 협업 제안을 수락한 하태임 작가는 벤틀리 코리아 에디션의 기반 모델인 컨티넨탈 GT 차량에 컬러밴드를 입히는 작업을 1년간 진행했다. 벤틀리 비스포크 부서인 뮬리너의 디자이너와 장인들이 하태임 작가의 제안에 따라 ‘컬러밴드’를 컨티넨탈 GT 곳곳에 새기는 방식의 협업이었다.

벤틀리를 시승한 후 빛나는 원형의 에어벤트에서부터 상상을 시작했다는 하태임 작가. 그는 원형의 에어벤트에서 컬러밴드들이 나와 대시보드에 펼쳐지는 동시에 트레드플레이트까지 확장되는 순간을 상상하며 작업했다고 회상했다.
하태임 작가의 컬러밴드가 새겨진 벤틀리 컨티넨탈 GT 코리아 리미티드 에디션 실내 / 출처=벤틀리모터스코리아

하태임 작가의 컬러밴드가 새겨진 벤틀리 컨티넨탈 GT 코리아 리미티드 에디션 실내 / 출처=벤틀리모터스코리아

하태임 작가는 가죽 시트에 새겨진 스티치를 보면서 컬러밴드에서 떨어지는 가루를 상상했다. 이에 따라 그 흔적이 헤드레스트에 안착해 정렬되는 모습을 차량에 구현했다.
하태임 작가의 컬러밴드가 새겨진 헤드레스트 / 출처=벤틀리모터스코리아

하태임 작가는 벤틀리를 하나의 우주라고 생각하고 별들이 우주의 질서대로 움직이며 만들어 내는 궤도 또는 별자리처럼 컬러밴드가 곳곳에 자리 잡는 상상을 하며 차량을 디자인했다고 설명했다.

벤틀리 뮬리너 장인들은 기존 다이아몬드 널링의 디테일과 내구성을 유지하면서도 하태임 작가의 컬러밴드를 완벽하게 조합하기 위해 레이저 에칭과 같은 특수 가공 작업을 진행했다. 에어벤트에 컬러가 칠해진 것은 벤틀리 역사상 처음이며, 도어 하단의 트레드플레이트에 컬러밴드가 새겨진 것 또한 벤틀리 역사상 처음이다.
하태임 작가의 컬러밴드가 새겨진 에어벤트 / 출처=벤틀리모터스코리아

하태임 작가의 컬러밴드가 새겨진 트레드플레이트 / 출처=벤틀리모터스코리아

이 같은 과정을 통해 세상에서 단 10대뿐인 한정판, 벤틀리 컨티넨탈 GT 코리아 리미티드 에디션이 탄생했다.
벤틀리 컨티넨탈 GT 코리아 리미티드 에디션 / 출처=벤틀리모터스코리아

남과 구별되는 자신만의 화법 찾아야

벤틀리와 협업하며 한정판 차량을 그려낸 하태임 작가에게 화가 및 디자이너를 꿈꾸는 이들을 위한 제언을 들었다.

하태임 작가는 “자동차는 우리가 매일 이용하는 자신만의 움직이는 사적 공간이며 업무와 이동에서도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는 하나의 생명체”라며 “벤틀리와 협업을 통해 우리 삶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자동차를 아름답게 그려내는 디자이너의 보람을 잠시나마 느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추상화가 하태임 작가 / 출처=하태임 작가
추상화가 하태임 작가 / 출처=하태임 작가

그는 이어 “화가 또는 디자이너를 꿈꾸는 예비 아티스트들에게 모든 상상을 동원해서 남과 구별되는 자신만의 화법을 찾으라고 조언하고 싶다”며 “외롭고 힘든 순간도 있겠지만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평생 하며 몰두할 수 있다는 사실은 정말 귀한 일이라는 것을 잊지 마시길 당부드린다”고 전했다.

IT동아 김동진 기자 (kdj@i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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