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과 올해 전 세계 유통업계를 관통하는 키워드는 중국계 전자상거래 기업인 알리익스프레스(Aliexpress)와 테무(Temu), 쉬인(SHEIN)이다. 빅데이터 플랫폼 기업 ‘아이지에이웍스’는 지난해 3월부터 올해 2월까지 알리익스프레스가 약 9000억 원의 매출을 올렸을 것으로 추산했고, 테무 역시 지난해 7월부터 올해 2월까지 약 650억 원가량의 매출을 올린 것으로 예상한다. 애플리케이션의 월간 사용자 수도 5개월 만에 1200% 이상 급증할 정도여서 매출은 계속 증가할 것이다.
중국계 패스트 패션 기업 쉬인 역시 올해 들어 국내 시장 확장에 열을 올리고 있다. 이미 쉬인은 22년 말 ‘쉐인서비스코리아’를 설립해 직구 열풍에 탑승했고, 올해 들어 국내 유명 SPA(제조, 유통 일원화) 브랜드에 입점을 제안하는 등 본격적인 국내 시장 장악에 나서고 있다.
국내 투자 앞당기는 중국계 전자상거래 기업들, 왜?
중국계 전자상거래 기업들의 국내 매출이 늘면서, 한국 시장에 거점을 설립하고 투자하려는 움직임도 가속화하고 있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알리바바 그룹은 앞으로 3년 간 한국 시장에 약 11억 달러(약 1조 5000억 원)을 투자할 계획을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우선 약 2억 달러(2600억 원)로 축구장 25개 규모의 통합 물류센터를 설립하고, 국내 거점을 통해 해외 직구에서 국내 유통으로 방향을 바꿀 것으로 예상된다.
테무 역시 지난 7월 국내 진출 이후 ‘웨일코코리아’라는 이름의 국내 법인을 설립하고, 국내 업체와의 협업을 시작했다. 아직까지 알리익스프레스만큼 본격적인 투자 내용이 드러나진 않았지만, 모회사인 전자상거래 기업 ‘핀둬둬’의 시가총액이 1718억 달러(약 236조 원)인 점을 생각하면 사업 규모는 커질 전망이다. 이미 테무는 미국 및 유럽 시장에서 공격적인 마케팅과 광고비 투입 등을 통해 알리익스프레스보다 높은 성적을 거두고 있고, 한국에 진출하면 더 큰 파급효과를 일으킬 전망이다.
알리익스프레스와 테무가 국내 시장에 공을 들이는 이유는 중국 내수 시장보다 한국이 더 매력적인 위치라서 그렇다. 통계청이 발표한 국내 전자상거래 시장 규모는 약 227조 원대로, 전 세계 5~6위 시장이다. 또한 우리나라와 중국의 지리적 위치가 가까우며, 물류 서비스 구축에 필요한 인프라와 인력, 높은 구매력 등을 갖추고 있다.
하지만 진짜 목적은 한국을 물류 거점으로 쓰기 위함이다. 인천국제공항공사가 발표한 해상·환적 화물량 발표에 따르면, 바다를 통해 인천공항으로 들어와 제3국으로 배송된 화물은 2022년 6만 8870톤, 지난해에는 43.1% 증가한 9만 8560톤으로 역대 최대 실적을 세웠다. 이중 출발지의 99.6%는 중국으로, 알리익스프레스와 테무 등의 물량이었다.
문제는 중국계 전자상거래 기업의 투자 방향의 적절성이다. 지난 2020년, 알리바바 그룹 산하의 스마트 물류 기업 챠이나오네트워크가 CJ대한통운과 손을 잡고 국내 시장에 공식 진출했다. 하지만 2022년 물류센터 설립 이후 1년 만에 사업을 접고 CJ대한통운에 통관 일부 및 택배를 위탁했다. 6월 말 계약 종료 예정으로 현재 입찰 중이며 당장은 CJ대한통운이 재계약을 할 전망인데, 그만큼 국내 유통 과정이 만만치 않음을 보여준다. 테무는 이제 막 국내 법인이 출범한 상태여서 아직까지 투자 및 유통망 확보 등에 대해 알려진 바가 없다. 각 재고 있는 쉬인··· 자본력보다 노련한 접근 필요해
쉬인은 앞서 두 기업들과 다르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 취급 상품이 공산품이 아닌 의류라서다. 쉬인은 디자인부터 유통까지 3주를 넘기지 않고, 주문 후 24시간 이내에 출고하는 울트라 패스트 패션을 추구하며, 10대부터 20대를 겨냥한 가격대의 의류에 집중한다. 그리고 이 전략이 맞아 들어 전 세계에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코어사이트 리서치에 따르면 쉬인의 전 세계 시장 점유율은 18%, 자라가 17%, H&M이 5%로 이미 세계 점유율 1위 기업이다. 블룸버그는 쉬인의 미국 패스트패션 시장 점유율이 H&M과 자라, 패션노바, 포에버 21등을 모두 합친 것보다 많은 50%로 추산한다. 국내에서도 지난해 2월 쉬인의 사용자 수는 14만 명대였지만, 1년 사이 68만 명으로 늘었다.
국내 소비자들의 관심이 쏠리면서 쉬인 역시 국내 시장 진출을 준비 중이다. 패션 업계에 따르면, 쉬인은 중국 현지에서 한국 및 중국에서 활동할 모델, 촬영 스튜디오 섭외 관리자 등을 구인 중이다. 또 국내 SPA 브랜드 입점 문의는 물론 의류 플랫폼 ‘에이블리’에 투자를 고려하고 있다. 에이블리 투자 유치가 진행될 경우, 쉬인이 자연스레 국내 의류 업계에 스며들게 된다.
쿠팡도 쉽지 않은 의류 유통, 트랜쇼 같은 전문 기업과 손잡아야
핵심은 국내에서도 울트라 패스트 패션이 가능한가다. 알리와 테무 배송은 적어도 5일에서 30일까지 소요되며, 소비자들 역시 이를 감수한다. 하지만 쉬인은 전제품 24시간 이내 출고에 무료 배송, 5~8일 도착을 보장한다. 아직은 이용자가 적어 중국 현지에서 제품 검수 및 검품, 포장 과정을 거쳐도 문제가 없겠으나, 추후 본격적으로 국내 사업을 전개할 경우에는 유통 절차 전반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의류 배송은 규격화된 공산품을 배송하는 것과 다르다. 의류 자체의 훼손이나 보관, 오제작 등을 확인하는 검수, 전량 검사하는 검품 과정도 진행해야 한다. 국내 시장이라면 체계적으로 제품을 보낼 수 있도록 물류 센터의 디지털화 및 체계화도 동반되어야 한다. 쿠팡조차도 2020년 C에비뉴로 의류 유통에 뛰어들었지만, 별 다른 소득을 보지 못하고 자체 브랜드(PB) 및 외부 업체를 통해 의류를 유통하는 ‘쿠팡 온리’ 방식으로 전략을 변경하는 등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그렇다면 쉬인 역시 의류 전문 유통사, 특히 해외 직구까지 가능한 크로스보더까지 지원하는 센터와 손을 잡을 가능성이 있다. 현재 시점에서 가장 눈에 띄는 조건은 트랜쇼의 동대문 크로스보더 풀필먼트 센터 ‘DCF’다. 풀필먼트(Fulfillment)는 물류 전문 업체가 판매 업자에게 위탁받아 배송, 보관, 포장, 재고관리, 교환 및 환불 서비스까지 일체 진행하는 방식이다. 트랜쇼는 현재 동대문 도매(청평화패션몰, 디오트, APM 등) 시장과 가까운 시내 중심지에 약 2500평 규모의 패션 풀필먼트 센터를 설립하고, 의류 유통 산업을 혁신하고 있다.
특히 DCF는 동대문 생산지에서 검수 및 검품 후 바로 해외 발송을 할 수 있는 도심내 창고(Micro Fulfillment Center, MFC)와 크로스보더(Cross border) 배송 시스템을 보유해 미국, 일본을 비롯한 전세계 200개 국가에 패션상품을 수출할 수 있다. 쉬인 자체는 오프라인 매장을 두지 않기 때문에 국내 온라인 플랫폼과 손을 잡아야 하고, 또 울트라 패스트 패션을 완수하기 위해서는 DCF 같은 국내 물류 센터와 손잡아야 국내 시장에서 타사 의류 플랫폼들과 경쟁해 볼 만할 것이다. 테무, 쉬인의 국내 진출, 건전한 국내 투자로 이어지길
결과적으로 중국 전자상거래 기업의 국내 유통서비스 개입은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이 상존한다. 부정적인 측면에서는 가격경쟁력이 취약한 국내 중소기업의 피해로 이어지고, 또 장기적으로는 중국의 국내 내수시장 영향력이 강화돼 종속의 여지가 있다.
한편으로는 유통 단가의 하락으로 소비자 체감 물가가 떨어지고, 또 중국 내 거대 자본 유치 및 경쟁 구도 확산을 통해 국내 유통 생태계에 자금이 흐르게 된다. 국내 시장 진출을 앞둔 테무, 쉬인이 국내 시장에서 건전한 경쟁을 펼치고, 또 국내 기업들이 글로벌 플랫폼과의 경쟁을 통해 더 나은 시장성을 갖추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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