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집 커진 실손보험… 과잉진료 막으려면[이종철 소장의 의료정책 톡톡]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5월 8일 03시 00분


적용 범위 크게 늘며 문제점 나타나
비급여 진료 가이드라인 있어야

게티이미지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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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철 서울 강남구보건소장(전 삼성서울병원 원장)
이종철 서울 강남구보건소장(전 삼성서울병원 원장)
‘건강보험에서 가입자의 자기부담 비율은 어느 정도가 적절한가?’

미국 존스홉킨스대 보건대학원에서 건강보험학 강의 첫 시간에 유명 석학 제라르 앤더슨 교수가 한 질문이었다. 수업에선 최저 10%의 자기부담금이 필요하다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졌다.

자기부담금 비율 10%는 병원에서 진료를 받은 뒤 치료비가 총 10만 원 나왔다면 본인 부담금으로 최소 1만 원 이상은 내야 적절하다는 뜻이다. 그렇지 않으면 환자들의 도덕적 해이로 의료 이용이 과도하게 늘면서 결국 건강보험 재정이 감당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당시 필자는 삼성서울병원장 임기를 마치고 퇴임 후 무엇을 할까 고민하다 늦깎이 공부를 하기 위해 존스홉킨스대 보건대학원에 들어가 독일, 일본, 한국의 건강보험 비교연구를 하며 논문을 작성했다.

국내 건강보험제도는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운영하는 단일 보험으로 병원과 의원을 운영하는 모든 의료기관은 의무적으로 가입해야 한다. 또 건강보험 재정은 개인 소득의 일정 비율을 보험료로 내는 사회보험 형태로 운영된다. 건강보험이 적용되는 급여 부분과 적용되지 않는 비급여 부분으로 나뉘며 급여 부분이더라도 자기부담금은 일부 내야 한다. 문제는 비급여 비용을 내기 위해 환자들이 가입한 실손보험이다.

노무현 대통령 때 도입된 실손보험제도는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비급여 진료비를 환자들이 감당할 수 있게 하기 위해 도입됐다. 당시 보건복지부는 건강보험의 자기부담금까지 실손보험에서 지급하면 안 된다고 강력히 주장하며 가입자들의 도덕적 해이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란 이유를 들었다. 하지만 보험업계는 비급여 진료비만으론 시장 규모가 너무 작다고 주장하며 자기부담금도 포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결국 보험업계의 주장이 받아들여졌는데 실손보험의 규모가 커지며 문제가 발생했다. 초기에는 상급 종합병원에서만 적용할 수 있게 했으나 의원급에도 실손보험이 적용되는 항목이 속속 생기면서 적용 범위가 크게 늘어난 것이다. 이로 인해 많은 문제점이 생기고 있어 정부의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첫째, 건강보험 자기부담금까지 실손보험 적용 대상이 되면 안 된다. 자기부담금까지 보험 적용을 받으면 불필요한 진료가 늘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둘째, 실손보험이 가격 결정 등에서 투명해져야 한다. 보험사와 의료공급자(의사), 의료수요자(환자) 등이 함께 참여해 가격 등을 결정할 필요가 있다. 정부가 가격 결정에 관여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건강보험 이상으로 원칙에 맞게 투명하게 가격 등 조건이 정해져야 한다.

의료기관은 비급여 진료 비용을 얼마까지 받을 수 있나. 필자는 아직 정책적 가이드라인을 본 적이 없다. 그러다 보니 환자가 피부과에 진료를 받으러 갔는데 피부병 환자는 건강보험이 적용돼 받지 않는다고 답하는 웃지 못할 일이 발생하고 있다.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비급여 진료가 의사들 입장에서 더 이익이 되기 때문이다. 무좀 환자보다 레이저 진료 환자를 더 선호한다.

정부는 급여와 비급여의 혼합 진료를 금지한다는 단순한 계획을 내놨다. 하지만 국내 보험은 비급여 진료가 급여 진료를 보완하는 형태로 설계돼 이를 분리해 진료하는 건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그래서 실손보험을 보완보충적 보험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유럽처럼 전체 진료의 15∼30% 정도만 비급여 진료(민간 보험 진료)를 받게 하는 방법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이렇게 하면 피부과도 단순 피부병 질환 환자들을 70% 정도는 진료해야 한다.

다음엔 유럽에서 비급여를 제한하는 제도에 대해 상세히 알아보겠다.

#헬스동아#건강#의학#실손보험#건강보험#비급여 진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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