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엔 ‘지하 강’ 흐르고 베를린은 ‘스펀지 도시’로 변신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5월 24일 03시 00분


극한호우 대비하는 선진국을 가다

일본 도쿄 시라코강 지하터널 입구부. 저수조(이중 방수문)를 열고 들어가자마자 보이는 광경. 과학동아 제공
일본 도쿄 시라코강 지하터널 입구부. 저수조(이중 방수문)를 열고 들어가자마자 보이는 광경. 과학동아 제공
지난달 18일 방문한 일본 도쿄 네리마구에 설치된 시라코강 지하터널. 지하 45m 깊이로 뻥 뚫린 수직 통로가 보이는가 싶더니 길이 3.2km, 직경 10m나 되는 거대한 지하터널이 모습을 드러냈다. 제방이나 방수로 같은 대규모 콘크리트 시설을 의미하는 ‘그레이 인프라’를 구축해 극한 호우에 대비하는 일본의 전략이 이미 실행에 옮겨지고 있었다.

지난달 26일 찾은 독일 베를린 남부의 복합문화공간 ‘우파 파브릭’에선 화장실 변기를 사용하고 물을 내리자 옅은 갈색 빗물이 쏟아졌다. 이곳은 옥상 정원, 투수성 도로 포장 등 도심 녹지요소를 활용해 홍수를 조절하는 ‘그린 인프라’ 전략의 핵심 공간이다. 빗물을 하수로 배출하지 않고 그 자리에서 처리하는 분산형 빗물 관리 체계가 도시 전역으로 확대되고 있었다.

기후변화로 세계 곳곳에서 그동안 맞닥뜨리지 못한 극한 호우 현상이 나타나자 선진국들은 이에 대응하기 위한 전략을 실행하고 나섰다. 서울시도 극한 호우에 대비하기 위해 지난해 12월 대심도 빗물터널 건설 계획을 발표했다.

● 빈번해지는 극한 호우… 지하에 강 만드는 일본

한꺼번에 쏟아지는 엄청난 양의 비를 뜻하는 극한 호우는 해마다 증가세다. 극한 호우는 시간당 강수량이 50mm를 넘고 3시간 동안 90mm를 넘는 경우를 의미한다. 2022년 8월 서울 강남 일대가 침수될 당시 시간당 강수량은 141.5mm였다. 관측 사상 가장 많은 비가 내린 대표적인 사례다.

일본은 기후변화로 극한호우가 내려도 총 264만 ㎥의 빗물을 임시로 저장할 수 있는 지하터널 등 조절지를 도쿄도 내 총 27곳에 건설했다. 합치면 도쿄돔 약 2.2개를 가득 채울 수 있는 양이다.

지하 45m에 건설된 시라코강 지하터널은 6∼10월 집중호우 기간에 시라코강과 반대편 샤쿠지강에서 범람한 물을 저장했다가 강의 수위가 낮아지면 다시 흘려보낼 수 있도록 설계돼 있다. 지하터널이 가동된 건 2017년 완공 이후 16번에 이른다. 데루이 야스노리 도쿄 제4건설사무소 공사 제2과장은 “앞으로 더 많은 비에 대응하기 위해 시라코강 지하터널을 인근 ‘간다강 환상 7호선 지하터널’과 연결하는 공사를 최근 시작했다”고 말했다.

연결된 지하터널은 향후 도쿄만까지 이을 계획이다. 현재 지하터널은 빗물을 임시로 저장하는 조절지 역할만 하고 있지만 도쿄만까지 연결한다면 터널이 아니라 일종의 하천이 된다. 지하에 새로운 강을 만드는 것이다. 도쿄는 향후 평균 기온이 2도 상승할 것을 고려해 2100년에도 각종 수해 방지 인프라가 지금처럼 작동할 수 있어야 한다는 목표를 지난해 12월 제시했다. 데루이 과장은 “최근 더 많이, 더 자주 오는 비에 대응하기 위해 수해 방지 인프라를 계속 정비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 도시 전체를 ‘녹색 스펀지’로 만드는 독일

독일 포츠담 광장의 빗물 저류공간.
독일 포츠담 광장의 빗물 저류공간.
독일은 일본과 다른 전략으로 극한 호우에 대비하고 있다. 독일 베를린의 분산형 빗물 관리 체계는 도시 전체를 ‘녹색 스펀지’로 만드는 것과 마찬가지다. 우파 파브릭의 분산형 빗물 관리 체계를 설계한 마르코 슈미트 베를린공대 건축연구소 교수는 “지붕에 떨어진 비를 지하 저류조에 모았다가 비오톱(인공 생물 서식지)에서 정화해 화장실 용수로 재활용한다”고 설명했다.

‘베를린의 여의도’라고 할 수 있는 포츠담 광장에도 1990년대 들어 우파 파브릭의 설계를 적용했다. 전체 지붕 면적 4만4000㎡인 포츠담 광장에 내리는 비는 모두 포츠담 광장 내에서 재사용된다. 포츠담 광장에 저장할 수 있는 비의 양은 총 5700㎥에 달한다. 베를린에서 살펴본 그린 인프라는 최대 시간당 50mm의 강수량까지 감당할 수 있었다. 극한 호우에 대비하고 있는 셈이다.

베를린의 그린 인프라 전략은 인구가 도시에 집중된 한국 등 아시아에서 필요성이 더 크다는 게 독일 전문가들의 견해다. 슈미트 교수와 함께 포츠담 광장을 설계한 허버트 드라이자이틀 싱가포르국립대 디자인 및 환경공학과 교수는 “그린 인프라는 홍수와 같은 기후재난의 완충재 역할을 한다”며 “인구가 도시에 집중된 아시아에서 필요성이 특히 클 것”이라고 조언했다.

국내 전문가들은 그레이 인프라(콘크리트 기반 사회기반시설)와 그린 인프라를 함께 적용했을 때 누릴 수 있는 ‘1+1=3’의 효과를 강조했다. 김이호 한국건설기술연구원 환경연구본부 선임연구위원은 “극한 호우 발생 시 그린 인프라가 빗물을 분담해서 처리해 그레이 인프라의 부하를 덜어주는 등 시너지가 발생할 것”이라고 말했다.

#극한호우#대비#선진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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