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의 발전은 새로운 물결을 일으키고, 이 물결은 예상치 못한 성공을 부릅니다. 2000년대 중반 등장한 스마트폰이 대표적인 사례죠.
이 스마트폰의 출시로 애플은 여느 중진국의 1년 GDP에 육박하는 매출을 올리고 있고, 유튜브가 기존 영상 매체를 대체했으며, SNS(소셜 네트워크 서비스)라는 새로운 기능이 ‘페이스북’(현 메타), ‘트위터’(현 X), ‘틱톡’ 등 수많은 거대 기업을 탄생시켰습니다.
물론, 빛이 있으면 그림자도 있듯이 급변하는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시장에 뛰어들었지만, 소기의 목적만을 달성하고 사라져간 기업도 무수히 존재합니다.
이번에 소개할 ‘징가’(Zynga)는 이 새로운 변화에 빠르게 적용하여 유례없는 성장을 기록했지만, 불과 4년 만에 유례없는 하락을 기록한 많은 이야깃거리를 남긴 회사입니다. 새로운 물결에 편입하여 성장했지만, 경영진의 도덕적 해이와 새로운 흐름에 적응하지 못해 사그라든 IT 기업의 흥망성쇠를 그 누구보다 빠르게 겪은 기업이기도 하죠.
●SNS의 소셜 기능에 집중한 ‘징가’ 페이스북을 만나다
‘징가’는 2007년 창업자 ‘마크 핑커스’가 ‘Presidio Media’을 창업하면서 시작됐습니다. 당시 미국은 페이스북과 트위터의 대성공으로 인해 창업 열풍이 불고 있었고, ‘징가’ 역시 이러한 분위기에 힘입어 미국의 여러 벤처 캐피털(BC)의 투자를 받아 설립된 수많은 회사 중 하나였죠.
‘마크 핑커스’는 엄청난 신드롬을 불러일으키고 있던 ‘페이스북’ 속에서 이뤄지고 있는 정보의 움직임에 주목했습니다. 많은 이들이 페이스북, 트위터를 통해 온라인에서 사귄 새로운 친구들과 소통하며 취미, 일상 등 여러 정보를 공유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죠. 이에 징가는 자신들의 게임에 여러 사람과 함께 할 수 있는 소셜 요소를 도입하게 됩니다.
사실 징가에서 선보인 게임은 당시 출시되던 게임들과 큰 차이점이 없었는데요. 실제로 징가가 처음 출시한 게임인 ‘텍사스 홀덤 포커’ 역시 이전에 있었던 카지노 게임과 별반 차이가 없었고, 이후에 출시된 게임들도 끊임없이 표절 논란에 휩싸일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징가는 이 게임에 SNS을 통해 다른 이들에게 지원받을 수 있고, 자기 게임을 알려 추가적인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소셜 기능’을 더해 차별화를 두었습니다. 이는 곧바로 시장의 반응으로 이어져 페이스북에 게임을 출시한 지 불과 1년 만인 2008년 월 사용자 90만 명이라는 엄청난 기록을 세우게 됩니다.
여기에 2009년 전세계에 소셜네트워크게임(SNG)이라는 하나의 장르까지 만들어낸 ‘팜 빌리지’를 출시한 이후에는 일일 사용자(DAU) 2천만 명, 월 사용자 2억 명이라는 유례없는 기록을 세우며, 전세계에 SNG 열풍을 일으키기도 했죠.
●광폭 인수전으로 상장까지 성공한 징가
물론, 이러한 급속한 성장은 곧 성장통으로 이어졌습니다. 징가의 성공을 본 수많은 기업이 앞다투어 이 SNG 장르에 뛰어들었고, 쉽고, 간편함에만 집중한 징가의 게임들은 게임성에서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하면서 기존 게임들의 매출도 점차 감소하고 있었죠.
이에 ‘징가’는 이 문제를 아주 간편한 방법으로 해결하려고 했습니다. 바로 실력 있는 개발사를 인수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징가는 막강한 자본력을 바탕으로, 2009년부터 ‘마이 마인 라이프’(My Mini Life)의 인수를 시작으로 수많은 게임사를 인수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수많은 게임 스튜디오를 거느리게 된 ‘징가’는 2010년 말 출시한 ‘시티빌’이 다시 대성공을 거두면서 월 사용자 1억 명이라는 기록을 세우게 되어 더욱 큰 규모의 게임사로 발돋움하게 됩니다.
불과 직원 수 10명의 스타트업에서 4년 만에 2천여 명이 넘는 직원과 여러 국가에 게임 스튜디오를 거느릴 정도로 성장한 ‘징가’는 2011년 ‘골드만삭스’와 ‘모건스탠리’를 통해 주당 12달러에 상장에도 성공합니다. 세계 유수의 게임사에 ‘징가’가 이름을 올린 순간이었죠.
●급격한 성장의 후폭풍. 대기업병에 걸린 징가
하지만 ‘징가’의 하락은 바로 이 영광의 순간부터 시작됐습니다. 당시 SNG의 범람으로 페이스북 스팸 광고가 사회적인 문제로 대두되기 시작하면서 페이스북은 ‘안티 스팸’ 정책을 폈는데, 그 결과 수많은 SNG 개발사가 문을 닫기 시작했습니다. SNG 장르 자체가 사양 산업으로 바뀐 것입니다.
더욱이 2010년 이후부터 게임 시장의 트랜드는 웹기반의 게임에서 스마트폰 기반의 모바일 게임으로 변화하고 있었지만, ‘징가’는 이 흐름에도 제대로 적응하지 못했습니다. 바로 급격한 성장의 후폭풍으로, 회사 내부에 각종 문제가 발생했기 때문이었죠.
당시 ‘징가’는 과도한 성과급 위주의 경영으로, 업무가 가중되고 있었고, 내부 경쟁을 우선시하는 분위기 탓에 직원들은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으며, 내부 불만이 극에 달해 있었습니다.
여기에 창업자인 ‘마크 핑커스’가 상장 직후 자신이 보유한 주식을 모두 팔아버린 것에서 보듯 회사의 방향성을 잡아주어야 할 임원진들 역시 성공에 취해 나태해지고 있었고, 일정 수익을 달성하면 제공되는 인센티브 정책까지 없애버리며 직원들의 사기 역시 곤두박질쳤죠.
그 결과 징가는 성과를 내지 못하면 발언권마저 잃어버리는 경직된 분위기 속에 경영진들의 과도한 탐욕까지 더해지면서 덩치는 커졌지만, 속은 병들어가는 소위 ‘대기업병’에 걸린 기업과 같은 길을 걷기 시작했습니다.
SNS라는 새로운 물결에 탑승해 성공했지만, 경직된 내부 분위기 속에 스마트폰 게임이라는 새로운 흐름에 적응하지 못한 징가의 실적은 곤두박질쳤고, 주당 12달러였던 주가 역시 반토막에 이르렀습니다.
이에 징가는 2013년 전체 직원의 18%에 달하는 520명의 인력을 정리하는 구조조정을 시작으로, 전세계 게임 스튜디오를 정리하기 시작했지만, 기업 가치는 상장 직후와 비교해 1/4에 불과할 정도로 급격히 가라앉고 있었죠.
비록 2014년부터 카지노 게임이 성과를 내며, 다시 재기를 노리는 듯했지만, 다시는 이전의 영광을 되찾지 못했습니다.
결국 징가는 2022년 ‘테이크 투 게임즈’(이하 2K)에 127억 달러에 인수되었습니다. 당시 게임업계 인수 금액 중 최고가를 경신하기는 했지만, 이같이 금액이 커진 이유에는 징가 주식을 64% 프리미엄으로 계산한 것과 부채를 함께 인수한 요인이 컸습니다.
이처럼 ‘징가’는 시대의 흐름을 읽은 과감한 시도와 새롭게 대두되던 플랫폼을 통해 시장을 먼저 선점하며 성공을 거뒀지만, 기업의 성장통을 이겨내지 못하며 주저앉은 회사로 역사에 이름을 남기게 되었습니다.
이는 한국 게임사들에도 좋은 반면교사가 되는데요. 한번의 성공에 샴페인을 터트리는 것보다 새로운 흐름에 적응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는 것. 이것이 ‘징가’의 흥망성쇠가 준 가장 큰 교훈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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