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 비켜! “세상에서 가장 작은 식물에 단백질 가득”[허진석의 톡톡 스타트업]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6월 8일 01시 4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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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구리밥으로 식물성 단백질 개발 ‘바이루트’
한약재 유통하다 직접 재배 착안
성장속도 기존보다 2.7배 이상 높여… 효율적인 분리막 추출 방식 개발
“콩보다 더 뛰어난 공급원 만들 것”

허태욱 바이루트 대표가 대구 군위군에 있는 연구소 스마트팜에서 재배 중인 분개구리밥(워터렌틸)을 들어 보이고 있다. 대구=허진석 기자 jameshur@donga.com
허태욱 바이루트 대표가 대구 군위군에 있는 연구소 스마트팜에서 재배 중인 분개구리밥(워터렌틸)을 들어 보이고 있다. 대구=허진석 기자 jameshur@donga.com

새로운 발견은 기회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대구 군위군에 연구소를 두고 있는 ‘바이루트’는 수초(水草)인 개구리밥에서 그런 기회를 찾았다. 개구리밥의 단백질 함량이 콩보다 많고, 이틀이면 개체 수가 2배로 늘어날 정도로 성장 속도가 빠르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다.

바이루트는 연구소로 사용 중인 경북대 농업생명과학대학 부속 실험실습장에서 부평초와 분개구리밥이라는 두 가지 개구리밥을 키우고 있다. 개구리가 물속에서 나올 때 얼굴에 붙이고 나오는 경우가 많아 개구리밥으로 불리지만 개구리는 개구리밥을 먹지 않고 곤충을 잡아 먹는다.

우리나라에서 흔히 보이는 개구리밥은 부평초다. 지름이 1cm 정도 되는 여러 장의 작고 둥근 잎과 뿌리를 가지고 물 위에 떠서 자란다. 강장(強壯)이나 발한(發汗), 이뇨(利尿), 해독에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한약재 원료로 쓰이고, 보습이나 염증 개선을 위한 화장품 원료로도 쓰인다.

분개구리밥은 지름이 1mm 정도밖에 안 되는 녹색 알갱이처럼 생겼다. 뿌리는 없다. 역시 물 위에 떠서 성장한다. 세상에서 가장 작은 식물로 불린다. 건조한 분개구리밥 기준으로 단백질 함량이 40%나 된다. 콩과 같은 양의 단백질을 얻는 데 물과 땅이 10분의 1만 있어도 된다.

지난달 21일 연구소에서 만난 허태욱 대표(35)는 “한약재를 취급하다 개구리밥의 영양 성분을 알게 됐다. 부평초나 분개구리밥을 국내에서 재배하는 곳은 우리밖에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지속 가능한 단백질 원료 확보에 기여하고 싶다”고 했다.

●“세상에서 가장 작은 ‘채소’”

바이루트가 식품 원료로서 잠재력이 크다고 보고 집중하는 식물은 분개구리밥이다. 분개구리밥은 김이나 파래 같은 엽상체 식물이다. 줄기와 잎, 뿌리 기관이 분화하지 않은 식물로 전체가 잎으로 작용하면서 물과 양분을 흡수하고 광합성을 한다.

식품공전(食品公典·식품위생법에 따라 식품 제반 규정을 제시하는 고시)에 분개구리밥은 식품에 사용할 수 있는 원료로 등재돼 있다. 미국이나 이스라엘 스타트업들도 단백질 원료나 식품으로 내놓고 있다. 이 업계에서는 물에서 나는 렌틸콩이라는 의미로 워터렌틸로도 부른다. 태국 미얀마 라오스 같은 동남아시아에서는 오래전부터 식재료로 쓰였다. 태국 북부에서는 카이남(khai-nam)이라고 부르는데, ‘물달걀’이라는 의미다.

연구소에서 갓 수확한 워터렌틸을 맛봤다. 상추 맛이 살짝 나는가 싶더니 풋사과 맛도 조금 났다. 전반적으로 맛이나 향은 약해서 채소지만 채소를 먹는다는 느낌은 적다. 식감은 사각거리는 편이다.

분개구리밥에는 전분도 40% 함유돼 있다. 필수아미노산도 고르게 분포한다. 바이루트 분석에 따르면 워터렌틸에는 근력 증강에 필요한 발린과 이소류신 함량이 대두(大豆)보다 많다. 허 대표는 “친환경적이고 지속 가능한 대체 식량과 대체 단백질 가능성 덕분에 일본 아지노모토와 미국 켈로그 같은 세계 유수의 식품 기업과 세계적 벤처캐피털 구글벤처스 등이 관련 스타트업들에 투자하고 있다”고 전했다.



워터렌틸은 맛과 향이 강하지 않아 채소를 싫어하는 아이도 거부감 없이 즐길 수 있다. 요리에 넣을 때 색감도 좋다. 위쪽 사진부터 손으로 뭉쳐 잡은 워터렌틸, 팟타이 로제파스타 찹스테이크에 얹은 워터렌틸. 바이루트 제공
워터렌틸은 맛과 향이 강하지 않아 채소를 싫어하는 아이도 거부감 없이 즐길 수 있다. 요리에 넣을 때 색감도 좋다. 위쪽 사진부터 손으로 뭉쳐 잡은 워터렌틸, 팟타이 로제파스타 찹스테이크에 얹은 워터렌틸. 바이루트 제공
바이루트는 생산량이 적지만 워터렌틸을 온라인 쇼핑몰에서 신선식품으로 공급하곤 한다. 허 대표는 “워터렌틸로 요리해 본 주부들이 맘카페에 ‘김밥이나 계란말이에 넣으니 야채를 먹기 싫어하는 아이가 거부감 없이 잘 먹었다’ ‘그냥 얹어 먹어도 되니 채소 섭취가 간편해졌다’ 같은 후기를 올리곤 한다”고 했다. 바이루트는 워터렌틸을 넣은 프로틴바도 만들어 판매 중이다.

허 대표는 식물성 단백질 원료로 분개구리밥이 활용될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대량생산 시설이 갖춰지고 분개구리밥 양식이 확산된다면 단백질이 풍부한 새 신선식품을 확보할 수 있으며 축산 사료용 콩 재배를 위한 산림 훼손까지 줄일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한다. 허 대표는 “세상에서 가장 작은 식물로 인류의 큰 문제인 식량 부족과 기후변화 해결에 도움이 되기를 기대한다”고 했다.

●식물성 단백질 대량생산 기술

바이루트는 분개구리밥 대량생산 기술과 단백질을 효율적으로 뽑아내는 기술을 고도화하고 있다.

대량생산을 위해 성장 속도를 기존의 2.7배 이상으로 높이는 법을 개발했다. 그동안은 48시간 정도에 개체 수가 2배로 늘어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를 17시간 20분까지 줄인 상태다. 분개구리밥이나 부평초 모두 무성생식 한다. 식물 본체에서 ‘싹’이 나 일정 시간이 지나면 분리돼 번식한다. 허 대표는 “물 온도와 필요한 영양분, 수확 후 남겨 두는 개체 수 같은 여러 변수를 고려해 생육 속도를 더 빠르게 하는 데 성공했다”며 “인공지능 등을 활용해 성장 속도를 계속 높이고 있다”고 했다.

분개구리밥 생육에 특화된 식물공장 시스템도 개발 중이다. 사람의 손길이 적게 가도 되도록 물과 영양액이 자동으로 공급되고 수확도 자동화하며, 일정 주기마다 필요한 바닥 정비도 자동화할 계획이다.

수확한 분개구리밥에서 단백질을 추출하는 공정은 기존 용해식 공정보다 40%가량 간편해진 분리막 활용 방식을 개발했다. 기존 단백질 추출 공정 방식은 원료를 가라앉히고 원심분리와 전기분해를 거친 뒤 다시 침전, 원심분리, 막 추출 같은 공정을 거친다. 이어 식물이나 곡물을 특정 용매로 해서 여러 차례 녹이는 과정 등을 거친다. 반면 바이루트가 개발한 공정 방식은 원료를 가라앉힌 뒤 분리막 추출 공정만 거치면 된다.

허 대표는 “바이루트 기술고문 이성은 경북대 응용생명과학과 교수와 변홍식 계명대 화학공학과 명예교수의 도움으로 경제성을 갖춘 독자적인 단백질 추출 기술을 확보했다”며 “더 큰 용량에 적용하기 위해 기술을 고도화하는 과정에 있다”고 했다.

분개구리밥을 신선식품과 건조 분말, 분리 단백질 등으로 판매할 계획인 바이루트는 올해 투자를 받아 양산 시설을 갖출 계획이다. 부산의 유명 비건(채식) 레스토랑과는 워터렌틸 요리 개발 협약을 맺었고, 제빵 재료로 활용하려는 유명 카페들과 납품 협의도 진행 중이다. 부평초는 양식을 해서 프랑스 화장품 회사에 꾸준히 공급하고 있다.

이 같은 기술 개발에는 개구리밥의 짧은 생육 기간이 큰 도움이 됐다. 하루 정도면 1세대 성장이 끝나는 덕분에 다양한 환경이나 기술을 적용한 실험을 빠르게 시행할 수 있었다. 허 대표는 “농업 스타트업 중 작물을 키우는 경우 짧게는 수개월에서 1년이 걸리는데, 하루 단위로 실험 계획을 짤 수 있어 상대적으로 기술 개발 속도도 빨랐다”고 회상했다.

●“한약재 유통하다 새로운 기회 발견”


허 대표는 중국 상하이 중의약대 중약학과를 졸업한 뒤 한약재를 유통하는 동우당제약 마케팅지원실장을 지냈다. 유통 품목 중에는 우리나라 연못에서 채취해 프랑스 화장품 회사에 납품하는 부평초가 있었다. 전국에서 부평초 채취를 전문으로 하는 단 한 사람에게 의뢰해 수출하고 있었는데 태풍 같은 천재지변 탓에 채취량이 없는 해도 있어 애로가 많았다.

허 대표는 “부평초를 직접 재배하면 어떨까 궁리하면서 생육 조건 등을 공부하다 분개구리밥까지 알게 된 것이 창업 계기였다”고 했다. 창업하면서 경북대 농업생명과학대학 응용생명과학과 석사과정에도 진학해 수료한 상태다. 최고기술책임자는 박준성 이사가 맡고 있다. 경북대 원예학과 학사와 석사를 거쳐 스마트팜 식물 재배 및 천연물 나노 소재 연구를 하는 회사를 다니다 합류했다.

아직은 대량생산이 되지 않아 생산단가를 낮춰야 하는 과제가 바이루트에 남아 있다. 허 대표는 “콩에 비해 생산단가가 높지만 필요한 토지와 물이 적어 지속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자본이 확충되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대구=허진석 기자 jameshur@donga.com
#가장 작은 식물#개구리밥#식물성 단백질#바이루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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