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PC 시장의 중심 국가는 엔비디아, 인텔, AMD를 보유한 미국이지만, 제조 분야를 포함한다면 대만을 꼽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우리나라가 1990년대 반도체 산업을 육성하기 시작할 때, 대만은 저렴한 노동력과 기술 집약적인 산업인 PC 제조업을 주요 산업으로 육성했다. 2000년이 되기 전에 대만제 PC 점유율은 전 세계 10%를 넘었으며, 주변기기는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정부의 노력 덕분에 광다 컴퓨터, 컴팔 컴퓨터, 윈스트론, 인벤텍, 페가트론 등 대규모 계약 노트북 제조 업체가 등장할 수 있었고, 에이수스, 에이서, MSI, 기가바이트 등 노트북 설계 및 디자인을 맡는 주요 PC 기업도 모두 대만 기업일 만큼 전 세계 시장에서 그 비중이 높다. 이로 인해 인텔은 자사의 노트북 인증 규격인 ‘이보(Evo)’ 인증을 위한 노트북 조율을 위해 대만 현지에 OEM 랩(Lab)을 두고 대만 주요 제조사와 협력하고 있다.
지난 6월 열린 아시아 최대 규모 IT 박람회 ‘컴퓨텍스 2024’ 참석 차 대만을 방문한 시점에 대만 타이베이에 있는 인텔 OEM 랩의 초청을 받아 내부를 둘러볼 기회를 가졌다. 대만에서 설계된 노트북이 어떻게 인텔 이보 인증으로 완성도를 높이는지 그 현장을 소개한다.
인텔 이보 인증, 인텔이 직접 돕는다
인텔 이보 인증은 인텔 프로세서가 탑재된 고성능 노트북 플랫폼 브랜드다. 인텔에서 직접 노트북 성능을 검증하고 인증하므로 사용자가 복잡하게 제품 스펙을 비교하며 고를 필요 없이 ‘이보’ 인증 제품만 사면 된다. 주요 인증 절차는 최신 인텔 코어 울트라 프로세서 탑재, 1초 이내의 절전 해제 및 보안 기능, 실사용 소음 억제, FHD 해상도에서 9.5시간 이상 지속되는 배터리 수명 등이다.
인텔 이보 노트북이면서 이보 인증이 된 제품은 모두 다 이런 조건을 만족하는 제품인 셈인데, 그 배경에는 제품을 통해 실제 성능을 측정 및 조율하는 인텔 OEM 랩의 도움이 있다. 수많은 과정이 있겠으나 기자단에게는 총 여섯 개 과정만 공개되었으며, 별도 사진 촬영 및 기록이 허용되지 않아 제공된 사진과 필기한 내용으로 기사를 쓴다. 간단한 ‘윈도우 헬로’ 잠금 해제, 과정은 간단치 않아
윈도우 헬로는 윈도우 노트북의 잠금 해제 기능이다. 노트북 상단에 배치된 웹캠과 IR 카메라를 활용해 안면을 인식하고, 이를 통해 빠르게 잠금을 해제하는 기능이다. 실제로 활용하면 비밀번호보다 인식 속도가 빠르고, 제법 정확하기 때문에 자주 쓰게 된다. 하지만 실제 활용만큼 조율 과정은 간단하지 않다. 우선 제품마다 카메라 성능이 다 다르고, 또 인식 속도나 효율도 조금씩 다르다.
마이크로소프트는 2초 이내에 잠금을 해제해야 하고, 사용자가 15도 내외의 각도로 쳐다보고 있어야 하며 다양한 표정과 영역까지 확인하는 것을 인증 기준으로 삼는다. 하지만 실제 결과물은 조명 조건과 안경 착용 여부, IR 센서의 작동 환경까지 영향을 미친다. 대다수 제품은 제조사에서 조율하지만, 인텔 이보 제품은 인텔 OEM 랩에서 조율한다.
다크룸(Dark Room)이라 불리는 실험실에서는 스마트폰 및 노트북의 객관적 성능 표준인 VCX 테스트를 기반으로 노트북 카메라를 실험한다. 카메라는 밝은 조명, 중간 조명, 저조도, 플래시라이트, 근적외선 등 다양한 조건으로 설정돼 있고, 카메라가 사람 모형 얼굴을 다양한 각도와 형태로 촬영하며 인식 데이터를 얻는다. 이때 인식 데이터는 인종과 성별을 다양하게 테스트하고, 또 주변에 다른 사람 얼굴을 배치하는 등 방해 테스트까지 진행한다. 약 2~3일 간 테스트를 거쳐야만 노트북에서 약 1~2초 만에 안면인식으로 잠금이 해제될 만큼 조율된다. 노트북 성능 및 소음 조율하는 ‘인텔 오토랩’
노트북의 주요 반도체에서는 열이 발생하고, 이를 해소하기 위해 쿨링팬을 비롯한 냉각 장치가 끊임없이 동작한다. 노트북이 얇을수록 방열 구조도 얇아져 해소 성능이 떨어지기 때문에 쿨링팬이 더 빨리 돌고, 이로 인해 소음이 더 발생한다. 노트북 성능을 높일 경우에도 더 많은 열이 발생하므로, 쿨링팬으로 인한 소음이 커진다. 따라서 제조사 입장에서 최적의 성능과 소음 조건을 잘 조율해야 한다.
대다수 노트북은 제조사가 직접 이 부분을 설정하나, 인텔 이보 인증은 인텔에서 직접 ‘오토룸’을 통해 최적의 데이터를 확보한다. 오토룸에서는 작동 환경을 25도로 맞춰놓고, 약 2주간 냉각, 소음, 성능(Cool, Quiet, Performance, CQP) 테스트를 진행한다. 다양한 사용 시나리오를 통해 노트북의 발열과 소음 성능의 상관관계를 분석한 뒤, 동작 속도나 전력 인가 등에서 최적의 값을 찾는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오토룸 한쪽에는 어쿠스틱 룸이라는 이름의 초 방음실이 배치돼 있다. 성능이 조율된 노트북은 곧바로 어쿠스틱 룸으로 이동해 소음 테스트를 진행한다. 엔지니어는 초 민감 마이크와 일반 마이크, 머리 형태의 스테레오 마이크로 노트북을 둘러싸고 노트북 쿨링팬의 동작 소음을 점검한다.
이때 주파수는 22~2만 Hz 사이로 테스트하고, 최대 소음은 지하철 내부 수준인 80데시벨을 넘지 않도록 조율한다. 게이밍 노트북 등의 제품은 100데시벨에 가까울 만큼 시끄러운 제품이 많은데, 인텔 이보 인증 제품은 80데시벨을 넘지 않으면서 기대 성능은 발휘하도록 조율된다.
블루스크린 데이터도 하나하나 수집해
블루스크린 및 에러 상황은 원활한 작업을 방해하고, 장기적으로는 제품에 대한 만족도를 저해하는 요인이다. 인텔은 최신 노트북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오류 코드 및 상태를 직접 카메라로 촬영하고, 이에 대한 오류 상황을 직접 파악해 문제를 잡는다. 이 과정을 통해 제품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문제점이 출하 전에 수정되고, 인텔 클라우드 AI 서버에 관련 내용이 업로드된 뒤 추후 보완을 거친다.
마이크 및 스피커, 최적의 음질 내도록 조율
노트북 사양에서 잘 고려되지 않지만, 제조사들이 상당히 신경 쓰는 부분이 바로 음향이다. 노트북을 활용한 화상회의, 엔터테인먼트 감상 빈도가 늘면서 음향 부분도 경쟁력이 되기 때문이다. 인텔 이보 역시 노트북 음향이 일관적인 성능을 내도록 인텔 음성 플랫폼 평가 도구 세트(System Provider Evaluator Too, SPET)라는 툴로 음향을 테스트한다.
앞서 어쿠스틱 룸과 마찬가지로 방음실에서 조율되고, 기기마다 성능이나 배치가 다른 오디오 하드웨어를 최대한 우수한 품질이 내도록 조율한다. 엔지니어가 직접 튜닝 전 제품과 튜닝 후 제품의 음향을 들려줬는데, 튜닝을 거친 제품은 음장감과 음향 품질 측면에서 굉장히 큰 차이를 보여줬다. 또한 튜닝이 진행되고 나면 제품에 따른 스피커 볼륨과 울림 수준, 음향 생성, 몰입 감 등 여섯 가지 항목으로 된 보고서를 생성해 제조사로 송부한다. 블루투스 및 와이파이 활용한 부가 기능도 직접 점검
인텔 이보 인증에는 무선 기능에 대한 테스트도 있다. 랩 자체에서 와이파이 테스트도 진행하겠으나 이 부분은 시연되지 않았고, 대신 와이파이를 활용한 보안 기능인 ‘와이파이 센싱 테스트’를 체험할 수 있었다. 노트북에 탑재된 와이파이 칩은 일정한 강도로 무선 신호를 인식하는데, 사람이 가로막아 생기는 미세한 신호 세기의 차이를 인식해 제품의 보안 성능을 강화한다. 가령 사람이 앉아있다가 사라지면 자동으로 잠금을 걸고, 사람이 앉으면 윈도우 헬로가 더 빨리 동작하도록 신호를 내리는 식이다.
반대쪽에는 인텔 이보 기반의 블루투스 주변기기 장치도 볼 수 있었다. 하나의 오디오 송신기로 여러 기기에 동시에 사운드를 보내는 오라캐스트 블루투스 기기를 비롯해 키보드, 마우스 등 다른 기기에 대한 인증 및 안정성 테스트도 이뤄지고 있었다. 노트북 자체에 대한 시험은 아니지만 어느 것 하나 놓치지 않겠다는 인텔의 노력이 엿보이는 부분이었다. 소비자 경험에 대한 인텔의 세밀한 접근법 느껴져
앞서 SPET 테스트룸에서 만난 사운드 엔지니어는 인텔 OEM 랩이 대만에 있는 이유에 대해 “방음실 관련 자재와 구축 솔루션, 그리고 사후 지원까지 모두 지원되는 국가는 대만 뿐”이라고 말했다. 아마 테스트에 필요한 다른 구축 장비나 제조 역시 대만제가 많을 것이다. 타이베이가 전 세계 주요 노트북 제조사의 본진인 점도 크지만, 노트북 산업과 관련된 생태계 전반이 대만을 중심으로 형성돼 있음을 알 수 있다.
인텔은 이런 이점을 잘 살려 노트북 및 PC 제조업체들과 꾸준히 협력 관계를 맺어왔고, 또 인텔 이보 테스트 등을 통해 인텔 자사의 브랜드 가치는 물론 다른 노트북 기업의 경쟁력을 끌어올리는 방식으로 함께 성장해오고 있다. 이번 컴퓨텍스에서 인텔 이외에도 AMD, 퀄컴에서도 노트북용 프로세서를 대거 공개했지만, 인텔 OEM 랩 같은 강력한 경쟁력 수단이 있는 한 점유율의 벽을 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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