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장르의 기틀을 세운 반석 같은 게임들은?[조영준의 게임 인더스트리]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7월 5일 1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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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에는 다양한 장르가 존재합니다. 화려한 액션을 중점적으로 보여주는 ‘1인칭 슈팅’(FPS)부터 치밀하게 이뤄진 퍼즐을 풀어나가는 ‘어드벤처’.

그리고 방대한 세계관을 기반으로 성장해나가는 주인공의 이야기를 간접 체험하는 ‘RPG’(롤플레잉 게임), 건물을 짓고 유닛을 운영하는 ‘시뮬레이션’ 등 일일이 열거하기도 힘들 정도로 많은 장르가 등장해 유저들의 사랑을 받고 있죠.

이 게임의 장르는 수십 년의 세월을 거치며 끊임없이 융합되고, 또 새로운 요소가 더해지면서 재창조되고 있는데요. 이제는 하나로 구분 짓기 힘들 정도로 수많은 장르가 등장하고 있지만, 수많은 가지를 가진 나무에 뿌리가 존재하듯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면 장르마다 기틀을 세운 반석 같은 게임이 하나씩 존재합니다.

‘둠’(사진 출처-id소프트)
‘둠’(사진 출처-id소프트)
●대학 서버를 마비시키며 탄생한 FPS의 완성 ‘둠’

현재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사랑을 받는 장르 중 하나인 FPS를 정립한 게임은 바로 1993년 id 소프트에서 근무하던 희대의 천재 개발자 ‘존 카멕’의 손에서 탄생한 ‘둠’(DOOM)입니다.

이전에도 1인칭으로 등장한 게임은 몇몇 존재했지만, 다양한 총기를 활용한 액션과 1인칭의 시점에 맞게 구현된 맵 구성, 그리고 온라인 대전인 ‘PvP’ 기능을 처음 선보이는 등 ‘둠’이 선보인 시스템과 콘텐츠는 지금의 FPS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시대를 앞서간 작품이었죠.

이제는 전설이된 이드소프트의 멤버들(왼쪽 파란티가 존 카멕)(사진출처-게임동아)
이제는 전설이된 이드소프트의 멤버들(왼쪽 파란티가 존 카멕)(사진출처-게임동아)
이 ‘둠’은 탄생부터 범상치 않았습니다. 1993년 당시 ‘둠’은 위스콘신 대학교의 사내 전선망(FTP)를 통해 처음으로 배포되었는데, 워낙 많은 이들이 이 전산망에 접속하다 보니 서버 자체가 다운됐습니다. 최초로 게임으로 인해 서버 다운이 발생한 순간이었죠.

둠 플레이 화면(사진출처-게임동아)
둠 플레이 화면(사진출처-게임동아)
더욱이 대학을 비롯해 기업과 심지어 연구소 등 인터넷이 설치된 모든 곳에 퍼지기 시작한 ‘둠’은 열풍을 넘어 광기에 가까운 인기를 누리기 시작했고, 업무시간에 ‘둠’을 플레이하지 못하게 하는 조항이 생기거나, PC에 ‘둠’을 찾아내는 별도의 프로그램이 배포될 정도였습니다.

또 하나 대단한 점은 이 ‘둠’은 ‘게임엔진’으로 만들어진 작품이라는 것입니다. 이전의 게임은 개발자가 알고 있는 코드의 양에 따라 그래픽, 물리구현 형태가 모두 달랐지만, 당시 최고의 프로그래밍 기술을 가지고 있던 ‘존 카멕’은 전작인 ‘울펜슈타인 3D’에서부터 사용된 코드를 재정립하고 이를 하나의 ‘툴’(Tool)로 효과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둠 엔진’을 만들어 냈습니다.

이 ‘둠 엔진’은 하나에서부터 열까지 일일이 코드를 제작해야 하는 기존의 게임 개발 방식을 완전히 뒤바꿔 놓았고, ‘둠 엔진’을 바탕으로 다양한 장르의 게임이 만들어져 지금의 개발 환경을 조성하는 것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죠.

임신테스트기로 구현한 둠(사진출처-게임동아)
임신테스트기로 구현한 둠(사진출처-게임동아)
재밌는건 이 ‘둠’에 대한 유저들의 광기는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는 건데요. 실제로 화면이 출력되는 디스플레이만 있으면 ‘둠’을 구동시키는 일종의 챌린지가 있는데, 스마트폰, 냉장고는 기본에 심지어 임신테스트기, 엑셀로도 ‘둠’을 구현한 사례가 지금도 공개되고 있습니다.

울티마1(사진출처-게임동아)
울티마1(사진출처-게임동아)
●종이에 쓰여지던 RPG, PC로 옮겨지다- 울티마

현재 가장 많은 인기를 얻고 있는 장르 중 하나인 RPG는 사실 종이와 펜 그리고 주사위를 이용해 여러 명이 각자 ‘역할’(Role / 롤)을 맡아 플레이하는 ‘테이블 탑 롤플레잉 게임’으로 시작된 장르입니다. 이 종이와 펜으로 구현되던 RPG의 무한한 세계를 PC로 옮겨낸 작품이 바로 1981년 처음 등장한 ‘울티마’였습니다.

울티마1 이미지(사진출처-게임동아)
울티마1 이미지(사진출처-게임동아)
한국에서는 먹튀 이미지로 그리 인식이 좋지 않은 ‘리차드 개리엇’이 처음 선보인 ‘울티마’가 RPG 장르에 미친 영향은 그야말로 엄청난데요. ‘울티마’ 1편에서는 유저의 취향에 따라 캐릭터를 성장시킬 수 있는 요소가 처음 도입되었습니다.

울티마4(사진출처-게임동아)
울티마4(사진출처-게임동아)
여기에 ‘울티마’ 3편에서는 여러 캐릭터를 성장시켜 함께 싸울 수 있는 ‘파티’ 시스템을 처음 도입했고, 4편에서는 8대 미덕을 따라가며 진리에 접근해가는 ‘해탈과 깨달음’이라는 심오한 주제를 게임으로 풀어내어 극찬을 받기도 했습니다. 시리즈를 이어가며 현재 RPG의 기본 틀을 구현한 게임이 바로 이 ‘울티마’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셈이죠.

울티마 온라인(사진출처-게임동아)
울티마 온라인(사진출처-게임동아)
이 ‘울티마’는 MMORPG(대규모 다중 접속 역할 수행 게임)의 대중화에도 앞장섰습니다. 1997년 등장한 ‘울티마 온라인’은 유저들의 손으로 세계를 창조하고 사냥을 통한 자원 획득, 다양한 스킬과 직업 그리고 유저 간의 대결이 펼쳐지는 지금의 MMORPG의 기틀을 세웠죠.

‘Colossal Cave Adventure’(사진출처-wiki)
‘Colossal Cave Adventure’(사진출처-wiki)
●책에서 펼쳐진 모험의 세계를 게임으로 즐기다 ‘어드벤처’

‘어드벤처’ 게임은 마치 소설을 읽는 듯 몰입도 높은 스토리를 풀어가는 재미와 유저의 도전 욕구를 자극하는 다양한 퍼즐, 그리고 한정된 공간에서 펼쳐지는 머리싸움 등을 중점으로 선보이는 장르입니다.

그렇다면 게임 장르에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어드벤처’는 왜 이렇게 불리게 되었을까요? 이유는 생각보다 간단합니다. 이 장르를 처음 선보인 게임의 타이틀이 ‘어드벤처’였기 때문이죠.

어드벤처 게임의 시작은 1977년 PDP-10 메인프레임 PC로 개발된 텍스트 게임인 ‘Colossal Cave Adventure’라고 알려져 있는데요. 보물과 금이 존재하는 동굴을 탐험하고, 대화문을 통해 상호작용하며, 동굴을 탐험하는 요소가 도입된 최초의 어드벤처 게임이었습니다.

1980년에 출시된 어드벤처(사진출처-게임동아)
1980년에 출시된 어드벤처(사진출처-게임동아)
물론, 이 ‘Colossal Cave Adventure’는 학술 가치는 있지만, 대중화되지는 못했는데, 이 어드벤처 장르를 성립하고, 대중적인 흥행을 이끈 게임은 1980년 아타리에서 출시한 ‘어드벤처’였습니다.

이 ‘어드벤처’는 사악한 마법사가 숨긴 성배를 다시 돌려놓는다는 전형적인 용사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작품이었습니다. 특히, 미로를 탐험하며 아이템을 찾아내고, 곳곳에 퍼져 있는 힌트를 순서대로 조합해 퍼즐을 풀어나가는 요소를 도입했고, 이 결과에 따라 성배를 지키는 용들을 물리치거나 잡아먹히는 등 다양한 결과를 볼 수 있었죠.

어드벤처 게임 이미지(사진출처-게임동아)
어드벤처 게임 이미지(사진출처-게임동아)
여기에 이 ‘어드벤처’는 총 3단계의 ‘난도’도 있었는데, 1단계는 미로가 없고, 2단계는 기존 게임과 동일하게 진행되며, 3단계는 용의 위치나 힌트가 랜덤으로 등장해 게임 맵을 외워야 진행이 될 정도로 굉장히 어려워졌습니다. 초보부터 숙련자까지 게임에 대한 이해도가 높으면 높을수록 더 다양한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시스템을 이미 40년 전부터 선보인 셈이었죠.

한가지 흥미로운 것은 이 ‘어드벤처’는 개발자가 이미지나 독특한 요소를 숨겨놓는 ‘이스터 에그’를 널리 알린 게임이라는 겁니다. 당시 ‘아타리’는 게임에 개발자의 이름을 넣지 못하게 했는데, ‘어드벤처’를 개발한 ‘워렌 로비넷’은 이 정책에 불만을 가지고 숨겨진 방을 몰래 만들어 자신의 이름을 게임에다 넣어버렸습니다.

애던 클레이튼이 아타리에 보낸 편지(자료 출처-아타리)
애던 클레이튼이 아타리에 보낸 편지(자료 출처-아타리)
이 사실은 1년이 지난 이후 게임 플레이 도중 이 방을 찾아낸 ‘ㅊ’이라는 15세 소년이 ‘아타리’에 보낸 편지를 통해 대중에게 알려졌는데요. 다시 게임을 수정하자니 추가 비용이 막대하게 들고, 이미 팔린 게임을 회수할 수도 없었던 아타리 측은 “이것은 유저가 찾아야 하는 이스터 에그와 같다”라며, 이 사태를 수습했습니다.

이 사건으로 ‘어드벤처’는 장르의 기틀을 세운 게임이라는 평가와 함께 게임에 ‘이스터 에그’를 넣은 최초의 게임이라는 타이틀을 동시에 지닌 게임으로 남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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