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도 지난 이야기다. 기자는 일주일에 한번 신발주머니 같은 학원 가방에 바이엘 교재를 담아 피아노 학원에 다녔었다. 자세히 기억나지 않지만, 흐뭇한 추억으로 남아있다. 지금은 도레미파솔라시도 건반 위치도 잘 모르지만, 피아노 앞에 앉아 건반을 누르던 기억은 아련하다. 중고등학교 시절에는 잘 칠 줄도 모르는 통기타를 등에 메고 다녔었다. 손때 가득 묻은 ‘이정선 기타교실’도 여전히 책장에 꽂혀 있다.
이영은 이니티움 대표와 인터뷰를 마치고 집에 돌아와 때아닌 추억에 젖었다. 피아노와 기타, 어린 시절 유일하게 잠깐이나마 관심을 가졌던 악기지만, 제대로 알고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는 사실만 다시 깨달았다. 돌이켜보면, 나름 빠졌었다고 생각했던 기타도 그저 따라 하기만 급급했던 것 같다.
이영은 대표는 음악을 이해하는 것이 먼저 필요하다고 말한다. 피아노, 기타 등 악기를 잘 다루는 재능과 스킬도 중요하지만, 음악을 이해했을 때 새로운 창작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강조한다. 그리고 음악 교육 현장의 현실적인 어려움을 설명했다. 아래는 7년이라는 시간 동안 피아노 건반 형태의 미디 컨트롤러 ‘블록 피아노’와 블록 피아노를 활용해 음악을 창작할 수 있는 ‘코드런’ 커리큘럼을 개발한 이니티움의 이야기다.
음악 창작 교육 현장을 개선하고 싶습니다
IT동아: 만나서 반갑다. 먼저 이니티움 소개를 부탁드린다.
이영은 대표(이하 이 대표): 이니티움은 예술(음악)과 기술(앱과 디지털 악기)을 융합해 하나의 솔루션으로 제공하는 에듀테크 스타트업이다. 조금 더 풀어 설명하자면, 학생들이 음악을 잘 배울 수 있도록 돕고 있다. 정확히는 음악 창작을 돕는다. 작곡이라고 이해해도 좋다(웃음). 음악 선생님으로 학생들을 교육하며 창작 활동에 어려움을 겪었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도전을 이어 나가고 있다.
IT동아: 정리하면, 이니티움은 음악 창작 교육 솔루션을 제공하는 스타트업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런데, 미안하지만 음악 창작이라는 것을 조금 더 설명해줬으면 좋겠다. 뭔가 노래를 잘 부르거나, 피아노나 기타와 같은 악기를 잘 다룰 수 있도록 교육하는 것과는 다른 이야기처럼 들리는데.
이 대표: 하하. 맞다. 음… 조금 긴 얘기일 수도 있지만, 이니티움을 설립한 이유를 먼저 말하고 싶다. 연세대학교 작곡과 졸업을 앞두고 있었을 때 이야기다. 가장 고민이 많은 시기 아닌가. 누구나 대학교를 졸업할 시기에는 취업을 할지, 학업을 이어나가기 위해 대학교 진학 또는 해외에 유학을 갈지… 여러 선택의 기로에서 압박을 받기 마련이다. 해외 유학으로 학업을 이어가고 싶었지만, 여러 이유로 당시 선택한 것은 임용고시였다.
그렇게 지난 2004년, 경기도에 위치한 한 중학교에 음악 선생님으로 발령을 받았다. 이후 현장에서 음악을 가르치며 부족한 부분을 많이 느꼈다. 답답했던 부분이 있었다. 교육 목표 중 하나인 ‘1인 1악기’라는 측면만 봐도 그렇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과연 우리는 누구나 악기 하나 정도는 잘 다루고 있을까? 이어서 리코더를 잘 분다고, 멜로디언을 잘 친다고 음악을 배워 잘 이해하고 있다고 할 수 있을까? 기타, 피아노 등 다른 수많은 악기를 다루며 음악을 만들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교직 기간 동안 오히려 이런 생각이 많아졌다.
욕심이 생겼다. 보다 좋은 커리큘럼과 교육을 제공하고 싶은 욕심이다. 음악 선생님으로서 생긴 새로운 목표였다. 그렇게 3년간 중학교에서 음악을 가르치다가 미국에 있는 버클리 음악대학교에 유학을 갔다. 2년 6개월 동안 버클리 음악대학교에서 유학하며 다양한 경험을 쌓았다. 오케스트라를 유명 게임의 삽입곡(BGM)으로 편곡하는 작업에도 참여했었고… 당시 함께했던 동료들은 디즈니에서 일하기도 한다(웃음).
이후 유학 생활을 접고 한국에 돌아온 뒤, 2013년 대학교 실용음악과에 겸임교수로 일했다. 그런데, 대상이 중학생이건, 대학생이건, 음악 창작에 대한 교육은 여전히 똑같았다. 악기를 더 잘 다루고, 전문적인 스킬을 습득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수많은 악기를 다루며 이해하고 하나의 노래를 완성하는 창작의 측면에서는 달라진 것이 없었다. 음악 창작을 위한 마땅한 교구나 커리큘럼, 프로그램을 찾기 힘들었다.
IT동아: 확실히… 맞다. 기자 주변에도 노래를 잘 하거나, 기타를 잘 치는 사람은 종종 만나지만, 음악을 만드는(작곡하는) 사람은 만나기 어렵다. 아니, 음악을 창작한다는 것이 정확히 어떤 것인지조차 잘 모르겠다.
이 대표: 이걸 바꾸고 싶었다. 음악 창작에 도움 되는 무언가를 해보자고 결심했다. 뚜렷한 사업 철학이나 비전을 향한 도전이라기 보다 음악을 보다 편하게 접할 수 있는, 음악을 보다 이해할 수 있는 교육을 전하고 싶었다. 방법을 찾다가 2017년 창업 지원 프로그램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초기에 기획했던 것은 플랫폼이었다. 음악을 배우고자 하는 사람과 가르치는 사람을 연결하는 플랫폼이다. 다만,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그저 피아노를 잘 치는 사람과 피아노를 배우고자 하는 사람을 연결한다고, 음악 창작에 대한 이해를 고취시키기는 어려웠다.
실상 첫 번째 실패였다. 그렇게 내린 결론이 ‘직접 해보자’였다. 음악 창작에 필요한 교구와 커리큘럼을 직접 만들고 개발하기 시작했다. 국내외 음악 창작 교구, 커리큘럼 등을 샅샅이 찾았다. 아, 여기서 집중한 것은 앱과 프로그램이었다.
음악 창작 교구 블록 피아노를 개발한 이유
IT동아: 맞는지 모르겠지만, 아이폰을 만드는 애플이 기본으로 제공하는 ‘개러지밴드(GarageBand)’같은 앱을 말하는 것인가.
이 대표: 맞다. 다만, 단순히 앱의 형태에 그치지 않고 직접 다룰 수 있는 교구, 악기도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개러지밴드 앱 안에는 수많은 악기가 있지 않나. 그걸 단순히 가상에 머물지 않고, 연결할 수 있는 실물 악기가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디지털 키보드를 활용해 다른 악기의 음원을 넣는 것처럼 말이다. 어릴 때 피아노 학원에 다니며 피아노를 쳤던 것처럼, 실물로 보여줄 수 있는 악기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일종의 교구다. 그렇게 2018년부터 개발을 시작했다.
IT동아: 아주 쉽게 말하자면, 디지털 피아노를 개발한 셈이다.
이 대표: 정확히는 피아노 건반 형태를 띤 미디 컨트롤러다(MIDI controller)다. 블록 피아노라고 말하는데, 옥타브별로 나눠진 기기를 원하는 건반 수만큼 연결해 사용하는 형태다. 분리하고 연결할 수 있는 피아노 건반 형태의 미디 컨트롤러다.
IT동아: 음악 창작을 위한 앱, 프로그램이 아니라 제품부터 개발했다는 뜻인데… 이거 정말 쉽지 않은 일이다. 플라스틱으로 작은 기기를 만드는 것도 정말 많은 자금과 시간이 필요한 일인데.
이 대표: 맞다. 정말 많이 들어갔다(웃음). 개발하는 과정 자체도 정말 쉽지 않았다. 실물 제품이라는 것은 어느 순간 ‘짠’하고 등장하지 않는다. 시제품을 개발하는 모든 과정에 비용이 필요하다. 모든 과정이 녹록지 않았다. 2018년부터 여러 정부 지원 사업, R&D 지원 사업 등에 사업계획서를 내고 자료를 내고 증빙하면서 지금의 블록 피아노를 만들 수 있었다. 그렇게 PC용 윈도, 모바일용 안드로이드와 iOS 등 운영체제 상관없이 미디 프로그램/앱과 연동할 수 있는 미디 컨트롤러 교구 블록 피아노를 개발했다. 여전히 부족하다고 생각하지만, ‘이 정도면 외부에 소개할 수 있겠다’라고 완성한 시점이 2023년 3월이었다.
IT동아: 하드웨어를 개발하는 모든 스타트업의 생존 스토리를 몸으로 체험한 셈이다.
이 대표: 지난한 과정이었다(웃음). 어떻게든 자금을 아끼기 위해 공간을 지원하는 공유오피스나 오픈스페이스를 돌아다니며 사업계획서를 작성하고, 자금을 마련하며 버텨왔던 것 같다. 결과적으로 2017년 이니티움을 설립했고, 2023년 블록 피아노를 완성하기까지… 긴 시간이었다. 같은 시기에 창업했던 스타트업 대표들도 많이 사라졌기도 했고.
이니티움의 음악 창작 교육 솔루션은 코드런입니다
IT동아: 정리 좀 해보자. 이니티움 설립 이후 음악 교육을 위한 플랫폼을 개발하다가 첫 실패를 겪었고, 이후 음악 창작 교육을 위한 교구 ‘블록 피아노’를 개발했다. 이제 남은 것은 블록 피아노를 활용할 수 있는 앱인 것인가. 아, 음악 창작을 돕는 커리큘럼도 필요할 것 같은데. …7년이라는 시간을 이렇게 정리해도 괜찮을지 모르겠다.
이 대표: 하하. 블록 피아노 개발 이후 본격적으로 음악 창작 교육 솔루션을 제공하는 사업을 시작했다. 1차 타겟은 초등학교 방과후수업 시장이다. 학교의 가정통신문을 모바일로 제공하는 업체와 협력 중이다. 이 업체의 서비스를 2000여 개의 초등학교에서 활용하고 있는데, 이를 통해 방과후수업에 블록 피아노를 활용한 음악 창작 교육을 제공하고 있다.
프랜차이즈 사교육 시장에도 진출했다. 경기도 시흥시 배곧 신도시에 위치한 아파트 단지에서 블록 피아노와 음악 창작 교육을 연계한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다. 일반적인 학원의 모습일 수도 있고, 공부방처럼 홈스쿨로 제공할 수도 있다. 블록 피아노와 이니티움의 음악 창작 교육 솔루션을 더해 코드런으로 알리고 있다.
사실 2021년 8월부터 블록 피아노를 활용한 음악 창작 교육 서비스를 조금씩 진행하고 있었다. 수강생은 지속적으로 늘어 2023년 9월 기준, 3160명이 코드런을 수강했다.
방과후수업 시장과 함께 삼성전자의 삼성홈클래스, KT&G 메세나협회의 아름드리 예술교육사업, 경기도교육청 이룸학교음악창작교육(안양, 군포, 시흥, 안산, 고양, 화성, 용인 등), 한국연구재단의 디지털새싹(SW놀이터음악융합코딩), 지역아동센터 등에 코드런을 제공하고 있다. 중고등학교 음악 선생님 대상으로 연수도 진행하고 있고…, 음악 교육 현장에서도 음악(MIDI) 창작의 영역이 커지고 있어 관심이 많다.
코드런은 음악을 이해하고 창작하는 도우미입니다
IT동아: 기자도 어렸을 때 어머니 손에 이끌려 피아노 학원을 다녔던 기억이 난다. 아득한 기억이지만, ‘바이엘’, ‘체르니’라는 단어도 여전히 떠오르기는 하는데. 코드런을 배우면 피아노도 잘 칠 수 있는 것인지.
이 대표: 오해할 수 있는데, 코드런은 피아노를 잘 치는 교육이 아니다. 음악을 이해하고 창작할 수 있는 교육이다. 피아노 건반 형태인 블록 피아노는, 어디까지나 코드런을 활용해 여러 악기를 다룰 수 있도록 돕는 솔루션의 교구다. 음악 창작에 필요한 기본적인 이론과 방법을 알려주기 위해 선택한 과정 중 하나라고 설명하고 싶다. 음… 유명 가수가 TV에서 노래를 시작하기 전에 무대 뒤에 있는 밴드에게 몇 가지 코드를 알려주면, 드럼과 기타, 피아노 등 악기 연주자가 바로 반주를 시작하지 않나. 코드런을 배우면, 이 코드를 이해하고 다룰 수 있다고 자부한다.
이제 시작이다. 2017년 설립한 스타트업이 7년이라는 시간이 지나서 여전히 ‘시작’이라고 말하는 것이 어색하긴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도전자다. 현재 6명의 직원, 120명의 강사와 함께 코드런을 교육하고 있다. 코드런을 알린 누적 교육 기관 수는 200여 개로 계속 늘려나가는 단계다. 올해 BEP도 맞췄다. 블록 피아노 개별 판매도 진행하고 있고… 무엇보다 코드런을 교육받은 학생과 학부모님들의 반응이 매우 긍정적이다. 학생들이 얼마나 음악 창작에 대해 이해하고 배웠는지에 집중하고 있다. 방과후수업을 통해 코드런 교육에 공감하는 학생과 학부모님들이 늘어났기에, 학원/공부방과 같은 사교육 시장으로도 진출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코드런으로 음악 창작을 교육하면서, 초등학교 저학년 학생들이 스스로 작곡해 만든 음악을 결과물로 제공하고 있다. 학부모님에게 해당 파일을 카카오톡으로 제공하는데, 이에 대한 반응도 매우 좋다.
현재 집중하고 있는 것은 확장이다. 방과후수업, 유치원, 어린이집, 지역아동센터, 학원, 교습소, 공부방 등 코드런을 교육할 수 있는 공간을 연결하고 있다. 서울과 경기도, 수도권 대상으로 강사 세미나도 꾸준히 진행하고 있다.
지금까지 스타트업으로 사업을 준비하고 빌드하는 과정에 있었다고 생각하며, 앞으로도 음악 창작 교육 ‘코드런 커리큘럼’을 발전시키기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해야 한다. 블록 피아노를 더욱 원활하게 사용할 수 있는 전용 앱을 개발하고 있고, 코드런 커리큘럼을 업그레이드하는 작업도 진행형이다. 누구나 쉽게 음악을 이해하고 창작하며 작곡할 수 있도록 교육 현장에서 노력하고 있는 이니티움의 도전에 관심과 응원을 부탁드린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