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자들이 빛이 들지 않는 해저 4000m에 있는 금속 광물 덩어리가 물을 전기분해해 산소를 만든다는 사실을 밝혀내 산소를 사용하는 생명체의 기원에 대해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했다.
앤드루 스위트먼 영국 스코틀랜드 해양과학협회(SAMS) 교수가 이끈 국제공동연구팀이 빛이 투과할 수 없는 해저에서 산소를 만드는 금속 광물을 발견하고 연구 결과를 22일(현지 시간) 국제학술지 ‘네이처 지구과학’에 공개했다.
인간을 포함해 지구에 사는 생물 대부분은 산소를 활용해 에너지를 만들고 생명을 유지한다. 현재 지구에 풍부한 산소는 고대 미생물이 광합성으로 만들어 공급한 것이 시발점으로 여겨졌다.
연구팀은 태평양 중앙에 있는 클라리온-클리퍼턴 지대(CCZ)에서 심해 광물 채굴이 해저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을 조사하던 중 해저 산소 농도를 측정했다. 해저 깊은 곳에 장비를 설치해 퇴적물을 채집한 뒤 산소 농도의 변화를 기록하는 방식을 활용했다.
일반적으로 심해 퇴적물 샘플은 샘플 내에 있는 생명체가 호흡하며 산소를 소모하기 때문에 시간이 지나면서 산소 농도가 감소한다. 그런데 연구팀이 채집한 샘플은 오히려 산소가 계속 증가했다. 스위트먼 교수는 “그간 연구에서는 산소가 소비되는 것만 보였기 때문에 당시 센서에 결함이 있다고 생각했다”며 “센서를 보정한 후에도 이상한 산소 수치가 계속 나타났다”고 말했다.
연구팀은 실험실에서 추가 연구를 통해 심해 퇴적물에 있는 다금속 단괴(polymetallic nodule)가 전기적 성질을 띤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다금속 단괴는 퇴적물로 덮인 심해저 평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광물 덩어리다. 주로 철과 망간 산화물로 이뤄졌지만 전자기기의 이차전지 재료로 쓰이는 리튬이나 코발트 등 희토류 금속도 종종 포함돼 자원 가치가 높다.
채취한 일부 단괴 표면에서 최대 0.95V(볼트)의 전압이 나타나는 것이 확인됐다. 바닷물(H₂O)을 수소(H₂)와 산소(O₂)로 분해하려면 건전지 규격인 1.5V 정도의 전압으로도 충분하다. 연구팀은 “단괴가 모여 있으면 건전지를 직렬로 연결한 것처럼 전압이 커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다금속 단괴가 자연적으로 물을 전기분해해 산소를 생산했다는 뜻이다.
약 30억 년 전 지구에서 태양에너지와 이산화탄소로 광합성하는 고대 미생물인 시아노박테리아가 등장했다. 광합성으로 산소가 많이 만들어지자 산소를 사용하는 호기성 생물이 등장해 번성했다는 것이 그동안 가장 널리 받아들여지는 산소 기원 이론이었다.
연구팀은 “산소를 사용하는 생명체의 기원에 대해 다시 생각해 봐야 할 수도 있다”며 “아직 다금속 단괴가 얼마나 큰 규모로 산소를 생산하는지 추정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이번 연구 결과는 심해 자원 채굴 계획에 영향을 줄 수 있다. 단괴가 풍부한 해저 지역의 생물 다양성은 열대우림보다도 풍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연구팀은 “과거 1980년대에 심해 채굴이 이뤄진 지역을 2010년대 중반에 조사한 결과 박테리아 생태계조차 회복되지 않았다”며 “단괴가 심해저 생태계에 산소 공급원으로 작용하며 이를 채굴할 경우 심해저 생태계가 부정적인 영향을 받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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