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찬범 한양대병원 류마티스내과 교수
삭신 쑤시듯 여기저기 만성통증… 수면장애-피로감 등 여러 증세 동반
진단 제대로 안돼 병원 전전하기도… 류머티스 일종… 40, 50대 여성 많아
통증 줄이기 위한 약물치료 우선… 숙면하기 같은 생활습관 개선 병행
완치 힘들어 평생 지속 관리해야
40대 여성 이진아(가명) 씨는 언젠가부터 어깨가 아프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어깨를 많이 써서 그러나 보다 했다. 하지만 어깨 통증은 말끔하게 사라지지 않았다.
얼마 후부터는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했다. 그전에 없던 수면장애가 생긴 것. 숙면하지 못하니 아침에 일어나면 온몸이 찌뿌드드했다. 그러다 몸 여기저기가 쑤시기 시작했다. 나중에는 팔다리에도 통증이 나타났다.
일상생활에 지장이 있을 정도의 통증이 계속되니 병원에 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자기공명영상(MRI) 검사를 포함해 온갖 검사를 다 했는데도 원인을 찾을 수 없었다. 이 씨는 다른 병원, 다른 진료과를 찾아갔지만 그곳에서도 원인은 못 찾았다. 의사들은 이상 없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심리적 이유에서 통증이 심해지는 것일 수 있다 싶어 정신건강의학과까지 갔다. 하지만 역시 원인은 찾을 수 없었다.
이 씨가 마지막으로 찾은 곳이 한양대병원이다. 최찬범 류마티스내과 교수는 섬유근통을 의심했다. 실제로 이 씨는 섬유근통 진단을 받았다. 원인을 찾자 치료가 훨씬 수월해졌다. 이 씨는 약물 치료와 생활 습관 개선을 병행했고, 증세가 훨씬 나아졌다.
● 삭신이 쑤신다는 병
섬유근통은 몸 여러 부위에서 다발적으로 만성통증이 나타나는 병이다. 주로 근육, 관절, 힘줄, 인대 같은 연부(軟部) 조직에서 통증이 나타난다. 류머티스 질환의 일종이다. 다만 섬유근통으로 인해 관절이나 근육, 장기 등이 치명적인 손상을 입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방치하면 삶의 질을 크게 떨어뜨린다.
삭신이 쑤신다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로 신체 여러 부위에서 통증이 나타난다. 하지만 염증 반응이 일어나지 않기 때문에 혈액검사에서도 정상으로 나온다. 다른 검사를 해도 마찬가지다. 이런 점 때문에 꾀병이나 건강염려증으로 오해받을 수도 있다.
섬유근통이 발생하는 이유는 아직 명확하지 않다. 호르몬 분비량 변화, 뇌에서의 통증 유발 물질 증가, 자율신경계 기능 이상을 비롯해 여러 문제가 복합적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라고 추정할 뿐이다. 류머티스 관절염이나 강직성 척추염 또는 루푸스 같은 류머티스 질환이 있을 때도 섬유근통이 생길 확률이 높아진다.
우리나라 국민 2∼4%에서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다만 정확하게 병을 진단하지 못해 실제 환자는 이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남성이나 청소년 환자도 있지만 여성 환자가 훨씬 많다. 최 교수는 “임상적으로 보면 10명 중 9명 정도가 여성 환자”라고 말했다. 40대와 50대에서 특히 많다.
통증에 이어 수면장애나 피로감을 동반하는 경우가 많다. 인지능력이 떨어지거나 기억력 장애가 나타날 수도 있다. 그 외에도 여러 신체 증세가 발생할 수도 있다. 이런 증세가 한꺼번에 나타나면 삶의 질이 크게 떨어진다. 우울증 같은 정신과적 질환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최 교수는 “실제로 섬유근통 환자 상당수가 정신건강의학과 진료를 받는다”고 했다.
● 통증 양상 잘 살펴야
의학적으로 통증은 몸이 손상됐다는 신호를 보내는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어딘가에 부상이 있다면 통증이 생기는 게 당연하다. 하지만 섬유근통에 걸리면 다친 곳이 전혀 없는데도 이곳저곳에 통증이 나타난다. 신경이 예민해졌거나 이상 감각 현상을 일으키면서 다치지 않았는데도 만성통증을 호소하는 것. 실제로 섬유근통 환자들은 “옷깃만 스쳐도 아프다”는 말을 자주 한다.
가장 많이 나타나는 증세는 전신통증이다. 운동을 격하게 했거나 다친 적도 없는데 오랜 시간에 걸쳐 통증이 서서히 심해진다. 최 교수는 “이런 통증이 3개월 이상 이어졌을 때 섬유근통을 의심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통증은 한 부위에만 머물지 않고 이곳저곳으로 이동할 수도 있다. 환자에 따라서는 여러 부위에서 동시에 통증이 나타날 수 있다. 특히 통증이 나타나는 곳을 눌렀을 때 더 아프다는 특징이 있다. 이 압통점은 주로 목, 어깨 주변에 많다.
통증 양상은 다양하다. 몸이 뻣뻣한 느낌이 들다가 은근히 통증이 나타날 수도 있다. 그러다가 깊은 지점까지 아플 수도 있다. 일반적으로 아침에 증세가 더 심한 편이지만 환자에 따라서는 하루 종일 증세가 지속될 수도 있다.
섬유근통은 X레이나 혈액검사, 조직검사 같은 방법으로는 진단하지 못한다. 최 교수는 “환자가 주관적으로 느끼는 증세와 신체 검진 데이터 등을 토대로 진단한다”고 말했다. 이 병이 의심될 경우 확진을 위해서 다른 질병이 있는지를 검사한다. 만약 관절과 근육에 문제가 있거나 감염, 면역질환 등이 발견된다면 해당 질병을 치료한다. 이 경우 섬유근통으로 진단하지 않는다.
● 수면 품질 개선부터
섬유근통 진단을 받으면 약물로 치료한다. 증세를 완화하는 약물을 쓴다. 일반적으로 통증 조절을 최우선 목표로 삼는다. 이를 위해 항우울제나 근이완제 등을 쓴다. 근육 부위 통증이 심하면 진통소염제를 쓰기도 한다.
사실 섬유근통은 심리적 요소가 많이 작용하는 병이기도 하다. 진단만 제대로 받아도 증세가 좋아지는 경우가 많다. 최 교수는 “심각한 병인 줄 알고 있다가 병의 정체를 알면 스트레스가 풀리면서 예민했던 신경이 완화돼 증세가 개선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무엇보다 수면 품질을 개선하는 치료를 한다. 최 교수는 “깊은 잠을 자는 동안 신경에 쌓였던 자극과 스트레스가 해소된다. 이 경우 신경 민감도가 떨어지면서 통증을 덜 느끼게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따라서 깊은 잠을 잘 이루지 못한다면 수면장애 치료법을 활용한다. 다만 수면제는 가급적 쓰지 않고 항우울제로 대신한다.
유산소 운동과 스트레칭을 자주 하도록 처방한다. 단, 근력 운동은 신경 민감도를 높이기 때문에 권하지 않는다. 햇볕을 자주 쬐는 것도 처방의 일부다. 비타민D가 통증에 대한 민감도를 줄이는 데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이 같은 생활습관을 실행했는데도 개선이 되지 않는다면 인지행동치료를 받아야 할 수도 있다. 주로 정신건강의학과에서 시행한다. 환자가 느끼는 상태가 실제 상태와 어떻게 다른지를 이해하게 해 주고, 자신이 느끼는 감각이 정상적이지 않음을 스스로 깨닫게 하는 치료법이다.
이렇게 하면 완치에 이를 수 있을까. 최 교수는 “의학 교과서에 따르면 2년 치료할 때 40% 정도 좋아진다고 돼 있다. 완치 개념이 없는 병”이라고 했다. 평생 관리해야 하는 병이란 뜻이다. 최 교수는 “너무 당연하지만 스트레스를 줄이고 충분히 숙면하며 적절히 운동하는 생활습관을 갖는 것이 이 병을 치료하고 예방하는 비법”이라고 말했다. ● 3단계로 자가 진단
최 교수는 병원에서 사용하는 방법을 활용해 섬유근통 유무를 어느 정도 자가 진단할 수 있다고 했다. 이 방법으로 자가 진단을 해 보자. 자가 진단은 3단계로 진행한다.
1단계에서는 통증이 나타나는 부위와 지점을 살핀다. 몸을 크게 △왼쪽 상체 △오른쪽 상체 △왼쪽 하체 △오른쪽 하체 △중앙부 등 다섯 부위로 나눈다. 이어 세부 지점 19곳 중 눌렀을 때 심한 통증이 나타나는 지점을 확인한다.
2단계에서는 통증 외 나머지 증세가 심한 정도를 평가한다. △피곤한 정도 △아침에 일어났을 때 상쾌한 정도 △인지장애가 나타나는 정도 △두통 여부 △하복부 통증 여부 △우울 증세 여부를 측정해 각각 점수를 매긴다.
3단계에서는 섬유근통 여부를 최종 가늠해 보는 단계다. 1단계에서 5개 부위 중 4개 부위에서 통증이 나타나고, 이런 증세가 3개월 이상 지속됐다면 섬유근통을 의심할 수 있다. 특정 부위에서만 통증이 나타난다면 섬유근통이 아닐 확률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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