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포주 자동배양시스템 첫 출시 셀트리오
한국-미국 로봇 전문가 손잡고, 세포주 자동배양시스템 상용화
사람이 하던 까다로운 수작업… 로봇팔이 실수없이 전 공정 진행
20억~40억 원 시스템에 관심 집중… 바이오신약 개발 가속화 기여할듯
바이오 치료제를 개발하는 연구실에서 빠뜨리지 않고 해야 하는 과정이 세포 배양이다. 연구 대상인 세포주를 배양해 개체 수를 늘려야 다양한 실험이 가능하다. 흰 가운을 입은 연구원들이 무균 상태에서 정교한 손놀림으로 세포를 다루고, 오염이 없도록 조심하면서 배양액을 공급하며 세포 수를 늘린다. 세포가 건강하게 자라고 있는지 현미경으로 확인도 해야 한다. 필요한 세포를 보관하고 꺼내기 위해 영하 150도로 유지되는 초저온 냉동고도 수시로 다뤄야 한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프리몬트시에 있는 셀트리오(대표이사 찰리 던천)는 세포주 배양을 완전 자동화한 시스템을 세계에서 처음으로 상업화한 스타트업이다. 미국 국립보건원(NIH) 및 내로라하는 세계적인 제약업체들을 고객으로 두고 있다.
던천 대표이사(73)에게 제안해 회사를 공동 창업한 이는 김진오 로봇앤드디자인 회장(65)이다. 로봇공학 전문가인 김 회장은 셀트리오 최고기술책임자(CTO)이자 최대 주주다. 지금도 끊임없이 로봇공학을 이용한 자동화 시스템 기술을 직접 개발한다. 세계 시장을 노리는 스타트업을 찾다가 셀트리오를 알게 됐다. 지난달 30일 서울 용산구 한국로봇산업협회에서 그를 만났다. 그는 올해 로봇산업협회장에 당선됐다. 검은 배낭형 가방을 메고 나타난 그는 “일평생을 로봇공학에 몸담고 15년 전부터 바이오 실험실 장비 자동화 시스템을 만들면서 축적된 연구 결과들이 이제 세상에서 빛을 보기 시작하는 것”이라고 했다.
● 24시간 연중무휴로 배양 가능
세포를 배양하는 실험실은 세포 배양만을 위한 것은 아니지만 통상 99∼132㎥(약 30∼40평) 공간을 차지한다. 셀트리오의 세포 자동배양 시스템(로보셀)은 기능에 따라 크기가 조금씩 다르지만 통상 가로 4m, 세로 3m, 높이 2.8m가량이다. 면적만 비교해 본다면 12㎡(약 3.6평)로 실험실 면적 10% 정도만 있어도 된다. 사람이 신경 쓰지 않아도 24시간 가동하면서 세포를 연중무휴 배양할 수 있다. 세포 배양에 관한 모든 과정이 소프트웨어에 기록돼 일관성 있는 실험 재현이나 더 효율적인 배양법 연구가 수월해지는 점도 이점이다.
로보셀은 세포주를 저장하는 초저온 냉동고, 세포를 여러 용기에 나눠 담는 액체 핸들러, 세포에 영양분을 보내는 배지 공급기 등을 비롯해 원심분리기, 세포 계수기 같은 여러 기능이 모두 독립적인 모듈(구성 요소)로 제작됐다. 김 회장은 “처음에는 적은 기능만 사용하다가 필요에 따라 다기능 대형 로보셀로 전환하는 것이 가능하고, 연구실에서 기존에 사용하던 외부 솔루션과의 호환도 편리하다”고 했다.
로보셀은 내부 무균 공간에서 이송장치와 로봇팔이 움직여 플라스크와 웰플레이트(용기를 한꺼번에 많이 꽂아 쓸 수 있도록 만들어진 판) 등을 이리저리 옮긴다. 김 회장은 “로보셀같이 세포 배양 전체 과정을 자동화한 로보틱스 시스템은 우리가 처음”이라며 “미국의 글로벌 생명공학기업 ‘서모 피셔 사이언티픽’이 로보셀을 우리 대리점 자격으로 유럽에서 판매하고 있다”고 했다.
셀트리오의 또 다른 자동화 기기는 세포 초저온 냉동고 로보스토(Robostor)다. 영하 150도까지 온도를 떨어뜨려 세포를 보관하는 장치다. 사람이 일일이 세포가 담긴 무균 상태의 작은 유리병(바이알)을 냉동고에서 꺼내야 했던 것을 자동화했다. 수천∼수만 개 바이알 중에서 원하는 세포가 담긴 병을 실수 없이 꺼낸다. 사람은 냉동고가 열릴 때 발생하는 뿌연 증기 때문에 시야가 흐려져 다른 병을 꺼내는 실수를 할 수 있다. 또 냉동고에서 보관하던 병을 꺼내면 공기 중 습기 때문에 유리병에 성에가 끼곤 하는데 셀트리오는 공기 중 수증기를 모두 밀어낸 임시 공간을 만들어 이 문제를 해결했다. 김 회장은 “초저온 냉동고는 로보셀에 연결되기도 하지만 별도로도 워낙 수요가 많아 독립 제품으로 분리해 공급하고 있다”고 했다.
● “세계적인 제약 기업들 잇단 주문”
자동 배양 시스템은 올해 처음 세계적인 제약 기업에 설치돼 사용 승인이 났다. 김 회장은 “주문을 받은 지 2년 정도 됐지만 최종 마무리 작업을 거쳐 글로벌 제약 기업이 최종적으로 제품을 승인했다는 점에서 올 초부터 본격적인 판매가 시작됐다고 할 수 있다”고 했다.
셀트리오는 지난해 70만 달러(약 9억5000만 원) 매출을 올렸고 올해는 2200만 달러(약 300억7400만 원) 이상 매출을 올릴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자동 배양 시스템 개발 소식이 업계에 알려지면서 글로벌 제약 기업들 주문이 이어져 올해 목표치보다 더 많은 주문을 받아 둔 상태다. 김 회장은 “설치 규모에 따라 다르지만 (이 시스템은) 통상 20억∼40억 원에 판매가 되는데, 5대를 한꺼번에 주문할 예정인 고객도 있다”고 했다. NIH와 연매출 428억 달러(약 58조 원)에 달하는 서모 피셔 사이언티픽도 고객이다. 셀트리오가 최근 300만 달러 투자를 받은 것은 주문량 증가에 따른 생산과 서비스 역량 확충을 위해서다.
로보셀은 현재 로봇앤드디자인에서 하드웨어를 만들고, 미국 셀트리오는 로보셀을 가동하는 소프트웨어 바이오 플로를 고객 수요에 맞춰 최적화한 뒤 공급하고 있다. 로봇앤드디자인은 1999년에 설립된 로봇 및 자동화 장비 전문회사로 로봇 장비 수백 종을 개발해 제조자개발생산(ODM)이나 주문자위탁생산(OEM) 형태로 판매하고 있다. 김 회장은 “생산량이 늘어날 것에 대비해 미국에서 직접 생산하는 방안도 함께 추진하고 있다”고 했다.
● 한미 로봇공학계 최고 전문가들 의기투합
김 회장과 던천 대표이사는 한국과 미국의 로봇 전문가다. 두 사람 모두 30년 이상 로봇공학을 활용해 산업용 자동화 기기를 만들어 왔다. 미국 로봇 산업계에서 최고 권위를 인정받는 조지프 엥걸버거 리더십 상을 두 사람 모두 받았다.
김 회장은 서울대 기계공학과에서 학사와 석사를 받고, 미국 카네기멜런대에서 세계 최초로 만들어진 로보틱스 박사과정 첫 입학생으로 들어가 1992년 박사를 받았다. 1994년부터 4년 9개월간 삼성전자에서 초대 로봇 사업부장 및 초대 로봇 개발그룹장(부장)으로 일했다. 1999년부터 2021년까지는 광운대 로봇학부 교수로 지냈다. 2001∼2008년 정부의 로봇 관련 정책과 전략을 수립하는 데 기여했다. 로봇앤드디자인 등을 통해 지금까지 반도체와 바이오, 의료 산업 분야에서 400여 개 로봇 및 자동화 시스템을 개발했다.
던천 대표이사는 미국 퍼듀대에서 산업공학 학사, 서던일리노이대에서 경영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산업자동화와 로봇공학 분야 전문 기업 어뎁트테크놀로지 창립 초기에 합류해 최고상업책임자로서 연 매출 1억 달러 달성과 성공적인 기업공개(IPO)에 역할을 했다.
셀트리오는 현재 연구개발에 초점을 맞춰, 개발된 세포 배양 자동화 시스템을 생산 공정에서도 활용할 수 있도록 개발할 계획이다. 또 세포 배양 과정에서 수집한 데이터 등으로 더 효율적인 배양을 할 수 있도록 시스템에 지능을 넣을 계획이다.
김 회장은 “셀트리오는 신약의 기초 연구개발부터 바이오 의약품 대량생산 같은 혁신을 도와 인류 질병 극복의 초석이 되는 기업이 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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