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 나빠도 ‘러키비키’했더니… 스트레스가 사라졌다[최고야의 심심(心深)토크]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9월 7일 01시 40분


스트레스 이기는 긍정 ‘마인드셋’
부정적 상황 긍정 반전 ‘원영적 사고’… 스트레스 줄여 몸·마음 건강에 도움
상대방 의도 좋게 해석하는 낙관성… 가까운 사이 오래 유지하는 비결
“스트레스의 긍정적 가치 발견해, 좋은 기분으로 연결하는 연습해야”

게티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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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걸로 준다, 앗싸!”

아이돌그룹 ‘아이브(IVE)’의 멤버 장원영은 빵집에서 앞 사람이 빵을 다 사가 버리자 이렇게 외친다. 다음 빵이 나올 때까지 기다리게 돼서 짜증이 날 법도 한데 오히려 좋아한다. 그러면서 “너무 ‘러키(lucky)’하게 갓 나온 빵을 받게 됐다”며 “역시 행운의 여신은 나의 편”이라고 덧붙인다.

부정적 상황을 한순간에 긍정적으로 반전시키는 그에게 ‘충격’을 받은 팬들은 이를 두고 ‘원영적 사고’라는 말까지 만들었다. 영어 단어 ‘러키’와 장원영의 영어 이름 ‘비키’를 붙인 말인 ‘러키비키’는 운이 좋은 상황에서 쓰는 유행어가 됐다.

원영적 사고처럼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습관이 있는 사람은 스트레스 관리 능력이 탁월하다. 빵이 나오길 기다리는 상황에서 ‘시간 아깝다’는 부정적인 면보다 ‘더 맛있는 빵을 먹는다’는 긍정적인 면에 집중할 수 있어서다. 기왕 이렇게 된 거 나에게 이익이 되는 부분을 의식적으로 더 크게 인지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난 괜찮아, 행복해”라며 억지로 우겨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진정한 긍정성을 키우기 위해서는 세상을 바라보는 심리적 틀이자 사고방식인 ‘마인드셋(mindset)’을 조금이라도 긍정적으로 바꾸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스트레스 받을 때 ‘완전 러키잖아’로 생각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러면 몸과 마음에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지 살펴보자.

● 만성 스트레스… 빨리 늙고 일찍 죽는다

사실 스트레스 받을 때 불평불만을 하는 게 훨씬 쉽고 빠르다. 그런데 평생 불평불만만 늘어놓으면 스트레스가 만성이 되고, 노화를 촉진해 수명도 짧아진다.

라지타 신하 미국 예일대 정신의학과 교수는 2021년 과학학술지 ‘네이처’의 정신의학 전문저널 중개정신의학(Translational Psychiatry)에 스트레스가 몸의 노화를 촉진해 수명을 단축한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19∼50세 성인 444명의 혈액을 채취해 연구한 결과 만성 스트레스가 높은 사람일수록 신체 노화 지표가 높았다. 또 인슐린 저항성이 높아 인슐린이 과다 분비돼 당뇨, 고혈압, 고지혈증, 심장병에 걸릴 위험도 컸다.

그런데 스트레스를 받아도 신체 노화 지표와 인슐린 저항성이 높지 않은 사람들이 있었다. 이들은 감정 조절 능력과 자기 절제력이 뛰어난 사람이었다. 감정에 휘둘리거나 충동적으로 행동하지 않고, 이에 대처하는 심리적 능력이 있었다는 의미다. 연구에 참여한 재커리 하버넥 예일대 정신의학과 교수는 “감정을 조절하는 기술을 연습하면 몸의 노화를 늦추고, 조기 사망 가능성도 낮출 수 있다”고 설명했다.

● ‘노동 vs 운동’ 어떤 생각이 도움 될까


그런데 감정을 자유자재로 조절하기는 어렵다. 짜증, 분노, 불안, 우울 등을 조절하는 게 쉽다면 스트레스 때문에 병에 걸리고 일찍 죽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감정 조절 능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스트레스를 받아들이는 마인드셋을 바꾸는 게 효과적이다. 스트레스가 주는 화와 짜증에만 집중하지 말고, 나에게 조금이라도 이득이 되는 건 없는지 찾아보는 것이다.

실제로 몸 쓰는 직장 업무를 노동이 아닌 운동이라고 생각을 바꿨더니 진짜 다이어트 효과가 나타났다. 에일리아 크럼 미 스탠퍼드대 심리학과 교수는 호텔 7곳에서 일하는 객실 청소 담당 여성 직원 78명을 모집했다. 이들은 하루 평균 방 15개를 청소했는데, 매트리스를 들어 침구를 정리하고 욕실 타일 청소, 진공청소기 밀기 등 다양한 신체활동을 했다.

대조 효과를 알아보기 위해 이들 중 호텔 4곳에서 일하는 직원들에게만 청소의 열량 소모 효과를 알려줬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의 기준에 따라 15분당 매트리스 정리 40칼로리, 욕실 청소 60칼로리, 진공청소기 밀기 50칼로리 등이 소모된다고 교육했다.

또 반드시 격렬한 운동이 아니더라도 일상에서 부지런히 움직여 하루 200칼로리를 소모하면 살도 빠지고 건강해진다고 설명했다. 나머지 3개 호텔 직원에게는 이런 내용을 알려주지 않았다. 그리고 이들의 체중, 체지방, 허리·엉덩이둘레, 혈압, 업무 외 운동량, 출퇴근 방법, 식단, 흡연·음주 습관 등을 기록했다.

4주 뒤에 다시 똑같은 조사를 해보니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다. 청소의 운동 효과에 대해 교육받은 직원들은 4주 전과 비교해 체중, 체지방, 허리·엉덩이둘레가 감소하고 혈압이 낮아졌다. 업무 외 운동량, 식단 등 나머지는 전부 그대로였고, 바뀐 건 ‘노동이 운동이 될 수 있다’는 생각뿐이었다. 반면, 아무런 교육을 받지 않은 직원들은 4주 전과 같았다. 연구진은 “청소를 운동으로 여긴 직원들은 은연중에 더 활기차게 움직이는 등 직간접적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며 “인과관계를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마음가짐을 달리한 것만으로도 확실한 몸의 변화가 나타났다”고 했다.

● 장수 커플의 비결은 낙관성?

긍정적 사고의 힘은 가까운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드러난다. 상대방의 부정적인 반응을 확대해석하지 않고, 긍정적인 면을 찾아서 볼 줄 알기 때문이다.

산자이 스리바스타바 미 오리건대 심리학과 교수는 평균 연애 기간이 1년 4개월인 20대 연인 108쌍을 대상으로 연구했다. 이들의 성격, 연인 관계 만족도, 정서적 지지 정도, 갈등 해결 양상 등을 평가해 어떤 성향이 좋은 관계를 지속하는 데 도움이 되는지 살펴봤다.

조사 결과 낙관적 성향이 높을수록 연인 관계가 안정적이고 갈등을 빠르게 해결할 뿐 아니라 상대방에게 더 만족한다고 했다. 여기서 낙관성이란 비현실적이고 막연한 기대감이 아닌 ‘현실 가능성 있는 좋은 결과를 기대하는 인지적 성향’을 의미한다.

1년이 지나 다시 확인해 봤더니, 연락이 닿은 101쌍 중 67쌍만 헤어지지 않고 계속 만나고 있었다. 이들의 성격을 헤어진 34쌍의 커플과 비교해 보니 역시나 낙관성 지수가 높은 이들이었다.

그 이유는 낙관적인 사람들은 상대방의 의도를 더 좋게 해석하는 경향이 있어서다. 그래서 상대방이 나를 더 수용해 주고 지지해 준다고 받아들인다. 상대가 짜증이나 화를 내더라도 특정 상황 때문에 일시적으로 기분이 상한 것이고, 충분히 상황을 바로잡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반면 비관적인 사람들은 ‘쟤는 원래 성격이 이상하다’며 전반적 성향 탓으로 돌리고 불만을 품게 된다. 당연히 후자가 더 갈등을 겪기 쉽다. 연인뿐 아니라 가족, 친구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 스트레스에 대한 ‘메타인지’ 필요

그렇다고 억지로 좋은 점만 보라는 의미는 아니다. 긍정적 사고의 열쇠는 스트레스 받는 상황이 나에게 주는 긍정적, 부정적 영향을 모두 인지하고 긍정성을 적극적으로 ‘선택’하는 것에 달려 있다.

크럼 교수는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이 주는 장점만 떠올리라고 교육받은 학생들과 스트레스의 장단점이 모두 있지만 장점을 바라보는 게 더 유익하다는 교육을 받은 학생들 간 다른 점을 비교해 봤다. 즉각적으로는 두 집단 모두 스트레스를 이겨내는 힘이 생겼다.

그런데 8일 뒤 다시 살펴보니 장점만 떠올리라고 교육받은 학생들은 스트레스를 이겨내는 힘이 다시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단점을 의도적으로 외면하다 보니 예상치 못한 역경에 부닥치자 바로 무너진 탓이다. 반면 장단점 중에 선택하라고 교육받은 학생들은 스트레스를 이겨내는 효과가 여전히 이어졌다.

이처럼 스트레스의 장단점을 모두 알면 한 걸음 떨어져 상황을 재평가할 수 있는 여유가 생긴다. 내 생각을 판단하는 메타인지가 생기는 셈이다. 부정적인 감정에 매몰돼 알지 못했던 긍정적인 가치를 발견하고, 이를 더 크게 느끼기로 선택할 수 있다. 윤대현 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스트레스를 받아서 느끼는 부정적인 감정은 매우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며 “다만 스트레스가 주는 또 다른 긍정적인 가치가 뭔지 생각해 보고, 이를 긍정적인 정서로 연결하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러면 스트레스를 과대 해석하는 실수를 줄일 수도 있다. 예를 들어 호텔 청소 직원이 ‘청소가 너무 힘들고 짜증 난다’고 느끼는 것은 자연스러운 반응일 수 있다. 하지만 ‘내 인생은 왜 이 모양인가’까지 가는 것은 스트레스를 키우는 태도다. 반면 ‘일이 힘들지만, 운동 효과가 있다고 하니 건강해지겠지’라는 긍정적 가치를 발견하고, 이를 좋은 기분으로 연결한다면 스트레스에 대한 메타인지를 잘 활용하는 것이다.

윤 교수는 “결국 긍정적인 마인드셋을 유지하는 비결은 언어 습관에 달려 있다”며 “내 인생이 불행하다는 나쁜 프레임을 씌우고, ‘셀프 가스라이팅’하는 부정적인 언어를 교정해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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