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담배 판매 처분 완화보다 청소년 보호가 우선 [기고/이승엽]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9월 11일 03시 00분


이승엽 은평성모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대한신경정신의학회 중독 특임이사)
이승엽 은평성모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대한신경정신의학회 중독 특임이사)

올 초 정부가 주재한 자영업자·소상공인 대상 민생토론회에서 나이를 속인 미성년자에게 술이나 담배를 판매했을 때 행정처분이 과도하다는 문제가 제기됐다. 이에 정부는 ‘청소년의 신분증을 확인한 사실이 입증되면’ 행정처분을 면제하고 미성년 대상 판매가 일차로 적발됐을 시에는 기존 2개월의 행정처분을 일주일로 단축하도록 완화할 예정이라고 발표한 바 있다. 요즘 빠른 발달로 유독 조숙해 보이는 청소년이 많다. 거짓 신분증으로 작정하고 속이면 판매자는 쉽게 당할 수 있다. 이런 경우 일괄적인 행정처분은 과도하고 억울할 수 있으므로 구제가 필요하다.

하지만 미성년자인지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술·담배를 판매했다면 이런 경우에도 행정처분을 완화하는 것이 타당한지 의문이다. 또한 행정처분 면제를 악용해 미성년자의 가짜 신분증 도용이 의심되더라도 경제적 이득을 위해 판매하는 것에 대한 대비책은 언급되지 않았다. 충분한 보호 장치 없이 규제만 섣불리 완화하면 본래의 정책 의도와는 달리 국가에서 미성년자에게 술이나 담배 판매를 장려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미국, 호주와 같은 주요 선진국은 미성년자 보호를 위해 주류나 담배 판매에 대한 규제가 엄격한 편이다. 어린 나이에 이러한 물질에 노출될수록 신체적 건강 폐해가 커지고 평생 중독에 빠져 지낼 위험도 커지기 때문이다. 미성년자 대상 판매 적발이 판매 허가권 유지를 어렵게 하기 때문에 검사를 철저히 한다. 미국은 우리나라보다 주류 판매 허용 나이가 더 높다. 우리나라는 집 앞 편의점에서도 24시간 술·담배를 사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에 높은 접근성을 염두에 둔 정책이 필요하다.

물론 불황에 고통받는 소상공인을 위해 규제 완화에 대한 필요성은 충분히 공감한다. 그러나 최근 심각한 사회문제로 떠오른 청년층 마약 사용도 조기에 알코올, 담배와 같은 중독 원인 노출과 관련이 있다. 우울증, 자살, 그리고 다양한 신체 건강 문제도 청소년의 음주·흡연과 연관성이 있다는 사실을 고려한다면 충분한 사전 검토를 통한 규제 완화가 필요하다.

#헬스동아#건강#의학#미성년자#음주#흡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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