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 프로미식축구리그(NFL) 은퇴 선수 3명 중 1명은 자신이 치명적인 뇌 질환을 앓고 있다고 믿고 있으며, 이러한 믿음 자체가 그들의 삶을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1996년부터 2020년 사이 NFL에서 활약했던 은퇴 선수 20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참여자의 35%가 자신이 만성 외상성 뇌병증(CTE)을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 질환은 머리에 반복적으로 가해지는 충격과 관련이 있다. 머리에 강력한 주먹을 맞는 일을 피할 수 없는 권수 선수들에게서 자주 나타나 ‘권투선수 치매’로도 불린다. 지난해 보스턴대가 뇌질환으로 30세 이전 세상을 떠난 운동선수 152명을 추적 조사한 결과, 41.4%의 죽음이 CTE와 연관된 것으로 밝혀졌다.
CTE는 사망 후 뇌를 현미경으로 검사해야만 진단할 수 있다. 따라서 은퇴 선수들의 이러한 믿음은 그들의 증상과 경험에 기반을 둔 의심일 뿐이다. 하지만 이 믿음은 단순한 걱정이 아니라, 실제로 그들의 삶에 심각하고 잠재적으로 위험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가장 충격적인 점은 CTE를 앓고 있다고 믿는 은퇴 선수 중 약 25%가 자살이나 자해에 대한 생각을 빈번하게 한다고 답한 대목이다. 이는 CTE가 없다고 믿는 선수들의 자살 충동 비율 5%에 비해 5배나 높은 수치다.
CTE를 갖고 있다고 믿는 선수들은 인지력과 기억력에도 영향을 미치는 남성 호르몬 테스토스테로 수치가 낮고, 우울증, 두통, 만성통증을 토로한 비율이 더 높았다.
미국 하버드 대학교의 풋볼 선수 건강 연구(Football Players Health Study)의 일원인 매사추세츠 브링엄 종합병원(Mass General Brigham) 연구진이 중심이 돼 진행한 이번 연구 결과는 23일(현지시각) 세계적인 권위의 ‘미국의사협회 신경학회지’(JAMA Neurology)에 게재됐다.
제1 저자인 하버드 T.H. 찬 공중보건대학원의 레이첼 그래쇼 박사는 “대부분 인지장애 증상을 보였다”며 “기억력과 집중력에 문제가 있었다”라고 말했다.
그녀는 “사실 우리는 연구에 참여한 선수들이 실제로 CTE를 앓고 있는지 알 수 없다. 이는 부검을 통해서만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이 CTE에 대해 어떻게 느끼는지는 알 수 있다”라고 말했다.
전직 NFL 선수 대부분은 경기 중 뇌진탕을 겪었다고 밝혔다. 연구자들은 모든 뇌진탕이 CTE로 이어지는지는 불분명하지만, 그 위험성을 높인다고 보고 있다.
그래쇼 박사는 “은퇴 선수들 중 CTE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자살 충동이나 자해 생각을 할 위험이 높다는 것을 알 수 있다”라고 말했다.
연구에 참여한 전직 선수들은 우울증, 통증, 수면 무호흡증 등의 증상을 설문지에 기재했다. 그래쇼우 박사는 “그들이 겪은 뇌 손상을 바꿀 수는 없지만, 치료 가능한 상태로 고통 받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다”라고 말했다.
연구진은 은퇴 선수와 그들의 임상의들이 치료 가능한 부분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전직 NFL 선수들에게 흔히 나타나는 수면 무호흡증, 낮은 테스토스테론 수치, 고혈압, 만성 통증 등의 여러 질환들이 생각, 기억 및 집중력에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이 중요한 시사점”이라고 그래쇼 박사는 말했다.
“CTE에 대한 임상 지침과 치료법이 제공될 때까지, 은퇴 선수들과 그들의 의사들은 인지 기능, 전반적인 건강 및 삶의 질을 개선하는 것으로 입증된 치료 개입과 긍정적인 건강 행동 변화를 모색해야 한다”라고 스위스 로잔 대학교 의대 교수이자 풋볼 선수 건강 연구의 책임 연구원인 애론 배기시 박사(심장 전문의)가 말했다.
그는 “체중 감량, 운동, 수면 개선, 저염식 식단을 포함한 개입은 인지 기능을 향상시킬 수 있다”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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