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병, 초기에 관리하면 일상생활 가능
진료 미루거나 치료 중단하는 경우 많아
장기 지속형 주사제, 내복약 부담 줄여
10월 10일은 ‘세계 정신건강의 날’이다. 최근 국립정신건강복지센터에서 발표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 국민 10명 중 7명 이상이 1년간 심각한 스트레스, 수일간 지속되는 우울감 등의 정신 건강 문제를 겪은 것으로 나타났다.
정신 건강 문제를 겪는 사람이 늘어나면서 정신질환이 사회적 문제로도 대두되고 있다. 정부는 6월 정신건강정책 혁신위원회를 출범하고 국민 정신 건강에 대한 정책적 확대 계획을 발표한 바 있으며 지난 8월 대한신경정신의학회는 최근 발생한 정신질환자의 범죄 사건과 관련해 ‘급성기 정신질환 환자에 대한 관리와 지원’ 성명을 발표하고 조현병과 같은 중증 정신질환 치료의 중요성과 사회적 관심을 촉구한 바 있다.
조현병은 뇌 기능 이상으로 인해 신경전달물질 분비 등에 문제가 생겨 나타나는 신체 질환이다. 흔히 환각, 환청, 망상과 같이 겉으로 드러나는 증상으로 알려져 있으나 대인관계를 피하고 말수가 적고 외부 활동을 잘 안 하려는 등의 음성적 증상도 가지고 있다.
조현병은 초기에 진단을 받고 지속해서 약물치료를 이어가면 일상생활이 충분히 가능하다. 그러나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할 경우 재발이 반복되며 비가역적인 뇌 손상이 누적돼 이후 치료가 더욱 어려워진다. 한 연구 결과에서는 치료를 중단하면 환자의 50∼70%가 1년 이내 증상이 재발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럼에도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조현병으로 치료받은 환자는 12만1113명으로 많은 환자가 진료 시작을 미루거나 임의로 약물치료를 중단하고 있다. 전 세계 조현병 유병률이 0.5∼1%임을 고려해 보면 우리나라에는 25만∼50만 명 정도의 조현병 환자가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실제로 조현병 환자의 약물 비순응도는 1년에 40%, 2년에 80%로 보고된다. 약 복용에 대한 거부감, 약물의 부작용, 경제적 어려움, 의료 서비스 접근성의 문제 등 약물치료 중단의 이유는 다양하다.
이에 환자의 지속적인 약물치료를 위해 편의성이 높은 장기 지속형 주사제도 등장했다. 팔리페리돈 팔미테이트 성분과 같은 장기 지속형 주사제는 한 번의 주사로 짧게는 1∼3개월, 길게는 6개월까지 약효를 유지해 환자들이 매일 약을 먹어야 하는 부담을 크게 줄여줄 수 있다.
40대 조현병 남성 환자는 “내 증상이 조현병이라는 것을 몰랐을 때는 병원을 가는 것조차 힘들었다. 집 안에서만 생활하고 외출 시에는 모두 나를 비난하는 것 같아 얼굴을 다 가리고 나서야 집 밖을 나설 수 있었다. 처음에 가족의 도움으로 치료를 시작했지만 증상 조절이 어렵고 여러 번 재발을 경험했다. 이후 장기 지속형 주사제로 치료를 시작하면서 일상을 유지하기가 쉬워졌고 체중 증가나 피로함과 같은 부작용이 줄었다. 덕분에 다시 취업도 하면서 사회 구성원으로서 보람을 느끼고 자존감을 찾을 수 있었다. 앞으로도 치료제 선택지가 많아지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장기 지속형 주사제는 치료 편의성뿐만 아니라 실제로 조현병 환자들의 재발 위험 및 재입원율이 경구제 대비 감소했음이 각종 연구를 통해 확인됐다. 조현병 국내 치료 지침에서도 초기 조현병부터 만성에 이르기까지 어떤 단계의 환자에서든 장기 지속형 주사제 투여가 가능하다고 안내하고 있다.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총무이사 김세현 교수(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는 “조현병은 꾸준히 치료를 유지하면 급성기 증상의 호전과 재발 방지를 넘어서 건강하고 평범한 일상생활로의 복귀를 도모할 수 있다”라며 “다양한 약제가 최근까지도 도입되면서 치료의 선택지가 다양해졌으며 적절한 진료를 통해 환자 개개인에게 맞는 맞춤형 처방을 잘 조정해 부작용을 최소화하고 치료 효과를 최적화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이어 “최근 정부도 대통령 직속 정신건강정책 혁신위원회를 발족하고 조현병 환자 지원 확대 계획을 포함한 정책 방향성을 발표한 바 있다”라며 “학회에서도 조현병 환자가 치료를 지속할 수 있는 사회적 환경이 강화되기를 소망하며 다양한 노력을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박지혜 기자 wisdom99@donga.com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