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워헤드·칫솔모에 바이러스 ‘득시글’…근데 반길 일이라고?

  • 동아닷컴
  • 입력 2024년 10월 11일 09시 5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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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일반 가정의 샤워기헤드와 칫솔모에서 수백 가지의 새로운 바이러스를 찾아냈다. 하지만 걱정할 필요 없다. 외려 좋은 소식이다. 이러한 바이러스는 질병을 일으키는 종류가 아니다. 박테리오파지(bacteriophages), 줄여서 파지라고 부르는 세균 기생 바이러스다. 즉 독감이나 다른 질병을 일으키는 박테리아의 천적이다. 파지는 특정 박테리아 종을 사냥하고, 공격하며, 잡아먹도록 진화했다.

“우리가 발견한 바이러스의 수는 정말 놀랍다”라고 이번 연구를 이끈 미국 노스웨스턴 대학교 맥코믹 공과대학의 에리카 하트만 부교수가 연구 관련 성명에서 밝혔다. 미생물학자인 하트만 교수는 “우리가 잘 모르는 바이러스가 많이 있었고, 그 중 일부는 이전에 본 적도 없었다. 우리 주변에 아직 손을 대지 못한 생물 다양성이 이렇게 많다는 게 놀랍다. 멀리 갈 필요도 없이 바로 우리 코앞에서 찾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따뜻하고 습한 환경의 화장실은 생명체가 서식하기 더없이 좋은 장소다. 샤워기나 칫솔 외에 수도꼭지나 양치 컵에도 미지의 생명체가 살고 있을 수 있다.

바이러스는 대부분 인간과 다른 동물에게 질병을 일으키는 것과 관련이 있다. 하지만 모든 바이러스가 인간에 해로운, 가까이 해선 안 될 존재는 아니다.

9일(현지시각) 미생물학 분야 국제 학술지 ‘Frontiers in Microbiomes’에 발표한 연구를 위해 하트만 교수와 동료들은 34개의 칫솔과 92개의 샤워기에서 채취한 생물막(biofilm·표면에 붙어있는 접착제 같은 미생물 공동체) 샘플을 분석하여 이번 결론에 도달했다. 연구진은 사람이 매일 사용하는 이러한 물건들에 서식하는 박테리아의 종류를 조사한 이전 연구 (시민 과학 프로젝트)에서 얻은 데이터를 사용했다.

연구진은 같은 샘플에서 어떤 종류의 박테리아가 살아가고 있는지 뿐만 아니라 어떤 박테리오파지가 있는지도 확인했다.

그 결과 일반적인 미국 가정의 욕실 샤워헤드와 칫솔모에 서식하는 616종의 독특한 바이러스를 발견했다.

각각의 샤워헤드에 서식하는 박테리오파지 군집이 서로 다를 정도로 매우 높은 다양성을 보였다. 칫솔모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연구자들은 박테리오파지 바이러스가 박테리아 감염 치료의 새로운 길을 열고 항균 제품 없이도 환경을 정화할 수 있는 보다 적절한 방법을 제공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CNN에 따르면 박테리오파지는 항생제 내성 문제에 대한 잠재적 해결책으로 임상 시험에서 이미 사용되고 있다. 파지는 숙주 박테리아 안에서 감염과 복제를 하여 병원균을 죽일 수 있으며, 항생제 내성 또는 슈퍼버그를 치료하는 새로운 약물의 기초가 될 수 있다.

“광범위한 항생제를 복용하여 전체 미생물 군을 제거하는 대신, 병원균에만 영향을 미치고 나머지 미생물군은 그대로 두는 더 정교한 약물을 설계하는 데에도 관심이 있다”고 하트만 교수는 CNN에 말했다.

하트만 교수는 또한 성명에서 “소독제로 박테리아를 공격할수록 내성이 생기거나 치료가 더 어려워질 가능성이 커진다”며 “우리 모두는 미생물을 포용해야 한다. 미생물은 어디에나 존재하며 대다수는 우리를 아프게 하지 않는다”라고 설명했다.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물이 있는 환경에 생명체가 넘쳐난다는 것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 다른 행성에서 생명체를 발견하려는 과학자들이 가장 먼저 찾는 것이 바로 물이기 때문이다.

화장실 표면에는 우리가 알고 있는 바이러스와 박테리오파지뿐만 아니라 미확인 박테리아와 균류가 서식할 가능성이 있다.

독일 공영방송 DW에 따르면 하트만 교수의 연구팀은 3년 전, 화장실 변기의 물을 내리면 칫솔에 분변 에어로졸이 묻어난다는 오랜 주장을 조사하는 연구를 진행해 그것이 사실이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다. 대부분의 칫솔 박테리아는 분변이 아닌 사용자의 입에서 나왔다는 것이다.

2018년, 샤워헤드 마이크로바이옴 프로젝트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미국과 유럽의 욕실에서 마이코박테리아에 감염된 샤워헤드와 폐 감염의 유병률 사이에 연관성이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주목할 점은 화장실에 두는 칫솔과 샤워헤드에서 가장 흔히 발견되는 박테리오파지가 해로운 마이코박테리아를 표적으로 삼는 경향이 있다는 사실이 이번 연구에서 밝혀졌다는 것이다.

하트만 교수는 “이 박테리오파지를 배관 시스템에서 병원균을 청소하는 방법으로 사용하는 것을 상상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우리의 집에 이렇게 많은 미생물들이 공생한다는 사실이 불편할 수 있지만, 하트만 교수는 이 작은 존재들을 더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한다.

그녀는 “미생물은 항상 어디에나 존재한다. 미생물이 없다면 음식을 소화하거나 감염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할 수 없을 것”이라며 처음에는 약간 혐오감을 느낄 수 있지만, 미생물 세계를 경이로움과 호기심으로 바라보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 왜냐하면 이들은 엄청난 이익을 가져다주며, 잠재적으로 생명공학에서 큰 가능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라고 CNN에 말했다.

참고자료:-Stefanie Huttelmair, Weitao Shuai, Jack T. Sumner, Erica M. Hartmann (2024). Phage communities in household-related biofilms correlate with bacterial hosts. Frontiers in Microbiomes.
(https://doi.org/10.3389/frmbi.2024.13965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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