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7개월 동안 눈물나는 재활… 목소리 남아 행복해요”[병을 이겨내는 사람들]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10월 12일 01시 40분


권성근 서울대병원 교수-후두암 이재원 씨
목 쉼 증세 지속… 후두암 진단
암 제거 후 재발, 병원 옮겨 항암… 2차 재발로 후두 일부 절제 수술
오랜 발성·식이 훈련… 잘 먹고 말해… 흡연·과음 주원인, 투병 의지 중요

권성근 서울대병원 이비인후과 교수(오른쪽)는 후두암 3기 환자인 이재원 씨에 대해 최적의 치료법을 시도했다. 처음에는 항암 방사선 치료를 시행했지만 재발하자 부분 후두 절제술을 정교하게 시행해 목소리를 살려냈다. 서울대병원 제공
권성근 서울대병원 이비인후과 교수(오른쪽)는 후두암 3기 환자인 이재원 씨에 대해 최적의 치료법을 시도했다. 처음에는 항암 방사선 치료를 시행했지만 재발하자 부분 후두 절제술을 정교하게 시행해 목소리를 살려냈다. 서울대병원 제공
2020년이었다. 살짝 쉰 목소리가 났다. 동네 의원에 갔더니 약을 처방해 줬다. 꾸준히 약을 먹었다. 하지만 3개월이 지나도록 쉰 목소리는 개선되지 않았다. 이재원 씨(69)는 그제야 예민해졌다. 그 무렵부터 지인들로부터 목소리가 이상해진 것 같다는 소리를 종종 들었다.

이 씨는 정확한 병명을 알기 위해 A병원에 갔다. 후두 조직을 떼어내 검사했다. 후두암 판정이 떨어졌다. 이 씨는 의의로 담담했다. 이 씨는 “나이도 60대 중반을 넘겼겠다, ‘내게도 올 게 왔구나’ 생각했었다. 현실을 거부하면 고통스럽기만 하니 그대로 받아들이기로 했다”고 말했다.

A병원 의료진은 후두암 초기라고 했다. 그나마 다행이었다. 치료도 의외로 복잡하지 않았다. 이 씨는 2021년 3월 A병원에서 레이저 절제술을 받았다. 일반적으로 레이저 절제술은 암 초기일 때 시행한다. 레이저로 암만 잘라낸다. 성대를 절제하지 않기 때문에 성대 기능을 살릴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 목쉼으로부터 후두암 시작

후두암 진단을 받기 전에 나타났던 목쉼 증세가 후두암 때문이었을까. 나중에 이 씨의 성대 부분 절제술을 시행한 권성근 서울대병원 이비인후과 교수는 “그렇게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권 교수는 “쉰 목소리는 후두암의 가장 흔한 초기 증세다. 뚜렷한 이유도 없는데 몇 주에서 몇 달 동안 쉰 목소리가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여기에서 후두암이 더 악화하면 음식을 삼킬 때 통증이 발생하거나 음식을 삼키기 어려워질 수도 있다. 귀가 아플 수도 있고, 더 심해지면 호흡 곤란 증세가 나타난다. 이런 경우라면 암이 상당히 진행된 후라고 볼 수 있다.

이 씨의 경우 하루에 두세 갑의 담배를 피웠고 술도 자주 마셨다. 이와 관련해 권 교수는 “흡연과 과음은 후두암의 주요 원인이며 두 가지를 같이 하면 후두암 위험은 더 커진다”고 설명했다.

A병원에서의 치료는 레이저 절제술로 끝났다. 이후 암 재발 여부를 파악하기 위해 추적 관찰했다. 수년 동안 추적 관찰한 뒤 암이 발견되지 않으면 완치 판정을 받게 된다. 하지만 그렇게 되지 않았다. 9개월 만에 암으로 의심되는 혹이 발견된 것. 후두 조직검사를 했는데 ‘고등급 이형성증’ 진단이 나왔다. 쉽게 말하면, 후두암으로 악화하기 직전의 덩어리가 있다는 이야기다.

처음 레이저 절제술을 받았을 때 미처 발견하지 못한 것인지, 그사이에 암이 재발한 것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이 씨는 A병원 의료진이 명확한 설명을 하지 못하자 고민 끝에 서울대병원을 찾아갔다. 이때부터 진료를 담당한 의사가 권 교수였다.

● 항암 방사선 치료 이겨내다

권 교수가 보니 암은 성대 상단부와 주변으로 퍼져 있었다. 암의 크기도 만만찮았다. 일반적으로 성대 표면에만 암이 있다면 1기로 진단한다. 하지만 이 씨는 안으로까지 암세포가 퍼져 있었고, 성대를 움직이는 근육들이 제 기능을 할 수 없는 상태였다. 권 교수는 종합적으로 후두암 3기 진단을 내렸다. 다행히 암이 림프샘이나 원격 장기로 전이되지는 않았다.

권 교수는 치료법을 놓고 고민했다. A병원에서 했던 것처럼 레이저 수술을 먼저 시도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암 덩어리가 안쪽 깊숙한 곳에 있어서 불가능해 보였다. 두 번째로 성대 절제 수술을 고려했다. 다만 이 경우 성대의 상당 부분을 잃기 때문에 목소리가 제대로 나오지 않을 수도 있다. 그보다 더 큰 문제가 있었다. 후두가 없어지면 음식물이 식도가 아닌 기도로 들어갈 수도 있다. 이 경우 흡인성 폐렴으로 인해 생명을 잃을 수도 있다.

권 교수는 성대를 보존하기 위해 일단 방사선 치료와 항암 치료를 병행하기로 했다. 주말을 빼고 매일 두 치료를 동시에 진행했다. 그렇게 6주 동안 총 30회의 치료를 시행했다.

이 씨도 단단히 마음을 먹고 치료에 임했다. 항암 방사선 치료를 받을 때 무엇보다 체력을 키우는 데 신경 썼다. 자꾸 몸이 처지고 음식이 당겼다. 하지만 막상 먹으려고 하면 음식이 넘어가지 않았다. 식당에 가서 음식을 시킨 뒤 한두 숟가락만 먹고 나올 때도 많았다. 그래도 어떻게든 음식을 먹으려고 노력했다. 그러다 보니 하루에 5회 이상 끼니를 먹기도 했다. 덕분에 체중이 크게 빠지지 않았다.

운동에도 신경을 썼다. 매일 1시간 이상 걸었다. 병원 치료가 있는 날에도 1시간 걷기는 실천했다. 전철을 타고 병원에 가던 중 일부러 서너 역 전에 내려서 걸었다. 진료를 마치고 나서도 똑같이 서너 역을 더 걸어가서 전철을 탔다.

● 후두암 재발, 다시 수술

모든 치료가 순조롭게 되어 가는 것 같았다. 하지만 아니었다. 항암 방사선 치료를 끝내고 9개월 정도가 흘렀다. 암의 재발 여부를 확인하기 위한 추적 검사에서 악성 종양이 다시 확인됐다. 후두암이 재발한 것이다.

이제는 수술 외에는 방법이 없어 보였다. 문제는, 수술 범위를 어느 정도로 할 것이냐였다. 만약 후두를 완전히 들어내면 성대가 없어지면서 발성 자체가 불가능해진다. 게다가 호흡하기 위해 목 아랫부분에 따로 숨구멍을 뚫어야 한다. 삶의 질이 크게 떨어질 수밖에 없다. 권 교수는 “실제로 이런 이유로 인해 수술을 거부하는 환자도 있다”고 말했다.

권 교수는 이 씨의 경우 어떻게든 후두를 살려보기로 했다. 전체가 아니라 일부만 절제하는 것. 성대의 일부 기능을 살리고 호흡도 자연스럽게 하도록 하는 것이다. 물론 재활 기간이 그만큼 오래 걸리지만 그게 최선의 방법으로 여겨졌다.

2023년 3월, 권 교수는 후두 절제술을 부분적으로 시행했다. 후두에는 7개의 연골이 있다. 그중에서 피열연골은 성대의 문을 여닫는 역할을 한다. 음식이 들어오면 닫히고 숨을 쉴 때 열린다. 원활한 호흡을 위해 절대적으로 필요한 연골인 것. 권 교수는 이 피열연골만 살리고 주변 부분은 광범위하게 절제했다. 그만큼 암 덩어리가 컸기 때문이다. 수술하는 데 3시간 정도 소요됐다.

현재 마지막 수술 후 1년 7개월이 지난 상태다. 올 8월 검사에서도 재발을 의심할 만한 상황은 없었다. 권 교수는 “1년 이내에 재발할 확률이 가장 높다. 시간이 지났기 때문에 재발 가능성은 많이 낮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 재활 치료 이겨내다

수술 후 본격적으로 재활 치료가 시작됐다. 처음에는 음식을 먹지 못하는 것은 당연했고, 침을 삼키는 것도 불가능했다. 콧속으로는 관이 들어갔다. 이 씨는 “처음에는 이런 모습으로 평생 살아야 하나 걱정됐지만, 그래도 살아보자며 마음을 다잡았다”고 말했다.

재활 치료는 1년 넘게 이어졌다. 매주 1회 병원을 찾아 30분씩 발성 훈련을 했다. 일부러 ‘컥컥’ 소리를 내고 성대에 충격을 줬다. 소리가 발생하려면 성대가 부딪쳐야 하기 때문. 이런 식의 훈련을 통해 성대 주변 근육을 강화해 소리를 내도록 하는 것이다. 제대로 성대가 부딪쳐야 발성이 이뤄진다.

하루에 두세 갑을 피우던 담배는 완전히 끊었다. 평소에도 말을 많이 하려고 노력했다. 말을 많이 하면 목 주변 근육이 좋아져 재활 치료 효과가 나기 때문이다. 길거리에서 흥얼거리며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점점 목소리가 나면서 신이 났다. 말을 아무리 많이 해도 피로를 느끼지 않았다.

음식을 입으로 먹기까지는 좀 더 오랜 시간이 걸렸다. 이 씨는 가장 먼저 입으로 음식을 먹게 된 날을 아직도 기억한다. 설날 때였다. 누군가 새우튀김을 가지고 왔는데, 그게 그렇게 맛있어 보였다. 조심스럽게 새우튀김을 먹었다. 다행히 부작용은 없었다. 이후 식사를 조금씩 하는 훈련을 했고, 올 7월부터는 ‘공식적으로’ 식사를 할 수 있게 됐다. 1년 4개월 만에 온전히 입으로 음식을 먹게 된 것이다. 가끔 사레가 들리기는 하지만 그래도 먹는 행복을 느낄 수 있어 좋다.

여기까지 오는 데 시련이 작지 않았다. 처음 음식을 먹었을 때 혹시나 기도로 들어가지 않았을까 걱정하며 하루 종일 자신을 관찰하기도 했다. 거칠고 쉰 목소리도 완전히 개선되지 않았다. 지금의 목소리에서 더 좋아질 가능성도 아주 낮다. 이 씨는 그래도 다행이라고 생각한단다.

이 씨는 “아픈 것도 내 복이고, 병을 이기는 것도 내 복이다. 암이 재발했을 때도 크게 실망하지는 않았다. 목소리만 남을 수 있다면 그게 행복이라고 생각했고, 힘들더라도 노력하자고 마음먹었다. 덕분에 좋은 결과가 나온 게 아닌가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권 교수는 “이 씨가 처음에는 삼키는 것도 잘 안 돼 힘들어했다. 하지만 뭐든지 해 보겠다며 적극적이었고, 좌절하지 않고 시도하는 성격이었다. 그래서 좋은 결과를 얻은 게 아닐까 싶다. 환자 본인의 투병 의지가 정말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후두암#목 쉼#흡연#과음#권성근 서울대병원 교수#부분 후두 절제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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