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 된 ‘브레트의 법칙’ 깨졌다… “신약 개발 전기 마련” 평가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11월 1일 03시 00분


美 UCLA팀, 법칙 거스르는 물질로
새 화합물 합성하는 우회로 찾아내
“과학-의약계에 기념비적인 연구
신약 개발 화합물 범위 크게 확대”

100년간 화학 교과서에 게재됐던 ‘브레트의 법칙’을 위협하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31일(현지 시간) 국제학술지 ‘사이언스’에 발표된 논문에서 브레트의 법칙을 우회해 새로운 합성물질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 증명됐다. 한계로 여겨진 규칙을 뛰어넘으면서 신약 개발의 전기가 마련될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브레트의 법칙은 탄소(C) 원자 사이에 ‘이중결합’이 존재할 경우 이에 연결된 원자는 모두 같은 평면에 있어야 안정적으로 존재할 수 있다는 법칙이다. 두 사람이 한 팔을 맞잡고 있는 것을 일반적인 원자 결합이라고 한다면 이중결합은 양팔을 모두 맞잡고 있는 것에 비유할 수 있다.

만약 평면 구조에서 벗어나 입체적인 구조가 된다면 두 팔 중 한 팔이 끊어지며 매우 불안정한 구조가 된다. 1924년 독일의 화학자 율리우스 브레트는 두 팔을 유지하면서 입체적인 구조를 갖는, 이른바 ‘뒤틀린 화합물’을 만들 수 없다는 것을 실험적으로 증명했다. 그리고 자신의 이름을 따 브레트의 법칙을 발표했다. 지금까지도 신약 후보 물질을 발굴할 때 브레트의 법칙을 고려해 합성 가능한 물질을 선별할 정도로 산업 전반에 많은 영향을 미쳐 왔다.

● 절대 못 만든다던 물질로 신약 개발 가능성 열려

그런데 31일 사이언스에 발표된 닐 가그 미국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대(UCLA) 화학과 석좌교수팀의 연구는 이런 관념을 뒤집었다. 브레트의 법칙에 어긋나는 불안정한 물질인 ‘항브레트 올레핀(ABO)’을 활용해 새로운 화합물을 합성할 수 있는 ‘우회로’를 제안한 것. 올레핀은 탄소 사이에 이중결합을 가지고 있는 화합물로 폴리에틸렌, 폴리염화비닐 등 유용한 물질의 합성 원료로 사용된다. 브레트의 법칙을 따르는 올레핀과 달리 규칙을 거스르는 물질이 ABO인 것이다.

UCLA 연구팀은 특정 화학 반응 도중 ABO가 되기 직전의 물질(전구체)을 만들었다. 전구체를 이용하면 짧은 시간 존재하는 ABO를 활용해 화합물을 합성할 수 있게 된다. 화학 반응에 ABO를 활용할 수 있다면 지금까지 불가능하다고 여겨졌던 많은 구조물을 만들 수 있다.

정원진 광주과학기술원(GIST) 화학과 유기합성연구실 교수는 “ABO로부터 만들어지는 화합물 구조가 약으로 활용될 수 있는 경우가 많다”며 “신약으로 개발될 수 있는 화합물의 범위가 크게 확대될 수 있다”고 말했다.

● “규칙이 창의성 파괴할 수 있어”

이번 연구 결과와 관련해 브레트의 법칙을 넘어선 물질을 만들기는 불가능할 것이란 학계의 믿음을 깨뜨렸다는 평가가 나온다. 브레트의 법칙을 완전히 뒤집었다고 보긴 어렵지만, 일종의 우회로를 찾아냈기 때문이다. 정 교수는 “ABO가 불안정해 얻기 어려운 것은 여전히 맞는 내용이지만, ABO를 활용할 수 있게 했다는 점에서 과학계와 의약계에 매우 기념비적인 연구”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과학계도 이번 연구를 주목하고 있다. 그간 법칙에 갇혀 불가능하다고 여겨졌던 연구들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볼 기회가 됐기 때문이다. 브레트의 법칙과 함께 유기화학에서 중요한 법칙 중 하나로 꼽히는 ‘볼드윈의 법칙’ 역시 명확한 이론이 아니다. 실험적 가이드라인에 가깝지만 지금까지 많은 화합물이 이 법칙에 딱 떨어지는 결과를 내놨기 때문에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번 UCLA 팀의 연구 결과는 정설로 굳어진 법칙을 뛰어넘어 새로운 물질의 세계로 나아갈 수 있는 가능성을 보였다는 평가를 받는다.

UCLA 연구팀은 “그동안 과학자들은 할 수 없다고 생각해서 ABO를 연구하지 않았다. 브레트의 법칙 때문에 상상할 수 있는 합성 분자의 종류가 제한돼 신약 발견에 응용할 수 있는 가능성이 막혀 버린 것”이라며 “규칙이 있으면 창의성이 파괴될 수 있다”고 밝혔다.

#브레트의 법칙#신약 개발#UCLA팀#항브레트 올레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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