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남 서울새솔초교 교사(48)는 11월 17일 서울 수서역에서 출발해 대모산과 구룡산, 인릉산, 청계산을 달려 양재시민의숲 매헌교로 골인하는 소아암 환우돕기 제15회 행복 트레일런 축제 30km 여자부에서 4시간 40분 55초로 우승했다. 산 타는 것을 즐기려 출전한 대회에서 우승까지 했다.
김 교사는 2012년 철인3종(트라이애슬론)에 입문한 ‘철인’이다. 지금까지 수영 3.8km, 사이클 180km, 마라톤 풀코스 42.195km를 완주하는 아이언맨코스(철인코스)를 10회 완주했다. 최고 기록은 지난해 구례아이언맨 대회에서 세운 11시간 18분 34초다. 그는 “철인3종 대회 피니시라인을 지날 때 몸은 녹초가 되지만 그 어느 때보다 뿌듯하고 기쁘다”고 했다.
“큰아들 임신했을 때부터 수영을 시작했으니 20년이 넘었죠. 둘째 임신했을 때도 수영 교실을 다니며 건강을 관리했는데 새벽에 수영장을 열심히 다니다 보니 좀 할 수 있게 됐죠. 그때 철인3종이 눈에 들어왔어요. 사이클도 타보지 않았고, 마라톤도 제대로 해보지 않았는데 무작정 하고 싶다는 욕구가 치솟았죠.”
2012년 올림픽코스(수영 1.5km, 사이클 40km, 마라톤 10km)에 출전해 3시간대에 간신히 완주했다. 올림픽코스 기록이 없으면 철인코스에 나갈 수 없었다. 얼마 뒤 철인코스에도 출전해 15시간대에 완주했다. 그는 “주위에서 모두 무모하다고 했지만 그냥 출전했다. 그리고 완주했다”며 웃었다.
대회 출전을 놓고 봤을 때 세 종목 모두 사실상 처음이었다. 수영을 가장 오래 했지만 수영장 밖에서 하는 오픈워터 수영은 처음이었고, 사이클도 뒤에서 누가 잡아주는 단계에서 시작했다. 마라톤 풀코스의 경우 5시간대에서 시작해 ‘고수’가 됐다. 마스터스 마라토너들의 ‘꿈의 기록’이라는 ‘서브스리’(3시간 이내 풀코스 완주)를 세 차례 했다. 2019년 동아마라톤 겸 서울마라톤에서 2시간 57분 44초, 지난해 동아마라톤에서 개인 최고 기록인 2시간 56분 46초, 그리고 올해 동아마라톤에서 2시간 59분 20초를 기록했다. 100km 울트라마라톤도 9시간 44분에 완주했다.
철인3종에서도 눈에 띄는 성장을 이뤘다. 올 구례아이언맨 대회에서 11시간 34분 26초로 여자부 45~49세 부문 2위를 하면서 내년 10월 미국 하와이에서 열리는 아이언맨 세계선수권대회에 출전할 수 있게 됐다. 하와이 세계선수권은 철인들에게는 ‘꿈의 무대’다. 그는 “지난해에도 출전권을 얻었지만 올해 수업과 겹쳐 못 갔다. 내년엔 다행히 추석 연휴가 끼여 있어 갈 수 있다”고 했다.
“철인코스를 완주할 때의 성취감은 말로 표현할 수 없어요. 온몸이 쑤시고 아프지만 또 해냈다는 자부심에 한껏 부풀죠. 그 어떤 도전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샘솟아요. 솔직히 이런 것도 했는데 못 할 게 뭐 있냐는 마음이죠. 스트레스도 한 방에 날아가죠. 남들은 피곤하지 않으냐고 하는데 저는 주말에 대회에 출전하거나 팀 훈련을 하고 오면 에너지가 넘쳐요. 그 에너지로 다음 주를 활기차게 지냅니다.”
삶에 여유도 생겼다고 했다.
“뭐 과거엔 누가 부탁하면 다소 거리낌이 있었는데 철인코스를 완주한 뒤엔 마음의 여유가 생겼는지 너그러워지더라고요. 자존감이 높아지다 보니 주변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으면 봉사도 서슴없이 하게 되고요. 저 자신이란 그릇이 커지니 모든 게 수용적으로 되더라고요.”
사실 처음엔 모든 종목이 어설퍼 고생했다. 2014년 철인3종 동호회 ‘네오트라이팀’에 창설 멤버로 가입해 활동하며 체계적으로 배울 수 있었다. 철인3종 시작 4년 정도 지나고 나서야 즐길 수 있었다.
3종목 중 가장 좋아하는 게 있을까?
“이런 게 있죠. 오픈 워터에서 수영할 땐 약간의 트라우마가 있어요. 물 자체가 무섭기도 하고, 다른 사람들과 몸싸움을 해야 해 사실 꺼리는 종목이죠. 사이클은 넘어져 다치는 게 두렵죠. 그래서 두 발로 땅을 밟고 달리는 마라톤을 가장 좋아합니다. 기록도 가장 좋게 된 것도 제가 많이 달리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매일 새벽 서울 목동마라톤교실에 가서 1시간 30분을 달리고 출근한다. 수영은 화요일과 목요일 퇴근한 뒤 한국체육대 선창용 수영교실에서 한다. 주말엔 네오트라이팀과 함께 훈련한다. 주중엔 개인 훈련, 주말엔 팀 훈련이라고 했다. 주말엔 프로그램에 따라 사이클을 130km에서 180km를 달린다. 마라톤 30km 이상 달리기도 한다.
김 교사는 팀훈련을 선호한다.
“개인 훈련을 혼자서 꼭 해야 하지만 함께하는 게 덜 힘들더라고요. 함께 달리고, 자전거도 함께 타면 장거리도 쉽게 갈 수 있죠. 개인이 하는 스포츠이지만 함께 할 때 더 쉬워요. 서로 힘이 돼 주기도 하고요.”
가족들의 반응은 어떨까?
“박수 쳐주고 있어요. 사실 저는 운동을 주로 새벽에 합니다. 새벽 3, 4시에 일어나 시작하니 주말에 아이들이나 남편이 일어나기 전에 집에 와 있죠. 아이들도 이젠 다 커서 그들만의 세계가 따로 있고요. 물론 대회 출전 땐 2~3일 비우기도 하지만 평소엔 가정일 하는 데 전혀 문제없습니다. 또 제가 좋아하는 것을 하기 때문에 집에 있을 땐 더 가족들에게 잘하려고 노력합니다. 남편도 잘 도와주고요.”
지도하는 학생들의 시선도 달라졌다.
“고학년 중에서 특히 남학생들은 다루기 힘들 때가 많는데 제가 철인3종을 거뜬히 완주한다는 소식이 퍼지면서 제 앞에서는 조심하더라고요. 뭐 아이들이 까불어도 이젠 신경도 안 씁니다. 언제든 잘 다룰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거든요.”
철인3종을 하면서 가장 좋진 게 심폐지구력이다. 어떤 일을 해도 힘들지가 않다. 그는 “건강검진을 받으면 의사 선생님이 10년 넘게 젊게 봐준다. 운동을 하면서 실제 나이와 몸 나이는 별개라는 것을 확실하게 느끼고 있다. 몸이 건강해야 젊음도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
한창 철인3종에 빠져 있을 때인 2017년 사이클 타다 넘어져 다친 뒤 대회 출전을 자제했다. 그는 “어디가 부러지진 않았는데 헬멧이 망가지고 사이클 플레임까지 깨지는 사고가 난 뒤 무서워서 사이클을 못 탔다”고 했다. 그때 마라톤에 집중했고 2019년 서브스리를 달성할 수 있었다. 그 사고가 마라톤 실력을 업그레이드하는 기회가 된 것이다.
2020년 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때는 산으로 갔다. 대회가 사라져 대체 훈련으로 찾은 게 산을 달리는 트레일러닝이다. 도로 질주도 막지는 않았지만 산를 타는 것는 코로나19 시절 상대적으로 부담이 덜했다. 그게 그를 더 강하게 만들었다. 2022년부터 다시 철인3종 대회에 출전하기 시작해 지난해에 철인코스 개인 최고 기록을 세우게 됐다. 당시 여자 45~49세 부문 1위, 여자부 전체 2위, 남녀 통틀어 863명 중 93위다.
“솔직히 기록이나 순위를 위해 대회에 출전하지 않아요. 그럼 오래 즐길 수 없잖아요. 대회 출전 자체를 즐깁니다. 대회에서 잘 즐기려면 훈련을 많이 해야 하죠. 그래야 대회 때 힘들지 않죠. 훈련을 조금만 게을리하면 바로 티가 납니다. 그리고 그렇게 노력하다 보니 상위권에 들더라고요. 전 남들과 비교하지 않습니다. 이 종목은 비교하는 게 아닙니다. 그저 제가 완주하고 만족하는 것으로 족합니다. 열심히 했기 때문에 기록이 좋으면 더 좋은 것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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