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팥 점수’가 있다. 콩팥(신장)의 건강 정도를 보여주는 ‘사구체 여과율’을 점수화한 것이다. 의학용어라 좀 어려워 보이지만 ‘사구체’는 소변을 만드는 곳이고, ‘여과율’은 얼마나 노폐물을 잘 걸러내는지를 의미한다. 사구체 여과율이 높으면 노폐물을 잘 걸러내니 콩팥 건강이 좋다고 평가하고, 낮으면 콩팥 기능이 나쁘다고 평가한다. 2년에 한 번씩 받는 건강보험공단 일반건강검진 결과에도 사구체 여과율이 나와 있다. 우리나라 국민은 어느 나라보다 쉽게 콩팥 점수를 알 수 있는 셈이다.
대한신장학회에 따르면 우리나라 신장투석이 필요한 만성콩팥병 발병률은 2022년 기준 인구 100만 명당 360.2명으로 2010년에 비해 2배 이상이 됐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가장 빠른 만성콩팥병 증가율이다. 세계에서 3번째로 높은 발병률이기도 하다.
또 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신장 투석환자는 2015년 6만 1218명에서 2023년 8만 7393명으로 8년 만에 42.7% 증가했다. 만성콩팥병 환자 전체 진료비는 2015년 1조4795억원에서 2023년 2조5556억원으로 72.7% 늘었다. 환자 1인당 평균 진료비는 연간 2838만원(2021년도 기준)으로 단일 질환으로는 가장 높다. 이는 의료비 증가와 건강보험 재정 악화라는 국가적 재앙으로 이어질 수 있다.
만성콩팥병은 합병증 관리에 대한 부담 역시 큰 질환이다. 콩팥 기능이 저하돼 투석치료를 받는 환자들은 일반인에 비해 심장병, 뇌혈관질환, 치매 등 심각한 합병증을 앓을 확률이 높다.
만성콩팥병의 가장 흔한 원인은 당뇨병과 고혈압이다. 만성콩팥병은 초기 증상이 거의 없어 대부분 자신의 콩팥이 손상되고 있다는 사실조차 모른다. 피로감, 부종, 소변 변화 같은 증상이 나타날 때는 이미 콩팥 점수가 30점 미만으로 악화된 경우다. 또 소금 섭취량이 높은 식단, 운동 부족, 비만은 콩팥 건강에 치명적 영향을 미친다.
‘침묵의 살인자’라고 할 만한 만성콩팥병이지만 검사는 의외로 간단하다. 손쉽게 할 수 있고 가격도 저렴한 소변검사와 혈액검사만으로도 콩팥 점수를 알 수 있다. 다만 국민 대부분은 여전히 콩팥 점수를 잘 모른다. 정기 검진을 통해 초기 단계에서 병을 발견하면 적절한 치료와 생활습관 개선을 통해 투석까지 안 갈 수 있다는 점에서 안타까운 대목이다.
특히 당뇨병이나 고혈압을 앓고 있는 환자와 60세 이상 노령 인구는 반드시 자신의 콩팥 점수를 알아야 한다. 그래야 감기약, 관절약, 두통약 등의 장기적 복용으로 인한 콩팥병을 예방할 수 있다. 또 병원이나 약국에서 약을 탈 때나 진료를 받을 때 ‘저는 콩팥 점수가 낮아서 주의해주세요’라는 말을 모든 국민이 할 수 있어야 한다. 이 글을 읽는 독자들에게도 자신의 콩팥 점수를 꼭 기억할 것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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