뚱뚱한데 건강한 사람이 있다. 이른바 ‘근돼’(근육 돼지)가 대표적이다. 반면 만병의 근원이라는 비만과 거리가 먼 날씬한 몸매를 가졌음에도 병을 달고 사는 사람이 있다. 왜일까.
체질량지수(BMI)보다 유산소 운동으로 다진 체력이 건강과 장수에 훨씬 더 중요한 지표라는 새로운 연구결과가 나왔다.
유산소 운동 능력, BMI, 수명에 관한 역대 최대 규모의 연구결과를 보면, 예상대로 비만은 건강의 적이었다. 나이·BMI와 관계없이 뱃살이 두둑한 몸매를 가진 이들은 당뇨병, 암, 심장병 같은 질환으로 인한 조기 사망 위험이 두 배에서 세 배까지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런데 비만이더라도 유산소 운동 능력이 있는, 즉 체력이 좋은 사람은 정상 체중이지만 유산소 운동 능력이 낮은 사람에 견줘 조기 사망 위험이 약 절반 정도 낮았다.
영국 스포츠 의학 저널(British Journal of Sports Medicine)에 발표한 논문의 책임저자인 미국 버지니아 대학교의 운동생리학자 시드하르타 앙가디(Siddhartha Angadi) 박사는 “이 연구는 건강과 장수에 있어 지방(fatness)보다 체력(fitness) 측면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준다”라고 설명했다.
몸무게(kg)를 키(m)의 제곱으로 나눈 BMI는 수년 간 건강 측정 지표로 사용되어 왔다. 하지만 일부 전문가들은 BMI가 전반적인 건강 상태를 완전하게 반영하지 못 한다고 지적했다. 예를 들어 BMI가 정상범위에 있는 사람이라도 복부 지방이 많다면 심각한 질환에 걸릴 위험이 높다. 반대로 운동선수의 경우 높은 근육량과 조밀한 뼈 구조로 인해 체중이 많이 나갈 수 있다. 그래서 체지방이 매우 적음에도 BMI는 높게 나타날 수 있다.
이에 연구진은 30년간 전 세계에서 이뤄진 기존 연구 데이터를 뒤져 BMI, 체력, 수명 간 관계를 조사한 연구 중 객관적인 유산소 체력 측정 데이터를 포함한 연구들을 찾아냈다.
연구자들은 약 40만 명의 중·노년(여성 30%)을 대상으로 한 20개의 연구 데이터를 선별해 BMI. 체력, 사망 간 어떤 상관관계가 있는 지 새로운 시각으로 분석했다.
연구진은 나이와 성별을 감안한 체력 테스트 결과에 따라 참가자들을 하위 20%에 해당하는 ‘체력이 부족한 그룹’과 상위 80%에 해당하는 ‘체력이 좋은 그룹’으로 나눴다. 약 20년에 걸친 추적 관찰 기간 동안 사망한 사람에 대한 기록도 확보했다.
체력 수준은 최대 산소 섭취량(VO2 max) 검사로 평가했다. 이는 최대 운동량으로 몸을 움직일 때 우리 몸이 산소를 얼마나 잘 사용하지 보여주는 지표다. 체지방을 제대로 측정하지 못 하는 BMI보다 심혈관 건강을 포함해 전반적인 건강 상태를 더 잘 반영한다.
연구결과에 따르면, 비만은 통념대로 사망률과 강하게 연관되어 있었다. 비만이면서 체력이 부족한 사람은 정상 체중(BMI 18.5~24.9)이면서 체력이 좋은 사람보다 조기 사망 위험이 약 3배 더 높았다.
주목할 점은 체력 부족이 독자적인 위험요인으로 드러났다는 것이다.
정상 체중이지만 체력이 부족한 사람은 비만이면서 체력이 좋은 사람보다 조기 사망 위험이 약 2배 더 높았다. 바꿔 말하면 과체중(BMI 25~29.9)이거나 비만(BMI 30 이상)이더라도 체력이 좋으면 이른 나이에 사망할 위험이 크게 증가하지 않았다.
“통계적 관점에서 볼 때 체력은 비만 관련 질환으로 인한 조기 사망 위험을 대부분 제거했다”라고 앙가디 박사는 말했다.
연구진은 체력이 부족한 하위 20%에 든 사람도 백분위수 21번째로 올라설 정도로만 유산소 운동을 해 체력을 키우면 건강 위험을 크게 낮출 수 있다고 강조했다.
앙가디 박사는 빠르게 걷기를 예로 들었다. 그는 (대화는 가능하지만 노래는 부르기 힘든 수준으로 빠르게 걷기 같은) 중간강도 운동은 확실히 쳬력을 향상 시킬 수 있다고 설명했다.
최대 산소 섭취량(VO2 max)은 나이와 성별에 따라 평균 이상이어야 건강하다고 볼 수 있다. 최대 산소 섭취량이 높을수록 심혈관 건강이 좋고, 만성 질환 위험이 감소한다.
정확한 최대 산소 섭취량을 측정하려면 전문 시설에서 적절한 심폐운도 검사를 통해 운동 중 산소 소비량과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측정해야 한다. 최근에는 스마트 워치에도 이를 측정할 수 있는 기능이 부착됐다.
한편, 운동의 중요성을 강조한 연구 결과는 또 있다. 작년 11월 영국 스포츠 의학 저널에 실린 호주 연구진에 따르면 평소 운동을 거의 하지 않는 40대 이상의 성인이 시속 4.8km의 속도로 하루 1시간 50분 간 걷는 것에 해당하는 수준으로 활동량을 늘리면 최장 11년을 더 살 수 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건강을 위해 ‘주당 150분~300분의 중강도 운동’ 또는 ‘주당 75분~150분의 고강도 운동’을 권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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