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희진 PD를 만난 건 상암 월드컵 공원에서였다. 억새와 코스모스가 피어있는 길 사이를 걷다 햇살이 잘 드는 벤치에 앉았다. 방송국 PD로 바쁜 생활을 하는 속에서도 체중 감량과 건강을 되찾게 해준 ‘노 슈거 프로젝트 2090’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다이어트 효과는 부차적인 것이었다. 그녀가 찾은 것은 식생활의 변화였고, 사고와 라이프스타일의 전환이었다. EDITOR 곽은영 PHOTOGRAPHER 권오경 언젠가 모 케이블 방송에서 모 가수가 “방송국 것들”이란 표현을 쓰는 것을 본 적이 있다. 그것은 철두철미한 방송국 사람들을 예능화해 부른 것이었다. 방송국에서 일하는 사람들에 대해 사람들이 갖는 인식은 강하고 건강해야 하며 깡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조희진 PD는 그런 곳에 1993년 입사했다. ‘일요일 일요일 밤에’, ‘섹션TV 연예통신’, ‘우리 결혼했어요’ 등 MBC 간판 예능, 코미디, 음악 프로그램 등을 연출하면서 20년간 밤샘을 밥 먹듯 했다. “저는 술·담배도 하지 않고 운동도 많이 하는 편이었는데, 몸이 늘 피곤했어요. 건강검진을 받아보니 고밀도 콜레스테롤과 고지혈증, 중성지방이 나왔어요. 병원도 다니고 식이요법으로 체중조절도 해보려고 했지만, 부작용만 있을 뿐이었어요. 회복할 방안을 생각해보다 2007년 뉴욕 특파원으로 미국으로 건너가 2년간 생활할 때 만났던 밀턴 할아버지가 말해준 식이요법이 생각났어요.” 당뇨병에 대한 가족력을 가지고 있었던 밀턴 셰펀 씨는 건강관리에 대해 깊은 관심과 조예를 가지고 있었다. 90세가 넘은 고령에도 보청기나 틀니를 끼지 않을 만큼 건강을 잘 유지해온 그는 조 PD와 자주 만나 건강을 주제로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특히, 동양인들은 쌀밥을 통한 탄수화물 섭취가 지나치다고 이야기하며 과일, 야채, 생선, 고기에도 탄수화물은 얼마든지 들어있다는 것을 알려줬다. 탄수화물이란 당분과 식이섬유가 더해진 것을 말하고, 건강한 탄수화물은 당분이 제로인 것을 뜻한다. 나이와 상관없이 열정적으로 건강과 재정을 관리하고 있는 그의 태도는 조 PD의 뇌리에 인상적으로 각인됐다. 그러던 어느 날, 외신에서 영국 왕세자빈 케이트 미들턴이 성공했다는 ‘뒤캉 다이어트’를 접하게 됐다. 뒤캉 다이어트는 단백질 위주의 식단으로 시작해 서서히 탄수화물의 섭취를 늘려가는 방법으로 이뤄진다. 이 방송을 보고 난 뒤 그녀는 다시 한 번 밀턴 할아버지를 생각했고, 다이어트에 대한 본격적인 리서치를 시작했다. 칼로리에 집착하지 않는 다이어트 조 PD는 유럽과 미국의 건강관리법과 다이어트 방법을 유심히 살폈다. 우리나라는 칼로리 제한에 엄격하고, 원 푸드 다이어트의 유행으로 한 가지 음식만 정해서 먹는 케이스가 많은 반면, 유럽과 미국에는 먹지 말아야 하는 것만 빼고 다 먹을 수 있는 다이어트 방법이 많았다. 당분이 제로인 ‘키토제닉 다이어트(Kitogenic Diet)’는 유럽의 ‘뒤캉 다이어트(The Dukan Diet)’와 미국 국민 다이어트인 ‘에킨스 다이어트(Atkins Diet)’를 합한 개념으로 정신분열과 간질에도 도움이 되는 방법이다. 곡물 섭취를 제한하는 ‘노 그레인 다이어트(No Grain Diet)’, 미국의 인기 다이어트이자 구석기식 다이어트로 알려진 ‘팔레오 다이어트(Paleo Diet)’, 체질 테스트가 더해진 ‘메타볼링 타이핑 다이어트(Metabolic Typing Diet)’, 특정 탄수화물 다이어트이자 크론병에 도움이 되는 것으로 알려진 ‘SCD 다이어트(Special Carbohydrate Diet)’, 하루 영양 섭취량을 비율로 정해놓는 ‘존 다이어트(The Zone Diet)’ 등 유럽과 미국에서 각광받고 있는 각종 다이어트에서 소스를 모았다. “특히 칼로리에 집착하지 않는다는 것이 좋았어요. 칼로리에는 속된 말로 공갈(empty) 칼로리라는 게 있어서 영양가는 없으면서 칼로리만 높은 경우가 많아요. 칼로리를 볼 게 아니라 영양분석표를 통해 성분을 봐야 해요. 영양분석표는 식약청 홈페이지에 들어가도 볼 수 있게 돼 있으니 참고하시면 좋을 것 같아요.” 그녀가 미국과 유럽의 다이어트 방법에서 핵심만 뽑아 나름의 원칙으로 정립한 것이 ‘노 슈거 프로젝트 2090’이다. 노 슈거 프로젝트 2090은 매일 당분 섭취량을 20g으로 제한하면 90세까지 건강하게 산다는 의미로, 여기에서 슈거(Sugar)란, 단순히 설탕만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탄수화물에 포함된 당분을 말하는 것이다. 2090 프로젝트로 그녀는 12kg을 감량하면서 예전보다 생기 있고 건강해졌다. 그녀의 남편도 2090 쁘띠 코스로 한 달 반 만에 10kg을 뺐다. 연예기획사 지인 중 한 명은 이 방법으로 30kg 이상을 감량했다. 그녀는 본인의 경험과 지인의 체험을 바탕으로 <하루 당분 20g의 기적>이란 책을 냈다. “처음에는 에세이를 써보라는 권유를 받았지만, 저는 실질적인 정보를 주는 쪽으로 가고 싶었어요. 제 책을 보시면 요리가 40% 이상을 차지하는데, 직접 음식을 만들고, 세트를 꾸미고, 요리 과정을 찍었어요. 미국에서는 치매를 예방하려면 자기 음식은 자기가 만들어 먹으라는 말이 있어요. 저는 5단계를 넘지 않는 간단한 요리들을 좋아해요.”
무엇을 취하고 무엇을 버릴 것인가 그녀는 평소 음식을 먹을 때 피하면 좋은 5가지가 있다고 했다. 설탕(No Sugar: 정제감미료, 인공감미료, 꿀), 소금(No Salt: 무염식), 전분(No Starch: 감자, 고구마, 콩), 곡물(No Grain: 정제된 흰 쌀, 밀가루), 그리고 자신에게 맞지 않는 음식을 가려 먹으라는 조언이다. 자신에게 맞지 않는 음식이란 섭취 후 배에 가스가 많이 차거나 소화가 잘되지 않는 음식을 말한다. “음식을 먹을 땐 나에게 필요한 영양소가 뭔지, 맞는 음식은 뭔지를 생각하는 자세가 필요해요. 제 경우는 과일과 우유를 먹다 병이 난 적이 있었어요. 그땐 매일 물 대신 우유를 마셨을 정도였는데, 알고 보니 우유가 제게 맞지 않는 음식이었던 거예요. 많은 여성이 과일주스는 건강식품이라고 착각하는데, 대부분의 경우 정제설탕이 많이 들어가 있지요. 하루 당분 20g을 기준으로 생각했을 때 이틀 치에 해당하는 당분을 한 컵에 담아 마시는 경우가 허다해요.” 조 PD는 알칼리성 야채와 채소를 많이 먹고 과일도 당부하지 수를 체크해 포도나 열대과일 대신 딸기, 사과, 키위 등을 먹는다. 또 모든 음식에는 기본적으로 약간의 소금이 들어가 있기 때문에 굳이 소금을 더 치지 않는다. 저염식이 아닌 무염식을 하는 것이다. “히든 슈거 음식들도 잘 가려 먹어야 해요. 그레놀라바는 건강한 바로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 글루텐프리 음식들에도 좋지 않은 성분이 들어간다는 걸 기억하고 포장 뒤의 성분을 유심히 봐야 해요.” 이렇게 말하면 먹을 음식이 적어진다고 불평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대체음식은 얼마든지 있다. 조 PD는 레시피를 응용하여 밥 대신 콜리플라워(지중해 연안에서 생산되는 양배추와 유사한 식물)를 먹고, 좋아하는 타르트 대신 수제 컵케이크를 만들어 먹는다. 인공감미료도 사용하지 않는다. 설탕 대신 허브의 일종인 스테비아(stevia)를, 베이킹을 할 땐 라칸토를 활용한다. 스테비아는 남미의 인디언들이 수천 년에 걸쳐 먹어온 허브로 액체로 사용하거나 갈아서 가루로 쓰며 설탕의 300배에 달하는 단맛을 낸다. 라칸토는 중국 계림성 ‘나한’이라는 과일을 일본에서 가공한 액체 가루이다. 내가 먹는 음식이 곧 나이다
식이요법을 제대로 하면 몸이 피곤하지 않다. 감정조절이 잘 되고, 기억력도 향상되며, 숙면을 취하게 되고, 변비까지 사라진다. “요즘은 알코올 중독 치료에 관한 책을 읽고 있어요. 보통 알코올 중독은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어서 지속되는 걸로 알잖아요. 그런데 이 책의 저자는 저혈당증이 있는 사람들이 알코올 의존도가 높다고 말하고 있어요. 알코올은 당분이 높은 데다 바로 피로 가잖아요. 저혈당증을 극복하고 관리하면 술에 대한 의존도가 확 떨어져요. 알코올 중독은 중독에서 벗어나더라도 곧 다시 돌아간다는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 저혈당증을 관리했을 땐 75%가 회복했다고 해요.” 그녀는 음식으로 회복할 수 있는 병과 감정이 많다고 했다. 그러므로 자신이 무엇을 먹고 있는지를 잘 알아야 하는 것이다. “내가 뭘 먹는지 내용물을 생각하고 정체를 생각해봐야 해요. 모든 사람이 당분을 조절할 필요는 없지만, 과체중이면 식단을 바꿔볼 필요는 있어요. 의식적으로 선택하고, 체크하고, 몸으로 실험해보는 거예요. 무엇보다 재료를 이해하고 자기의 몸을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자기 요리는 스스로 해 먹는 것이 가장 좋겠지요.” 그녀는 이야기 중간 중간 건강을 관리하는 여러 가지 팁을 줬다. 레몬은 신맛을 내지만 알칼리성이 높기 때문에 아침에 레몬을 반 개 짜서 생수에 넣어 마시면 몸의 pH 밸런스를 맞출 수 있고, 좋은 기름을 적당량 섭취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했다. 특히 고등어와 호두, 연어에 많이 들어있는 성분인 오메가3를 신경 써서 섭취해야 하는데, 음식으로 섭취하지 못할 때는 아마씨 가루 한 숟가락을 추천했다. 조 PD는 11월부터 격주로 집에서 쿠킹 클래스를 연다. 모집인원은 5명으로 블로그를 통해 신청한 사람 중 건강 지식을 나누는 것이 가장 절실한 사람을 선정한다. 올해 시작해 내년에는 커리큘럼을 짜서 더 체계적으로 운영할 계획이다. 회당 주제는 참여자들의 관심도를 중심으로 설문조사를 해 매번 업그레이드할 계획이다. 조 PD의 블로그(http://blog.naver.com/nsp2090)에는 특히 30~40대 여성들이 글을 많이 남긴다. 여성이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전환점을 맞는 시기는 40대다. 그녀 또한 2011년 6월, 만 39살이 될 때 본격적으로 식이조절을 통한 건강관리와 다이어트를 시작했다. 노 슈거 프로젝트 2090은 그런 그녀에게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을 제시했다. “제가 아식스(Asics)라는 말을 좋아해요. 건강한 신체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는 뜻이에요. 최근에 본 글귀도 기억에 남는데, 버지니아 울프가 한 말이었어요. 밥을 제대로 먹지 않는 사람은 일도 생각도 사랑도 제대로 하지 못한다. 정말 그렇지 않나요?” 기사제공 = 엠미디어(M MEDIA) 라메드 편집부(www.remede.net), 취재 곽은영 기자(kss@egih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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