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정거장에서 촬영한 한반도의 밤 사진을 본 적 있다. 암흑이 고요하게 내려앉은 북한과 대비되던 대한민국은 노란 불빛으로 뚜렷한 해안선과 땅의 윤곽을 그리고 있었다. 그 속에서도 유독 빛으로 반짝이던 서울. 한낮의 소음과 먼지가 어둠 속으로 가라앉고 간헐적인 빛만 남는 시간, 그 반짝이던 도시 위를 걸어봤다. 서울의 밤은 낮보다 아름다웠다. EDITOR 곽은영 PHOTOGRAPHER 권오경 서울역 앞 서울스퀘어
서울을 방문하는 타향인들이 한 번은 마주하게 되는 건물. 서울역사를 나서는 이들의 눈에 가장 먼저 안기는 ‘서울스퀘어’는 서울역과 묘한 조화를 이루며 자주 서울의 첫인상이 되곤 한다. 그 크고 네모반듯한 건물을 빈틈없이 채우고 있는 창문과 그 창 너머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들은 서울이라는 도시가 갖는 이미지와 완벽하게 닮아있다. 혹자는 뉴욕에 타임스퀘어가 있다면 서울에는 서울스퀘어가 있다고 말하기도 한다. 지하 2층 지상 23층의 서울스퀘어는 요즘은 ‘미생빌딩’으로 사람들에게 더 많이 알려졌지만, 원래는 1977년 대우그룹의 사옥용으로 지어진 건물이다. 한때 한국 경제를 상징하는 건물로 30여 년간 서울의 대표 랜드마크로 자리매김해온 서울스퀘어는 지난 2007년 외국계 투자회사인 모건스탠리로 주인이 바뀌고, 2009년 리모델링을 거쳐 서울스퀘어라는 이름을 다시 얻게 됐다. 이곳의 밤이 아름다운 이유는 늦은 밤까지 불을 밝히고 있는 창문 안 사람들 때문이다. 그리고 덧붙이자면 저녁 7시부터 11시까지 정각마다 10분간 펼쳐지는 건물 외벽 위의 미디어아트도 한몫한다. 4층부터 23층까지(가로 78m, 세로 99m)의 건물 외관에 LED전구 3만 9,336개를 설치한 거대한 미디어 캔버스 위로 국내외 작가들의 작품이 영상으로 펼쳐지기 시작하면 지나가는 이들이 발걸음을 멈춘다.
청계광장에서 시작되는 청계천
청계천은 낮도 아름답지만, 밤에 더 로맨틱한 빛이 새어 나오는 곳이다. 이 청계천에 딸린 작은 광장이자 청계천의 발원지인 청계광장은 청계천의 시작 지점이다. 세종로 동아일보사 앞의 청계광장에는 삼색 조명이 어우러진 촛불분수와 2단 폭포가 설치돼 있다. 2단 폭포 양가로는 8도(道)를 상징하는 석재로 팔석담(八石潭)이 조성돼 있어 밤마다 물빛과 불빛의 어울림을 볼 수 있다. 청계천 입구에 위치하고 있는 다슬기 모양의 뾰족한 조형물은 밤이 되면 그 안에서 노란빛을 내뿜는다. 2006년 스웨덴 출신의 팝아트 미술가 클래스 올덴버그(Claes Oldenburg)와 그의 부인인 쿠제 반브르겐(Coosje van Bruggen)이 공동 디자인한 ‘스프링(Spring)’이다. 붉은색과 푸른색의 순서대로 철판을 나선형으로 꼬아 올려 만든 이 작품은 높이 20m, 무게 9t의 거대한 규모를 자랑한다. ‘스프링’은 작가가 작은 메모지에 그린 물방울 모양의 드로잉에서 시작됐다고 하는데 청계천과 잘 어울리는 출발점이다. 청계천을 찾은 날에는 광장을 오가는 연인들이 많았다. 그들은 추운 겨울밤임에도 손을 맞잡고 천의 물줄기를 따라 걸으며 밤 풍경을 사진 속에 담았다. 청계천에서 청계광장을 향해 걸어오기도 하고 청계광장에서 청계천을 향해 나아가기도 하며 그들의 시간이 청계천과 함께 흘러가고 있었다. 동대문의 UFO ‘DDP’
밤에 동대문역사문화공원 앞을 지나게 되면 그 이색적이고 몽롱한 풍경을 한번은 멍하게 바라보게 된다. 거대한 은빛 우주선이 지구에 내려앉은 듯한 모양의 DDP(동대문디자인플라자)의 독특한 외관 디자인은 시공 때부터 주변 상권과의 부조화를 우려하는 사람들의 입방아에 자주 오르내렸지만 이제 사람들은 부조화란 말 대신 ‘랜드마크’란 말을 더 자주 사용한다. DDP를 설계한 디자이너 자하 하디드는 자연과 지형을 고려한 설계로 유명한 자연주의 건축가로 기존의 인위적 건축물의 개념을 넘어 비대칭, 비정형, 곡선을 사용해 DDP를 완성했다. DDP의 외관은 총 4만 5,133장의 알루미늄 외장 패널이 덮고 있는데, 부드러운 곡선미의 표현을 위해 같은 크기의 패널은 단 한 장도 사용하지 않았다고 한다. 각각의 패널마다 11자리의 고유 식별 ID가 있어 보수공사가 필요할 때에도 ID만 알면 손쉽게 찾을 수 있도록 디자인한 것이 특징이다. 이 알루미늄 외장 패널에 대해 일각에선 도시 열섬 현상의 주범이 될 것이라고 비난하기도 했지만, 지붕의 녹화 면적 9,080㎡에 채송화와 금강기린초 등을 키우고 있어 오히려 서울의 허파 기능을 기대할 수 있다고 한다. 마침 DDP를 찾은 날엔 작년 12월 31일까지 하기로 했던 ‘LED 장미축제’가 시민들의 성원에 힘입어 연장되고 있었다. 2만 송이의 LED 장미가 한곳에 모여 장관을 이루는 광경을 보기 위해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몰려있었다. 몽환적인 빛의 공간에 발을 들여놓은 사람들. 빛나는 것은 사람을 끌어당긴다. 현대와 근대가 공존하는 밤 ‘낙산공원’
대학로에 위치하고 있는 낙산공원은 풍수지리적으로 북악산의 좌청룡에 해당한다. 산 모양이 낙타를 닮았다고 해서 낙타산으로도 불린다. 예전에는 산 중턱까지 아파트가 들어서 있었으나 서울시의 녹지 확충 계획에 의해 낙산공원으로 바뀌었다. 공원의 초입에는 낙산전시관이 위치하고 있고, 옛 모습을 그대로 복원한 성곽을 따라 산책길이 이어져 있다. 산책로 중간중간 체육시설을 갖추고 있어 손쉽게 운동을 할 수도 있다. 산책과 데이트를 위해 낙산공원을 찾는 이도 많지만, 서울 시내가 한눈에 들어오고 낙산 아래 오밀조밀 밀집해 있는 동네 풍경을 카메라에 담기 위해 이곳을 찾는 이들도 적지 않다. 이미 영화와 드라마에도 자주 등장한 바 있는데 주로 연인들의 데이트 코스로 등장했다. 낙산공원은 밤이 깊어질수록 찾는 이들이 늘어난다. 서울 내에서 성곽과 야경이 이렇게 시원하게 어우러지는 곳을 찾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현대와 근대가 공존하는 길 위에서 서울 시내가 한눈에 조망되며 대학로와도 인접해 있어 심야데이트를 즐기기에 좋다. 해가 질 무렵에 슬슬 대학로에서 벽화마을 쪽으로 산책하며 올라가면 야간산책 코스로 그만이다. 낙산공원 내부로 올라오면 아기자기한 산책길을 골라가며 걸을 수 있는데, 성곽 뒷길로 나와 조명을 받으며 걸어 내려가 보는 것도 추천한다. 낙산공원 성곽 위에 걸터앉아 데이트를 즐기는 사람들이 많은데 이는 관리인이 제지할뿐더러 위험하기도 하므로 자제하는 것이 좋다. 한강을 밝히는 세 개의 섬 ‘세빛섬’
서울 반포대교 남단 수상에 건설된 세빛섬은 한강에서 색다른 수변 문화를 즐길 수 있도록 랜드마크로 조성된 복합문화공간이다. 세 개의 빛나는 섬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세빛섬은 가빛섬, 채빛섬, 솔빛섬이라는 세 인공섬으로 구성돼 있으며 각 섬은 각각의 테마와 목적을 가지고 다리로 연결돼 있다. 축구장 면적의 1.4배 크기의 세빛섬은 물 위에 떠 있을 수 있는 부체 위에 건물을 지은 플로팅 형태의 건축물로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인 ‘어벤져스2’의 배경이 되기도 했다. 2009년 3월에 착공해 2011년 9월에 완공, 2013년 10월에 전면 개장한 이 인공섬은 당초 세 개의 빛이 한강에 둥둥 떠 있다는 의미로 ‘세빛둥둥섬’이라 불렸지만 ‘둥둥’이란 명칭에서 표류한다는 부정적인 의미가 느껴진다는 이유로 ‘세빛섬’으로 이름을 바꿨다. 세 섬 중 가장 왼쪽에 있는 가빛섬에는 국제회의, 기업행사, 연회, 예식 등에 최적화된 컨벤션 센터와 고급 레스토랑, 카페, 전망대가 자리 잡고 있다. 외관의 LED 조명이 수시로 바뀌어 같은 장소임에도 전혀 다른 분위기가 연출된다. 섬의 가장 오른쪽에 위치하고 있는 채빛섬은 라이브 뷔페 레스토랑과 리테일샵이 자리잡고 있어 쇼핑과 식사를 함께 즐길 수 있다. 두 섬 사이에 위치하고 있는 솔빛섬은 목재 마감 건물로 수상레저 스포츠를 즐길 수 있게 구성돼있다. 수시로 색을 바꾸는 세빛섬의 LED 패널도 아름답지만, 그 빛이 한강에 반영되는 것이 더 아름답다. 특히 밤의 반포대교 위를 걸으며 바라다보이는 세빛섬은 그야말로 꽃별 천지다. 야경의 중심에 있는 ‘N서울타워’
서울의 밤거리를 걸어 다니며 알게 된 것은 서울의 풍경 어디든 한편에는 남산과 서울타워가 자리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서울의 밤 풍경 탐방의 마지막 코스는 야경의 중심 N서울타워. 서울의 야경을 찍는 한 사진가는 남산 서울타워에 올라 내려다보는 야경을 서울의 가장 아름다운 모습 중 하나로 꼽기도 했다. N서울타워는 서울을 한 번에 볼 수 있는 몇 되지 않는 장소다. 에디터가 N서울타워에 오른 시간에는 타워는 물론 서울 시내에도 아직 불이 켜지지 않았다. 서울의 일몰시간을 검색해보니 5시 48분. 어둠이 내리고 불이 켜질 서울을 기다렸다. 해가 기울기 시작하자 전광판에 가장 먼저 불이 들어오고 이후 가로등이, 그다음에는 각 건물 창에서 하나둘 불이 켜지기 시작했다. 겨울의 남산에서 내려다보는 서울은 알알이 사연이 박혀 있는 것처럼 보였다. N서울타워는 1969년 텔레비전과 라디오 방송을 수도권에 송출하기 위한 목적으로 세워진 한국 최초의 종합 전파탑이다. 서울타워 전망대는 1975년 완공, 1981년 일반인에게 공개돼 서울의 명소가 됐다. 이곳에 올라가면 서울 전역과 인천항까지 한눈에 볼 수 있다. 낮에는 회색빌딩밖에 보이지 않지만, 밤에는 타워 전망대에 오르지 않아도 서울에 알알이 박힌 빛들과 도시의 스카이라인을 조망하는 데 어려움이 없다. 케이블카 요금 : (대인) 편도 6,000원, 왕복 8,500원 (소인) 편도 3,500원, 왕복 5,500원 기사제공 = 엠미디어(M MEDIA) 라메드 편집부(www.remede.net ), 취재 곽은영 기자(kss@egihu.com), 촬영 권오경 사진기자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