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메드] 현대인들의 마음속 시한폭탄, 화병(火病) 극복프로젝트

  • 입력 2015년 4월 20일 11시 26분


매년 명절이 되면 명절증후군이라 불리는 ‘며느리들의 화병’에 대한 기사가 앞다퉈 다뤄진다. 세월호 등 국가적 사건을 제때 해결하지 못하는 정부에 대한 실망감으로 생기는 ‘국민 화병’도 있고, 백화점 갑질 모녀나 땅콩 회항사건 등으로 부각되는 ‘감정노동자들의 화병’도 있다. 정이안한의원의 정이안 원장을 만나 화병의 정의와 증상, 진단과 치료법 등에 대해 들었다.

에디터 곽은영 포토그래퍼 김현진 도움말 정이안한의원 정이안 원장 (한의학박사)


화병에 잘 걸리는 사람들

화병은 오랫동안 참았던 울화, 분노 등이 쌓여 있다가 나이가 들고 정신·신체적으로 약해져 더는 화를 억누를 수 없을 때 폭발하면서 다양한 증상으로 표현되는, 한국에만 있는 ‘문화특이증후군’이다.

화병의 가장 큰 원인은 외부로부터 받는 스트레스다. 억울한 감정이 생기면 바로 표현을 하거나 상황에 대해 스스로 이해하고 감정을 다스려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고 감정을 마음에 쌓아두면 화병이 생긴다.

화병에 잘 걸리는 사람은 고지식하고 양심적이며 항상 감정을 억제하고 모든 잘못을 자신의 탓으로 돌리는 성격의 사람들이다. 과거에는 주부들이 가장 많이 걸리는 병으로 인식되어 왔지만 최근에는 직장 스트레스가 많거나 힘든 내색을 하지 않는 남성에게도 자주 나타나고 있다.

정이안 한의원의 정이안 원장은 최근 화병의 특이점으로 기업 리더들의 화병을 꼽는다.

“직장 내 평등구조가 구축되면서 리더들에게도 화병 증상이 많이 나타나고 있다. 과거 수직구조 속에서는 윗사람의 의견이 무조건 관철되었지만, 이제는 소통구조도 바뀌고 사회 환경도 변화되어 리더들에게 말하지 못할 고민이 생겼고 그게 쌓이면서 화병으로 발현될 때가 있다.”

직장인의 화병은 주로 금전적인 문제나 가족 간의 트러블, 직장 내 인간관계 등에서 발생한다. 화병은 증상이 조금씩 천천히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갑자기 한꺼번에 터져 나오는 양상을 보인다. 그래서 불과 얼마 전까지도 별 스트레스 없이 직장생활을 잘하고 있다고 생각되던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폭발하듯 화병 증상을 보이는 경우가 있다.

사례1

대기업 임원인 B씨(50, 회사원)는 연말 임원 임기 만료를 앞두고 실적이 좋지 않아 불안하기만 하다. 경기불황으로 인한 감원 대상에 포함될 것 같은 스트레스 때문이다. 게다가 대출을 받아 평수를 늘려 이사한 아파트는 하루가 다르게 값이 떨어지고 미국에 있는 아들의 유학비도 환율 때문에 크게 오르고 있다.

투자한 주식은 휴지조각이 될 지경이라 B씨의 하루하루는 그야말로 지옥이다. 이런 고민들 때문인지 B씨는 요즘 가슴이 답답하면서 속에서 뜨거운 기운이 확 치밀어 올라 목이 꽉 막히는 증상에 시달렸다. 견디다 못한 그는 결국 한의원을 찾았다. B씨의 진단결과는 여러 가지 스트레스가 단기간에 겹쳐서 누적되어 생긴 ‘화병(火病)’이었다.

사례2

K씨(37, 자영업)는 이웃에게 빌려준 돈을 받기 위해 몇 년째 법정을 드나들며 억울하고 분한 마음을 누르고 있다. 그러다 보니 열이 치밀어 오르고, 가슴이 체한 듯 답답하고, 온몸이 안 아픈 곳이 없이 아프다.

심한 두통과 불면증에 시달리던 그는 입속이 다 헐어 음식도 먹을 수가 없게 되고 감정의 변화가 심해져 가족들과의 불화도 커졌다. K씨가 한의원에서 진단받은 병명은 ‘화병’이었다.

사례3

D씨(46, 주부)는 결혼 15년 차 주부이다. 결혼 이후 줄곧 시어머니와의 갈등으로 심리적 부담을 안고 지내야 했고 남편은 점점 자신에게 무관심해져 갔으며 아이들조차 사춘기를 맞으면서 자신을 대놓고 무시하기 시작했다. 게다가 갱년기 증상인지 늘 체기가 있는 것처럼 속이 답답했고, 가슴이 심하게 두근거려서 별일 아닌 일에도 깜짝깜짝 놀라곤 했다.

병원에서 심장정밀검사와 위장 검사도 해보았지만, 모두 이상이 없다는 진단을 받았다. D씨는 병원 검사 후 정신과 치료를 권유받았다가 결국 한의원을 찾게 되었는데, ‘화병’으로 진단받았다.

화를 제대로 푸는 방법

화병의 주 증상에는 가슴이 두근거린다, 답답하다, 얼굴이 화끈거리고 달아오른다, 항상 피곤하다, 머리가 아프다, 잠이 잘 안 온다, 소화가 안 된다, 깜짝깜짝 놀란다, 원인 없이 불안하다, 어지럽다 등이 있다. 여성의 경우 변비나 생리불순 또는 무월경 증상이 동반되기도 한다.

정이안 원장은 “더 심각한 사실은 심장에 이상이 없는 사람이 가슴 통증을 느끼거나 협심증, 심근경색, 중풍 등의 심혈관 질환에까지 걸릴 수 있다는 점”이라며 “화병이 심할 경우에는 심장이 멈춰서 돌연사할 가능성도 있다”며 화병의 위험성을 설명했다.

화병을 호소하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자신들이 받아온 스트레스나 화를 푸는 방법을 모른다는 것이다. 화는 제대로 푸는 것이 중요하다. 계속 참기만 해도 안 되지만 그때그때 폭발시키기만 해도 안 된다. 서로의 ‘화’를 보살피기 위한 방법을 찾아야 한다.

“먼저, 억울함이나 분노를 느꼈을 때 자신이 주로 어떻게 반응하고 있는지 생각해봐야 한다. 분을 안으로 삭이는 유형이라면, 몸에서 당장 일어나는 변화는 눈에 띄지 않는다. 그러나 스트레스 호르몬이 대량 방출돼 신체 각 기관에 독(毒)으로 작용하게 된다. 심리적으로도 피해의식, 한(恨), 분노 등이 무의식 속에 남는다. 그때그때 분을 쉽게 드러내는 유형이라면 당장의 화는 풀릴 수 있지만, 그로 인해 인간관계가 악화될 수 있고 관계에 대한 부담이 또 다른 스트레스의 원인이 된다. 또 화를 내는 순간 심혈관계에 부담을 줘 혈압이 오르고, 교감신경이 자극돼 자율신경의 교란이 일어나게 된다. 즉, 화는 계속 참기만 해도, 화가 날 때마다 폭발시켜도 병이 된다.”

그렇다면 화는 어떻게 다스리는 것이 좋을까? 먼저 억울한 감정이나 분노가 치밀 때는 무조건 참거나 감정을 표출시키기보다 상대에게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하다는 양해를 구한 뒤, 마음을 안정시켜야 한다.

그러면서 무엇이 문제인지, 해결점은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을 정리한 후 다시 대화하는 것이 현명하다. ‘내가 화난 진짜 이유는 무엇인가’, ‘나는 구체적으로 어디에서 억울함을 느꼈는가’, ‘문제가 어떻게 해결되는 것이 현명한가’와 같은 질문을 스스로 던지면서 생각을 정리하고 원하는 답을 찾아가는 것이다.

특히 화를 나게 하는 갈등상황은 앞으로 계속 보고 지내야 할 가까운 사람과의 관계에서 생기고, 비슷한 상황에 자주 그리고 장기적으로 노출될 가능성이 높으므로 이런 생각 정리 훈련으로 자기감정 조절 능력을 키우는 것이 중요하다.


화병에 효과적인 치료법

화병의 치료를 위해서는 일단 감정의 울체를 풀어내야 한다. 한의학에서는 마음의 병이 몸의 병과 직결된다는 심신의학이론을 바탕으로 혈과 기운의 소통을 돕는데, 심신의 평안과 균형을 유지하도록 치료를 진행한다. 한방적 치료는 개개인에 맞는 한약 처방과 침, 약 침, 추나 등의 시술로 이뤄진다.

정이안한의원의 정이안 원장은 “화병은 정신병이 아니라 누구에게나 언제든지 찾아올 수 있는 심인성(心因性) 질환이기 때문에 심신의 균형을 잡아주는 치료를 일정 기간 받으면 누구나 극복할 수 있다”고 말한다.

한방에서는 스트레스와 긴장으로 과열된 뇌를 식혀주는 청뇌탕(淸腦湯), 막힌 기운을 소통시켜 몸을 편안하게 해주는 순기탕(順氣湯), 울증을 풀어주는 해울탕(解鬱湯) 등을 통해 신체의 에너지 흐름을 바로 잡아준다. 한약 요법 외에도 기혈 조절에 효과가 있는 약침 요법을 병행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스트레스로 울체된 가슴 속 울화를 풀어주는 삼정약침, 뇌 피로를 풀어주는 척유약침, 결핍된 세로토닌을 보충해주는 섬수약침 등이 대표적인 스트레스 질환 치료에 쓰이는 약침 처방”이라고 설명하는 정 원장은 “증상의 경중에 따라 추나요법으로 척추를 교정해 과민해져 있는 교감신경을 부교감신경과 조화시켜 자율신경의 균형을 조정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한방에서는 약에 의지하지 않고 심신의 균형을 회복하는 것이 화병 치료의 중요한 포인트다.


일상에서 화병을 다스리고 예방하는 방법

STEP1 알파파를 불러내라

명상을 하면 신체 내의 혈관이 팽창돼 맥박수가 떨어지고, 호흡은 정상화되며, 혈압은 자연히 낮아진다. 하루에 15분씩 두 번 명상하면 잠을 두 시간 자는 것과 같은 효과를 느낄 수 있다. 명상하는 동안 뇌는 심신을 안정시키는 항스트레스 물질인 알파파를 발산하는데 이로 인해 의식이 있는 상태에서도 깊은 휴식을 취할 수 있다.

STEP2 음악을 연주해라

음악은 과도한 스트레스 환경에서 자기 제어 능력을 키우는 데 효과가 있다. 최근 의학적·심리학적 치료법으로 음악이 널리 이용되고 있는 이유도 음악이 환자의 심리적 스트레스를 완화시키고 자아를 통합해 정서적 균형을 유지시키기 때문이다.

녹음된 음악을 듣는 것보다는 직접 연주하는 것을 듣는 것이, 그리고 남의 연주를 듣는 것보다는 자신이 직접 연주하는 것이 더 높은 치료 효과가 있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STEP3 숲으로 들어가라

울창한 숲에서 나무의 향과 신선한 공기를 심호흡으로 깊이 들이마시며 기분을 새롭게 하는 삼림욕도 스트레스 해소에 도움이 된다. 나무에서 발산되는 피톤치드 등이 스트레스를 없애고 심신을 순화시키며, 울창한 숲 속의 계곡이나 물가에 많은 음이온이 우리 몸의 자율 신경을 조절하고 진정시키며 혈액순환을 돕는다.

천천히 울창한 숲 속을 걷는 것은 몸에 산소 공급을 원활하게 해서 신진대사를 활발하게 하므로 기분이 편안하고 즐거워진다. 이때 옷은 면 종류를 입거나 최대한 피톤치드에 노출되도록 한다.

STEP4 음식을 골라 먹어라

어떤 음식을 먹느냐도 중요하다. 인체는 칼슘이 부족해지면 신경이 불안정해져서 불안, 초조, 우울증에 시달리기 쉽고 불면증까지 일으킨다. 칼슘을 적게 섭취하는 사람은 그 성향이 공격적이고 칼슘을 충분히 섭취하는 사람은 그 성품이 온화하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멸치는 대표적인 칼슘 식품으로 신경 안정 효과가 있다. 멸치에 함유된 칼슘은 혈액의 산성화를 막아주고 신경전달을 원활하게 해서 불안한 마음을 가라앉혀준다.

평소 정신적으로 지쳐있거나 흥분을 잘하고 작은 일에도 신경질을 내는 사람에게는 셀러리가 도움된다. 셀러리는 피를 깨끗하게 하고 신경을 안정시켜 흥분, 불안을 가라앉히는 효과가 있는 섬유질 식품이다. 과도한 정신노동으로 신경이 날카로워져 몸은 피곤한데 잠은 잘 오지 않는 상태일 때도 항스트레스 효능이 있는 셀러리를 먹으면 도움이 된다.

잘못된 정보 중 하나가 매운 음식이 스트레스 완화에 도움이 된다는 것인데, 매운맛이 우울감에는 일시적 도움이 될지 모르겠으나 화병에는 도리어 좋지 않다. 오히려 맵고 짠 자극적인 음식은 신경조절에 해가 되므로 담백한 음식을 섭취하도록 한다.



기사제공 = 엠미디어(M MEDIA) 라메드 편집부(www.remede.net ), 취재 곽은영 기자(kss@egihu.com), 촬영 김현진 사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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