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스물>의 세 친구는 세 가지 인생사는 법 사이에서 갈등한다. 현실을 추구할 것이냐, 이상을 추구할 것이냐, 아무것도 안 할 것이냐. 칼럼니스트 최명기 젊음의 의미는 제각각 현실을 선택하는 20대를 상징하는 경재(강하늘 분)는 스펙을 쌓아서 좋은 회사에 취직하는 것이 목표다. 이상을 선택하는 20대를 상징하는 동우(준호 분)는 만화가를 꿈꾼다. 동우는 힘들게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모은 돈으로 미술학원에 다닌다. 마지막으로 치호(김우빈 분)는 여자 만나고, 클럽 가고, 잠자면서 시간을 보내며 아무것도 안 하려 한다. 그런데 그들의 스무살은 처음 생각했던 것과는 다르게 풀린다. 하지만 그들 모두 여자 친구가 생기고 그들 모두 성장한다. 그리고 그들 모두 군대에 간다. 어떻게 보면 간단한 줄거리인데 <써니>와 <과속스캔들>의 각색을 맡았던 이병헌 감독답게 재미있고 감동적으로 줄거리를 이끌어간다. <스물>을 보고 나면 싫으나 좋으나 관객들은 자신의 스무살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된다. 그래서 나는 <스물>을 보기 전에 미리 시험 삼아 필자의 심리센터에서 일하는 젊은 선생님들에게 스물을 봤는지 물어보았다. 글쎄, 대부분의 선생님이 <스물>을 봤다고 했다. 보고 나서 어떤 생각이 들었는지 물어봤다. 그중 한 명은 다시 스무 살로 돌아가 해보지 못한 것을 해보고 싶다고 얘기했다. 다른 한 명은 지금 자신은 서른 살이지만 현재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해서 더 많은 생각을 했다고 했다. 스물을 돌이켜볼 여유가 없는 것이다. 그의 스물은 지금 진행 중이었다. 다른 한 명은 삶이 앞으로 초고속으로 더 빨리 지나갔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지금이 너무 힘들기에 앞으로의 시간이 초고속으로 지나갔으면 한다는 것이다. 마음속 젊음의 의미가 이처럼 제각각 달랐던 것이다. <영웅본색>의 스물 <스물>을 보고 나서 나 역시 나의 스무 살에 대해서 떠올려봤다. 당시에 나는 의대가 적성에 맞지 않아서 힘들어했다. 아무 생각 없이 어영부영 학교에 다닌다는 점에 있어서는 치호(김우빈 분)와 비슷했다. 하지만 치호처럼 재미있게 지내지는 못했다. 아무도 읽지 않는 소설을 쓴다는 점에 있어서는 동우(준호 분)와 비슷했다. 그러다 본과 1학년이 되면서 경재(강하늘 분)와 유사하게 현실적이 되었다. 의과대학은 6년제인데 예과 2학년과 본과4학년으로 구성되어 있다. 일반대학으로 따지면 3학년 2학기에 해당되는 본과 1학년 2학기부터 학교공부도 열심히 하고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나면 무슨 과 레지던트를 할지도 고민했다. 하지만 소설에 대한 열망 역시 포기하지 못했다. 그러다가 레지던트가 되어서야 소설 쓰기를 포기했다. 어떤 점에서 나의 젊음은 생활을 하면서 꿈을 추구하던 동우(준호 분)와 유사하다. 그리고 스무 살 때 우리가 줄창 보던 영화는 홍콩느와르였다. 그중에서도 잊을 수 없는 영화는 학교 앞 담배냄새 나던 좁은 비디오방에서 보던 <영웅본색>이었다. <스물>과 유사하게 <영웅본색>에도 전형적인 네 주인공이 등장한다. 경찰인 동생이 힘들어할까 범죄로부터 손을 씻고 새 출발을 하려는 아호(적룡 분), 의리 하나로 아호를 따르는 소마(주윤발 분), 아호로 인해서 아버지가 돌아가셨다고 믿는 경찰 아걸(장국영 분), 아호를 배반한 악인 아성(이자웅 분), 이상 네 명의 주인공이 등장한다. 이들 중 누가 진정한 영웅인지에 대해서 오줌냄새 나는 생맥주를 마시면서 갑론을박하고는 했다. 다른 인간으로 변화하려고 하는 아호의 삶, 올바르게 살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지나치게 사로잡혀 형을 외면하는 아걸의 삶, 맹목적으로 의리를 추구하는 소마의 삶, 돈이 모든 것이라고 생각하는 아성의 삶은 앞서 스물의 시작에 등장한 세 개의 삶의 방식과 유사하다. 영웅본색은 어떤 점에서 내 스무 살의 <스물>이었다. 그리고 나는 여전히 갈등에 시달린다. <스물>에 보면 49살이 되어서도 여자문제로 고민하다가 친구 앞에서 술을 마시며 우는 이가 있다”는 얘기를 듣고 스무 살의 주인공 셋이 기가 막혀 하는 장면이 나온다. 스물에는 마흔이 되면 어른이 될 것 같지만, 사실 마흔 살이 되어도, 환갑이 되어도, 백 살이 되어도 갈등하는 것이 어쩌면 인간일 것이다.
인생을 책임져야 하는 아이 ‘스물’ 옛날에는 스무 살이면 성인이었다. 대학에 가는 이들이 적었던 시절에 스무 살이면 취직하고 자신의 삶을 스스로 책임져야 하는 나이였다. 그런데 모두가 대학에 가기 시작하면서 스무 살은 애매한 나이가 되었다. 법적으로는 성인이지만 아직도 부모의 도움을 많이 받아야 했고 따라서 간섭도 많이 받는 나이가 되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취직해야 과거의 스물에 해당되게끔 세상이 바뀌었다. 물론 부모와 함께 살면 계속 간섭받으면서 홀로서기는 뒤로 미뤄지게 된다. 그러다가 결혼을 하고 분가를 하면 비로소 성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게 점점 <스물>의 의미가 퇴색되었다. 그러다보니 과거 스물에 하던 고민을 서른 살에 하게 되었다. 그래서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가 히트를 쳤다. 그런데 최근에 또다시 <스물>이 돌아왔다. 옛날에는 부모가 무한책임을 졌다. 그런데 지금은 부모도 자신의 노후가 걱정된다. 따라서 대학생이 되면 부모에게 손 벌리기가 미안하다. 따라서 아르바이트도 하고 자기 스스로 책임져야 할 부분이 점점 늘어난다. 과거에는 대학에 가면 부모님이 등록금을 대주셨다. 지금은 많은 대학생이 등록금을 대출받는다. 대학에 가면서 자본주의 금융시스템에 포함되게 된다. 슬프기는 하지만 빚쟁이가 되면서 자신이 자신의 인생을 책임져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과거에는 모두 다 어른이 되면 어떻게든 인생이 굴러갈 것이라고들 생각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어디가 되었건 대학에 가면 되었고, 대학을 졸업하면 어디가 되었건 취직이 되었다. 얼마나 잘 사느냐, 못 사느냐의 의미였지 평생 가난하게 살까봐 걱정하는 이는 없었다. 결혼도 마찬가지다. 짚신도 짝이 있다고 언젠가 누군가를 만나면 결혼할 것이고, 자녀도 생길 것이라고 믿었다. 지금은 결혼도 아무나 못 한다. 그러다 보니 저성장 시대가 되면서 스스로 대학입학을 포기하는 학생들도 많다. 졸업해도 취직이 보장 안 되기 때문이다. 단지 캠퍼스의 낭만 때문에 그 비싼 등록금을 날릴 수는 없다. 그러다보니 스무 살 어린 나이가 더는 어린 나이가 아니게 되었다. 스무 살에 인생에 대해서 고민해야 하는 이들이 다시 늘어 날 수밖에 없다. 영화 <스물>의 예상치 못한 흥행의 이면에는 이러한 현실도 일정 부분 기여하고 있다.
희극과 비극의 사이, 스물 <스물>을 보면서 <영웅본색>말고도 생각나는 영화가 하나 더 있었다. 바로 임순례 감독의 <세 친구>였다. 1996년도에 상영된 이 영화에도 스무 살을 맞는 세 친구가 등장한다. 이들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도 대학 진학을 꿈꾸지 못하는 버림받은 청춘이다. ‘무소속’(김현성 분)은 만화가를 꿈꾸지만, 조직사회를 견디지 못한다. ‘섬세’(정희석 분)는 여성스러운 외모와 분위기로 미용사를 꿈꾼다. 삼겹살집 아들 ‘삼겹’(이장원 분)은 먹고 놀면서 비디오나 보며 사는 게 인생의 낙이다. 그리고 이들에게 신검통지서가 날아온다. 섬세는 동네 건달들에게 폭행을 당한 후 정신과 치료를 받게 되면서 군대를 면제받는다. 삼겹은 체중과다로 면제를 받는다. 무소속은 군대에서 당한 폭행으로 청력에 손상이 와서 의가사제대를 하게 된다. <스물>에는 그나마 낭만이 있었지만, 가난하고 빽도 없고 희망도 없는 <세친구>의 미래는 암울하기 짝이 없다. <세친구>의 스물은 철저하게 무너진다. 앞으로 우리 시대의 이십대가 이병헌 감독의 <스물>에서처럼 길을 찾을지, 아니면 임순례 감독의 <세친구>처럼 길을 잃게 될지 이런저런 생각을 해보게 되었다. 영화 <스물>을 보고 나서 기억나는 톡톡 튀는 대사들이 있었다. 영화를 선전하는 데는 “니 엉덩이에 내 꼬추 비비고 싶어”가 한몫을 했지만 내가 잊을 수 없던 대사는 극 중 영화감독(박혁권 분)의 대사였다. “~~~~도 하지마.”, “~~~~도 하지마.”, “~~~~~도 하지마.” 시대를 반영한 명대사였다. 그리고 소희(이유비 분)의 야한 대사도 기억에 남는다. 더불어 기억나는 장면도 많았다. 특히 폭발적인 관객의 웃음을 이끌어냈던 영화 말미의 액션신은 개인적으로 <킹스맨>의 교회 살육신 보다 더 실감 났다. 소희(이유빈 분)의 오빠 소중 역을 맡은 배우 양현민은 일생일대의 전무후무한 불쌍한 액션 연기를 펼친다. 놓쳐버린 스무살의 행운 지금 이 나이가 되어서 생각하니 인생은 참으로 알 수 없었다. 내 인생의 스무 살 때는 상상하지 못했던 행운도 있었고 상상하지 못했던 불행도 있었다. 우리 사회는 어려서부터 아이들에게 인생에 대한 선입견을 주입한다. “열심히 하면 뭐든지 될 수 있다”, “공부 못하면 거지 된다”, “가난하면 불행해진다”, “그러니까 성공해야 한다” 그러다보니 스무 살 때는 인생을 성공과 실패로 나누게 된다. 자신이 성공 쪽에 속한다고 믿는 이들은 학점을 따고 대기업에 들어가면 인생이 탄탄대로라고 믿는다. 하지만 해고당하고, 이혼하고, 암에 걸리면서 인생이 생각같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는다. 자신이 실패 쪽에 속한다고 믿는 이들은 이렇게 사나, 저렇게 사나 똑같다고 생각하면서 스스로를 포기하고는 한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서 깨닫는다. 자신이 얼마나 많은 행운을 놓쳤는지. 젊어서는 ‘행운’이란 마치 하늘을 날던 풍선이 눈앞에 나타나듯이 분명한 형태로 찾아올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행운의 여신은 때로는 가면을 쓰고 나타나고는 한다. 행운을 발견한 자에게 처음에는 오히려 고난의 시험을 준다. 충분히 시험을 이겨내고 나면 그제야 가면을 벗는다. 자신은 실패자라면서 행운을 외면하던 이들은 나중에 깨닫게 된다. 자신이 당연하게 여기던 것들이 얼마나 큰 행운이었는지. 스무살, 서른살, 마흔살, 환갑, 죽을 때까지 우리는 현실, 이상, 휴식 사이에서 갈등한다. 아니다. 일하고, 꿈꾸고, 쉬는 것 그 자체가 인생이다. 일하기에 꿈꿀 수 있고, 꿈꾸기 위해서는 쉬어야 하고, 쉬었기 때문에 일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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