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 국립대병원들이 환자에게 진료비를 과다청구해온 것으로 드러나면서 공공병원의 신뢰도 및 효용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만성 누적적자, 의사 성과급제 시행, 각종 비리사건 등으로 공공병원에 대한 여론이 악화되는 시점에서 진료비 과다청구 사실까지 밝혀지자 일부에서는 공공병원들이 겉으로는 공공성을 내세우며 속으로는 영리를 추구하는 ‘착한병원 코스프레’를 하고 있다는 비아냥까지 나오고 있다.
신의진 새누리당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새누리당 의원실이 최근 3년간 국립대병원의 진료비 확인 청구내역을 확인해본 결과 환자들이 제기한 진료비 확인신청 총 6만3069건 중 2만6666건(42.3%)이 과다징수된 것으로 확인됐다. 과다청구로 환불된 금액은 91억여원에 달했다.
국립대병원 중 상급종합병원의 과다청구 건수가 9084건(34.1%)으로 가장 많았고, 종합병원 7153건(26.8%), 병원급 5938건(22.3%)다. 병원별로는 서울대병원이 총 2억9735만원으로 가장 많았으며 전북대병원은 1억461만원, 부산대병원이 8028만원 순이었다.
일반검사나 컴퓨터단층촬영(CT)·자기공명영상(MRI) 등 보험급여 대상인 진료비를 임의로 비급여 처리한 사례가 47.38%로 가장 많았다. 이미 진료수가에 포함돼 별도로 받으면 안되는 비용을 의료기관이 임의로 받아 환불한 사례도 38.88%에 달했다. 환불 금액은 50만원 미만인 사례가 82.9%(1358건)으로 대부분이었지만, 100만원 이상 고액환불도 9.8%(161건)을 차지했다.
신 의원은 “국립대병원의 경우에는 정부의 예산지원을 받아 지역거점 공공병원의 역할을 수행한다는 점을 감안할 때 이런 과다청구 문제는 수익창출을 위해 위법한 영리 활동을 한 것”이라며 “추후에는 과다청구가 발생하지 않도록 의료진에 대한 교육을 강화하고 고의적인 부분이 입증되면 징계를 내리는 등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공공병원은 국가나 지방자치단체에서 설립 및 운영하는 병원으로 국립대병원, 국립의료원, 시도립병원 등이 해당된다. 2014년 기준 공공병원은 약 200개로 전체 의료기관의 6.2%에 불과하다. 반면 민간병원 수는 3048개에 달한다. 병상 수도 공공병원은 6만265개(12%), 민간병원은 44만5280개(88%)로 7배 가까이 차이난다.
일반적으로 공공병원은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민간병원보다 저렴한 가격에 의료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는 인식이 강하기 때문에 이들의 영리활동은 항상 논란이 돼왔다. 온전히 진료만 하면 적자를 볼 게 뻔하고, 수익을 올리기 위해 영리활동을 하면 공공성을 상실했다는 비판에 직면한다. 이 때문에 공공병원들은 “착한병원 코스프레를 한다”는 비난이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공공병원이 공익적 의료의 제공, 사회적 안전망 유지, 중앙 및 지방정부 정책 수행, 지역사회의 공익적 활동 등을 수행하면서 어쩔 수 없이 발생하는 적자를 ‘착한 적자’라고 한다. 하지만 의료계 관계자들은 착한 적자는 정상적인 진료만으로는 병원 경영이 어려울 정도로 수가가 낮은 구조적인 문제를 반증한다고 입을 모은다.
현재 국내 건강보험 급여 항목의 원가보전율은 75%, 비급여 항목의 원가보전율은 190% 수준이어서 민간병원에 비해 비급여진료가 적은 공공병원은 재정적으로 손해를 볼 수밖에 없다.
적자폭이 늘고 영리활동은 제한되자 공공병원들이 모색한 자구책이 의사성과급제다. 이 제도는 초진 선택진찰료 전액, 재진 선택진찰료 절반 등을 의사의 ‘공헌수익’으로 정하고 성과급으로 지급한다. 제도상 교수 1인당 공헌수익 및 수익증가율, 병상이용률, 신규환자수, 실입원수 등이 높을수록 많은 성과급을 받게 된다. 이런 경우 의사가 공헌수익을 올리기 위해 비급여를 권유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이는 고스란이 환자 부담으로 이어진다.
2011년 보건의료산업학회지에 게재된 ‘병원 성과급제 운영실태 및 활성화 전략’ 논문에 따르면 전국 120개 병원 중 89개(74.2%) 병원이 성과급제를 운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공공병원의 경우 94.4%가 성과급제를 운영하고 있었다. 해당 자료가 발표된 지 4년이 지난 현재 성과급제 운영 병원의 비율은 더욱 증가했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공공병원들은 일정 수준의 비급여 진료는 필수불가결하다고 입을 모은다. 서울 내에 위치한 공공병원 관계자는 “공공병원은 대부분 급여수준이 낮아 우수 의료인력의 수급이 어렵고 병원장의 경영권과 인사권에 제약이 많아 과감한 경영을 할 수 없다”며 “시설 및 의료장비도 낙후돼 부정적인 이미지가 강한 상황인데도 주무기관인 복지부는 예산 지원에 인색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공공병원의 수익성 평가 방식 자체가 문제라는 의견도 있었다. 또다른 시립병원 관계자는 “공공병원은 민간병원에 비해 감독기관의 평가 및 감사가 지나치게 많고, 비급여 진료나 의료외 사업의 비중을 늘리는 것도 의료영리화 논란 탓에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공공병원 평가도 취약계층진료 등 공익적 활동에 따라 발생한 착한 적자를 따로 구분하지 않고, 공익적 활동비용까지 모두 적자로 계상해 수익성이 매우 낮은 것으로 오도되는 일이 많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전문가들은 단순 경영실적이 아닌 의료의 질을 중점적으로 평가해 인센티브를 지급해야 한다고 설명한다. 김윤 서울대 의대 의료관리학 교수는 최근 열린 ‘공공보건의료 심포지엄’에서 “국내 의료환경은 건강보험 수가가 낮기 때문에 적정진료를 하기 어려운 게 사실이지만 공공병원만큼은 적정진료를 하고 나머지 비용 문제는 정부에 청구하는 게 옳다”며 “단순 경영수지를 평가하는 현 인센티브 지급 체계를 의료의 질 평가 중심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공공병원들이 정부 지원에만 기대하지 말고 내부적인 체질 개선에 먼저 힘써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일부 공공병원들이 공익성이라는 허울 좋은 구실을 내세워 방만경영과 비도덕적 의료행위를 일삼고, 이로 인해 발생한 적자를 의료계의 구조적인 모순 탓으로 돌리고 있다”며 “재정난 심화에도 불구하고 사회취약계층을 위한 공공의료를 담당하고 있다는 이유로 만성적인 누적 적자를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은 심각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어 “공공병원이 제 기능을 유지하려면 막연히 정부지원만 바랄 게 아니라 병원 자체적으로 체질개선에 힘써야 한다”고 강조했다.
취재 = 박정환 엠디팩트 기자 md@mdfact.com * 본 기사의 내용은 동아닷컴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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