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호의 주제는 ‘테라피(Therapy)’ 입니다. 테라피는 사전적으로 ‘치료·요법’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데, 보완통합의학의 관점에서 보자면 ‘치료(治療, Treatment)’보다는 ‘치유(治癒, Healing)’에 가까운 행위가 아닌가 합니다. 치료와 치유는 국어사전에서도 구분 없이 해설해놓기 때문에, 그 차이를 이해하려면 데이비드 호킨스(David R. Hawkins) 박사의 <의식혁명>이라는 책에서 도움을 얻을 수 있습니다. 호킨스 박사는 ‘치유’를 단순히 증상에서 회복되기보다는 그 상태를 일으킨 ‘원인을 절대적으로 제거’하는 것으로 해석하였습니다. 고혈압에 항고혈압제를 처방하는 것이 치료라면, 치유는 환자가 더는 화내지 않고 스스로를 억압하지 않도록 삶의 맥락을 변화시키는 것까지 포함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치유’에서는 심리적 안정과 면역력 같은 자가치유능력을 중시합니다. 알 듯 모를 듯한 이야기일 수 있는데, 이럴 때는 언어 철학적인 논단에 빠져 있기보다는 단체 카톡방을 개설해서 막무가내 브레인스토밍을 펼치는 것이 더 효율적일 때가 있습니다. 필자 역시 팀원들과 ‘치유’라는 개념에 대해서 한밤 중에 난상토론을 펼쳤습니다. 그중 필자의 마음을 울린 뜻풀이가 ‘治 YOU (치유)’였습니다. 굳이 해석하자면 ‘상대를 다스린다’는 뜻이 될 수 있는데, 이번호를 준비하면서 느낀 것이 ‘관계성’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치유하기 위해서는 홀로 되는 것이 없더군요. 혼자 집에서 휴식을 취하며 심신의 안정을 취할 때도 우리는 음악을 듣거나 책을 읽거나 하는 등의 소통을 지속합니다. 그 대상이 꼭 사람일 필요는 없습니다. 자연이나 절대자가 되기도 합니다. 결국, 치유의 본질은 내 안에 머무는 것이 아닌 어떤 대상을 향할 때 이루어지는 것이었습니다. ‘治’의 다른 뜻인 ‘익히다, 배우다’나 ‘돕다’라는 의미를 대입하면, 그 의미가 좀 더 명확히 전달됩니다. 어찌 보면 세상의 질병과 갈등은 ‘상대를 배우고 도우려는’ 마음이 아닌, 나만을 생각하는 ‘治 I (치아이)’에서 생기는 것이 아닐지요. 데이비드 호킨스 박사 역시 <의식혁명>에서 유사한 해석을 했습니다. “기쁨으로 가는 열쇠는 자신의 생명을 포함한 전 생명에 대한 무조건적 친절이다. 우리는 그것을 가리켜 연민이라고 한다. 연민 없이는 그 어떤 유의미한 것도 거의 성취되지 않는다. 환자는 자신과 타인 모두를 향한 연민의 힘을 불러일으키기 전까지는 진실로 낫거나 근본적으로 치유될 수 없다. 그리고 자신과 타인 모두에게 연민을 갖게 된 지점에서, 치유된 이는 치유하는 이가 될 수도 있다” - 데이비드 호킨스 <의식혁명> 中 치유, 힐링이라는 말이 만연하는 세상입니다. 너무 다양하게 활용되다 보니 정작 그 본질적인 의미에 대해서는 고민조차 이뤄지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진정으로 치유된 삶을 원한다면 우선 나와 타인 모두에 대한 연민의 마음이 필요합니다. 그를 위해 타인을 배워나가려는 마음가짐이 선행되어야 하겠습니다. 라메드를 창간하며 서로의 체온으로 더욱 따듯해지는 건강라이프 매거진을 만들겠노라 했는데, 아직 몸과 마음의 냉기를 데우기에는 턱없이 부족합니다. ‘治 YOU (치유)’를 하지 못한 까닭입니다. 아직 배울 게 너무나 많습니다. 기사제공 = 엠미디어(M MEDIA) 라메드 편집부(www.ramede.net) * 본 기사의 내용은 동아닷컴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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