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적인 ‘사(師·士)’자 직업으로 인기를 누리던 의사들도 구직난에 몰리고 있다. 7일 의료계에 따르면 수도권 대학병원 또는 유명 대형 종합병원에서 근무를 원해도 점차 자리가 줄어 신참 의사들이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어지고 있다.
이런 현상은 개원을 해도 예전처럼 수지타산을 맞추기 어렵고 심지어 파산하는 경우가 잦아지자 대학병원의 교수 또는 시니어 의사들이 개원을 기피하고 현 위치를 고수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연쇄적으로 펠로우(전문의를 따고 레지던트를 거친 임상의사), 레지던트(전문의 취득 전후의 전공의), 인턴(의사면허를 갓 딴 전공의)의 TO(Table of Organization, 정원)가 감소하면서 일할 자리가 줄고 있다.
여전히 대부분의 중소병원은 안정적인 대학·종합병원에 밀려 의료진을 구하기 힘든 게 사실이다. 지방일 경우 이런 현상이 더욱 심하다. 하지만 출신 학교 대학병원이나 수도권 대형병원에 남길 원하는 젊은 의사들이 넘치면서 일부 젊은 의사들은 자리가 날 때까지 기다리는 경우가 적잖은 실정이다. 대체로 내과, 외과, 가정의학과, 정신과 의사들이 이에 해당한다.
경기도의 한 정신과 전문의는 “대학병원에서 교수 자리가 나지 않아 결국 수도권의 다른 지역에 자리를 잡아 옮겼다”며 “데리고 있던 후배 의사(펠로우)의 경우 대형병원에서 펠로우로서 더 수련을 해야 하는데 자리가 나지 않아 결국 집에서 쉬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낯선 지역으로 옮기는 것은 쉬운 결정이 아니기 때문에 다른 병원을 권하기도 어렵다”고 덧붙였다.
서울 대형 종합병원의 한 가정의학과 전문의는 “가정의학과의 특성상 병원 내 자리가 많지 않다”며 “학회에서 만난 레지던트들의 거취를 묻는 게 조심스럽다”고 밝혔다.
의료계의 한 관계자는 “의사 월급은 그동안 연령에 상관없이 1000만원이 기본으로 인식됐으나 초급 의사의 경우 수도권 대형병원에 취업하려면 600만~700만원도 감수해야 한다”며 “조금 시간이 흐르면 500만원 선이 붕괴될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성형외과·피부과·정형외과 등은 개원을 해도 비보험 진료가 많아 이익을 창출할 수 있어 개원을 선호하는 반면 내과·일반외과를 포함한 다른 과들은 개원을 해도 환자 수를 적정 규모로 늘리지 않으면 도산하기 쉬운 상황이다. 개원은 어렵고 대형병원에 남는 것도 불가능해지자 지방병원에 가는 것만이 활로를 여는 대안이 되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전문의들은 결혼을 해 지방으로 이사한다는 게 쉬운 결정이 아니다. 수도권도 마찬가지여서 경기도 성남시 분당과 광주의 경우 터널 하나 사이를 두고 붙어 있지만 월급이 100만원 이상 차이가 난다고 한다.
개원을 할 때 내과는 3000세대, 소아청소년과와 이비인후과는 5000세대를 끼고 있어야만 개원을 해도 성공할 가능성이 높다는 게 의료계의 정설로 통한다. 좋은 길목의 신축건물엔 대부분 이런 진료과들이 몇 개씩 붙어 있어 생존하기 어렵다. 최근에는 단독 개원보다 여러 의사가 연합 개원하는 것도 트렌드화되고 있다. 세부전공에 따라 각기 맡은 분야를 진료해 전문성을 더 내세울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진료 수익을 나누는 문제로 갈등하기 쉬워 연합 개원도 뾰족한 대안이 되지 못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의료인력을 구하기 힘들자 중소병원이나 대형의원에 의사를 소개해주는 회사도 속속 나타나고 있다. 이런 회사는 구인구직 사이트를 운영하면서 전문 영업사원을 채용해 의료인력을 공급한다. 소개료로 채용된 의사의 한달 치 월급을 병원측으로부터 받거나 소개해준 의사가 그만둘 때까지 월급의 10% 이상을 받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월봉 1000만원을 받는 의사를 20명을 관리하는 직원은 소개료로 2억원을 받거나 월 2000만원의 고소득을 올리는 셈이다.
일부 국공립병원이나 중소병원들은 진료보조인력(PA, Physician Assistant)을 구하는 임시방편을 내세우고 있다. 보통 PA는 수술실에서 의사 수술보조를 담당하지만 일부 병원에서는 PA에게 환자교육이나 상담, 수술기록 작성, 처방업무까지 맡기는 것으로 알려졌다. 병원의 만성 외과 인력부족 현상을 모면하기 위해 이뤄지는 이같은 임시방편은 불법행위다. 간호조무사가 주사를 놓는 것까지도 불법이지만 의료현장에서는 스스럼 없이 저질러지고 있다.
대한병원협회는 전공의 수련환경 개선 요구가 거세지자 전공의 근무시간 단축에 따른 추가인력 고용이 필요하기 때문에 PA제도 등이 합법화돼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부족한 의료인력을 모두 의사로 채우기에는 인건비 부담이 만만치 않다는 병원의 경영적인 측면을 고려한 판단이다.
2015년 현재 국립대병원에서 운영 중인 PA인력은 모두 632명으로 작년 581명에 비해 51명이 늘었다. 병원별로는 서울대병원이 158명으로 가장 많았고, 분당서울대병원 97명, 양산부산대병원 70명, 전북대병원 55명, 부산대병원 50명 등의 순이었다. PA인력을 많이 사용하는 진료과는 외과로 전체 PA인력의 22.2%인 140명에 달했다.
의료계의 이런 인력난은 고스란히 환자에게 질 낮은 의료, 경제적 비용 상승 등 부담으로 되돌아오기 때문에 국가의 적극적인 정책개입이 필요하다고 의사들은 입을 모으고 있다. 취재 = 현정석 엠디팩트 기자 md@mdfact.com * 본 기사의 내용은 동아닷컴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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