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진강은 경남과 전남을 가로 지르는 강으로 예부터 물 맑기로 유명하다. 민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섬진강 하구에서는 날씨가 따뜻해지는 5월이 되면 강 바닥에서 겨우내 숨죽여 살던 재첩을 잡기 시작한다. 5~6월 산란기 이전에 채취한 것과 겨울을 앞둔 10~11월에 잡힌 재첩이 가장 진국을 낸다.
섬진강은 물이 맑고 모래톱이 많으며 바다와 가까워 재첩 서식에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 30~40년전에 섬진강에는 ‘물 반 재첩 반’이라 할 정도로 재첩이 지천이었다. 섬진강 주변 주민에게 재첩은 자식들을 가르치고 먹이는 주요 소득원 중 하나였다.
재첩은 백합목 재첩과의 조개로 한국, 중국, 일본 등 동아시아에서 주로 자란다. 다 자란 것은 크기가 2㎝ 정도에 불과해 국내 식용 조개 중 크기가 가장 작다. 모래와 진흙 위를 기어다니며 유기물이나 플랭크톤을 먹는다. 지역에 따라 색, 크기 등의 변이가 심하다. 모래바닥에는 사는 것은 황갈색, 진흙에서 서식하는 것은 흑색을 띈다.
경남 하동군에서는 재첩을 ‘갱조개’라고 부른다. 이는 강조개란 말에서 유래됐다. 별칭으로 가막조개, 재치, 애기재첩, 다슬기 등이 있다. 봄과 가을이 제철이다. 여름에도 잡을 수 있지만 살이 적고 맛이 흐리다. 여름 재첩은 봄과 가을 재첩의 2배 양을 넣고 끓여야 먹을 만한 맛이 우러난다. 섬진강에서 잡히는 재첩은 대부분 1~2년생이다. 바다와 가까운 곳에서 잡히는 게 맛이 더 좋다.
재첩을 잡으려면 사람이 직접 강으로 들어가 긁어내거나 배에 긁개를 설치해 강바닥 속을 훑는 법이 있다. 사람이 강에 들어가 채취하는 것은 날씨가 따뜻해지는 5월 중순 이후부터 가능하다. 배를 이용한 것은 1990년대 이후다. 과거보다 재첩 양이 줄은 탓도 있지만 1980년대부터 건설용으로 섬진강 모래를 퍼가면서 강 수심이 깊어져 배를 이용하지 않으면 재첩을 수확하기 어려워진 게 가장 큰 이유다. 잡은 재첩은 육안으로 크기를 선별해 어린 것은 다시 강에 방류한다.
섬진강 유역 어민 관계자는 “재첩은 도수망이라 불리는 도구를 이용해 사람이 직접 잡거나, 어선에 형망을 설치해 강바닥의 재첩을 긁어 올려 채취한다”며 “가공공장으로 옮겨온 재첩은 맑은 물에서 12시간 이상 해감해 이물질을 제거한다”고 말했다. 이어 “재첩이 가장 맛있는 시기는 4~6월이지만 동면에 앞서 가을철에 잡히는 것도 맛이 괜찮다”고 덧붙였다.
과거 재첩은 경상도를 가로질러 흐르는 낙동강 하구에서도 많이 자랐다. 하지만 1987년 낙동강 하구에 제방이 지어진 이후 재첩이 급격히 줄어 지금은 멸종 상태에 이르렀다. 최근 부산시가 하구둑 개방을 검토하면서 낙동강에 재첩이 돌아올 것이라는 기대가 커지고 있다. 부산 강서구, 경남 김해 등 낙동강 인근 주민들은 부산시의 결정을 적극 환영하고 있다.
국내산 재첩은 1급수에만 서식하다보니 환경오염 등에 의해 개체 수가 줄고 있다. 재첩은 양식기술이 개발되지 않아 전량 채취한 자연산만이 유통된다. 이같은 이유로 시중에는 중국과 대만에서 자라는 허씨앤이 유통되고 있다. 허씨앤은 재첩과 같은 생물 분류에 속하지만 오염된 환경에 적응해 생존력이 강화된 변종으로 볼 수 있다. 국산보다 크기는 크지만 껍질이 딱딱하고 광택이 없으며 맛도 떨어진다. 웬만큼 오염된 물에서도 살 수 있고 번식력도 좋다. 중국산의 가장 큰 문제점은 국산과 교배했을 때 나타나는 현상이다. 국산과 중국산이 교배할 경우 중간잡종이 생기는 게 아니라 중국산으로 완전히 변한다. 허씨앤이 재첩에 비해 우성을 띠기 때문이다.
경상대에서 조사한 ‘재첩 성분 비교분석’ 자료에 따르면 재첩은 아미노산 함량이 풍부하고 지방 함량이 적은 식품으로 나타났다. 재첩 100g당 열량은 90㎉이며 수분은 77.5%, 단백질은 12.5%, 지방은 1.9%, 탄수화물은 5.8%, 회분은 2.3%를 각각 함유하고 있다.
재첩국은 술 마신 다음날 해장국으로 애용된다. 이는 재첩에 함유된 메티오닌의 역할이 크다. 메티오닌은 간 활동을 촉진하고 담즙 분비를 활성화시켜 간의 알코올 분해를 도와준다. 비타민 B·C 등 무기질도 간 회복에 좋다. 다른 조개류에 비해 칼로리, 단백질, 탄수화물, 칼슘, 비타민 등이 2배 이상 함유돼 있다. 재첩국의 진하고 담백한 맛은 글리코겐, 유기산, 아미노산 등이 우러난 것으로 조미료를 사용하지 않아도 감칠맛이 난다.
재첩은 성질이 차 몸에 열이 많은 소양인이나 태양인에게 좋다. 반대로 태음인은 과다 섭취를 피해야 한다. 소음인은 부추를 넣고 끓이면 차가운 성질로 인한 악영향을 줄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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