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엠디팩트] 비급여 공개 확대에 의료계 반발 … 어려운 전문용어 탓 실효성도 의문

  • 입력 2015년 11월 9일 17시 1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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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 340곳서 893곳으로 대상 확대 … 조회 메뉴 대부분 병원 홈페이지 구석에 놓여 확인 어려워

최근 몇년 새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비급여 진료비가 꾸준히 늘면서 가계비 부담의 주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정부는 병원마다 가격이 다른 비급여 진료비를 병원 홈페이지에 게재토록 하고 있지만 의료계의 반대와 홍보 부족으로 원활히 시행되지 않고 있다. 최근엔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비급여 공개 대상을 대규모 병원서 소규모 병의원으로 단계적으로 확대하는 방안을 추진하자 대한의사협회 등 의사단체들은 일제히 반대 목소리를 내는 상황이다.

의료계에 따르면 올해는 비급여 진료비 공개 대상 의료기관이 기존 340곳에서 893곳으로 확대된다. 세부적으로는 상급종합병원(43개), 종합병원(292개), 한방병원(258개), 전문병원(84개), 치과병원(216개) 등이다. 고시 대상인 비급여 항목도 32개에서 52개로 늘어난다.
내년엔 150병상 초과 1978곳으로, 2017년까지는 요양병원을 포함한 3657곳의 전체병원으로 공개 대상이 확대된다.

의료계는 비급여 가격 공개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의협은 “비급여 사항은 정부가 통제하는 공적 영역이 아닌 시장원리에 따라 수요와 공급의 측면에서 자율적으로 가격이 결정되는 구조가 적합하다”며 “준정부기관인 심사평가원에서 비급여 가격 정보를 제공한다는 명목으로 개입하는 것 자체가 국가기관의 재량 범위를 넘어서는 과도한 월권”이라고 지적했다.

전국의사총연합 관계자도 “심평원은 건강보험 진료에 대한 심사와 평가를 위해 존재하는 기구이기 때문에 건강보험과 아무런 상관없는 비급여 진료에 대해 심평원이 관여하는 것은 명백한 불법”이라며 “굳이 할 필요가 없는 관리 업무를 심평원에서 하는 이유는 궁극적으로 비급여 진료비를 심사해 이를 통제하겠다는 뜻”이라고 주장했다.

일선 병원들도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K 대학병원 관계자는 “비급여 진료비는 병원마다 인력, 시설, 장비 등 요인에 따라 차이날 수밖에 없어 단순한 가격 비교만으로는 적정성을 판단하기 어렵다”며 “인력의 질과 장비가 우수해 가격이 높게 책정됐을 뿐인데, 단순히 가격만 비교할 경우 돈만 밝히는 병원으로 오해받기 쉬워 억울하다”고 토로했다.

최근엔 심평원이 홈페이지와 버스 광고 등을 통해 비급여 비교 제도의 홍보에 나서면서 논란이 가중됐다. 서울시의사회는 “국민의 입장에서 가격에 대한 정보를 알려주는 것은 필요한 일이지만 ‘싼 것이 가장 좋은 것’이라는 심리를 부추기는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며 “건강보험 적용을 받지 않는 비급여 진료부분은 급여진료와 달리 분류체계가 갖춰져 있지 않기 때문에 의료기관별 가격을 공개해 직접 비교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게 의료계의 중론”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정부는 병원별 비급여 가격을 건강보험심사평가원 홈페이지에 게재함으로써 환자들의 편의성과 가격의 투명성을 높이고, 가격차가 자연스럽게 좁아지도록 유도한다고 주장한다. 심평원이나 병원 홈페이지에서 비급여 항목을 조회할 경우 병원별로, 질환별로 비급여 가격을 조회할 수 있다. 하지만 수술명의 경우 전문적이어서 일반인이 알아보기 어렵다. 같은 무릎관절 수술이라도 쓰이는 수술기법, 기구, 재료, 수술범위 등에 따라 천차만별이어서 가격차가 크기 때문에 주치의가 설명해주지 않는 이상 환자 스스로 가격을 파악하기 힘든 상황이다. 이같은 까닭에 시민단체는 비급여 진료비 공개에 대해 환영의 뜻을 나타내면서도 효과 자체에는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특히 병원 홈페이지의 경우 비급여 조회 메뉴가 홈페이지 구석에 위치하거나 글씨가 작아 눈에 쉽게 띄지 않을 때가 많다. 가뜩이나 홍보가 부족한 상황에서 메뉴도 찾기 힘들다보니 실제 이 제도를 활용하는 사람은 많이 없었다.
보건의료단체연합 관계자는 “비급여 가격 공개에 대한 대국민 홍보가 부족해 제도가 유명무실해지고 있는 상황”이라며 “당장 무슨 검사를 받게 될지 모르고 심리적으로 불안한 환자와 가족이 심평원 홈페이지에 들어가 일일이 가격을 비교해 본 뒤 병원을 결정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비급여 의료행위는 환자가 전액 자가부담해야 하고 병원별로 가격이 달라 오래전부터 논란이 됐다. 지난달 심평원이 상급종합병원, 종합병원, 치대 부속 치과병원 등 전국 336곳의 의료기관의 상급병실료 등 비급여 항목을 비교 분석한 결과 가장 저렴한 병원과 비싼 병원이 최대 35.8배 차이나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장내시경검사는 16배, 상복부초음파검사는 7.3배, 치과 임플란트시술은 11.6배 차이났다.

비급여 진료비가 병원마다 천차만별인 이유는 개별 의료기관이 심평원이나 보건소에 신고는 하지만 정부의 통제를 받지 않고 병원장 권한으로 가격을 책정하기 때문이다. 검사나 수술이 가진 가치뿐만 아니라 시설비, 장비비, 인건비까지 반영되기 때문에 규모가 큰 상급종합병원일수록 비급여 진료비가 높을 수밖에 없다.

현행 의료법상 치료 행위가 비급여 항목인 질환으로는 단순한 피로, 권태, 주근깨·다모·무모(無毛)·백모증(白毛症)·딸기코·사마귀·여드름·노화로 인한 탈모 등 피부질환, 발기부전·불감증·생식기 선천성기형 등 비뇨생식기질환, 단순 코골음, 질병을 동반하지 않은 단순포경, 검열반 등 안과질환 등이 있다.

신체의 필수 기능개선이 아닌 외모개선 목적의 의료행위로는 쌍꺼풀수술·코성형수술·유방확대축소술·지방흡입술·주름살제거술 등 미용 목적의 성형수술과 이로 인한 후유증 치료, 사시 및 안와격리증 교정 등 안과수술 중 시력개선이 아닌 외모개선 목적의 수술, 저작·발음기능 개선 목적이 아닌 외모 개선 목적의 악안면교정술 및 교정치료, 안경 및 콘텍트렌즈를 대체하기 위한 시력교정술 등이 있다.

최근 의료기술의 발전으로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새로운 의료행위가 등장하고, 경영난에 시달리는 일선 병원들이 자체적으로 비급여항목을 개발해 비싼 가격을 책정하면서 비급여 진료비 규모는 꾸준히 늘고 있다.보건복지부와 국회예산정책처에 따르면 초음파검사, 자기공명영상(MRI)검사, 선택진료비 등 비급여 의료비는 2009년 15조8000억원에서 2010년 17조9000억원, 2011년 19조6000억원, 2012년 21조4000억원, 2013년 23조3000억원 등으로 연평균 10.2%씩 증가하고 있다. 전체 의료비에서 환자가 부담한 비율은 2009년 35%에서 2010년 36.4%, 2011년 37%, 2012년 37.5%, 2013년 38%로 매년 늘었다.

오신환 새누리당 의원은 “과도한 의료비 지출로 인한 이른바 ‘메디컬푸어’가 해마다 약 70만명이 양산되는 실정”이라며 “환자가 동일 질병으로 여러 의료기관을 갈 경우 어떠한 진료를 받았는지 구분이 명확치 않고 진료비용이 적절했는지 여부도 상호비교가 불투명하다”고 말했다.
이어 “국민들에게 의료비 폭탄을 안기고, 불투명하게 청구되고 있는 비급여 진료비에 대해 조속히 개선책을 마련해야 한다”며 “‘비급여제도개선TF’를 총리실 산하에 설치하고 이곳에 소비자, 의료기관, 복지부, 금융위, 보험사 등이 참여해 비급여제도 개선 방안을 제도화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비급여 진료비의 공개엔 누구나 공감하지만 일반인들이 일목요연하게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의료계는 반대하고 있지만 이를 실시할 경우 의료의 질과 원가, 서비스 수준이 반영된 적정 비급여 진료비 책정 시스템이 필요하다. 이에 대한 논란은 쉽게 정리되지 않을 전망이지만 대세는 병원급에서 제도 정착 후 의원급으로 확대 실시다.

취재 = 박정환 엠디팩트 기자 md@mdfac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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