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계 “타각적 굴절검사기기 사용은 엄연한 의료행위” … “전신질환 진단 늦어질 수도” 주장
최근 의료기사로 포괄 관리되고 있는 안경사 직능을 분리하고, 안경사에게 타각적굴절검사기기 사용을 허용하는 이른 바 ‘안경사 단독법’이 국회 계류 중인 가운데 안과의사들과 안경사간 갈등의 골이 깊어지고 있다. 지난해 4월 노영민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안경사의 재능을 지속적으로 계승·발전시키고 안경산업의 발전을 도모한다는 목표로 안경사 단독법을 대표발의했다. 이 법안은 발의된지 1년 7개월여 만인 지난 9일 소관위원회에 상정됐다.
안경사제도는 1987년 ‘의료기사 등에 관한 법률’이 일부 개정되면서 국가면허제도로 처음 도입됐다. 당시만 해도 미미했던 안경산업은 2011년 안경 착용인구 비율이 54%까지 높아지고 현재 콘택트렌즈 사용자도 410만여명에 달하면서 급속히 성장해왔다. 하지만 기존 법률은 시력검사에 필요한 기초장비인 타각적굴절검사기기를 안경사가 사용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다.
타각적굴절검사는 망막으로부터 나오는 빛의 반사를 관찰하고 그 굴절 정도를 측정해 눈 상태를 정확히 파악한다. 시력검사용 도표를 직접 읽는 자각적 굴절검사보다 훨씬 많은 의학적 전문지식이 요구된다. 이 때문에 안과의사들은 타각적 굴절검사는 명백한 의료행위이므로 안경사에게 이를 허용하는 것은 불가하다는 입장을 고수해왔다.
이에 반해 안경사들은 타각적굴절검사기기를 사용하는 데 필요한 전문성은 충분히 갖추고 있다고 입장이다. 대한안경사협회 관계자는 “시력검사에 필요한 타각적굴절검사기기 사용은 의료계가 주장하는 ‘의료 행위’가 아닌 ‘광학적 검사 행위”라며 “국민의 70% 가량이 안경원에서 시력검사를 하고 있는 상황을 고려하면 안경사에게도 타각적굴절검사기기 사용을 허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안경사도 대학교 정규과정을 통해 기기 사용에 대해 전문적으로 배울 뿐 아니라 국가시험을 통해 면허를 획득하는 반면 오히려 의대 교과과정에는 이런 타각적굴절검사기기에 대한 부분은 거의 다뤄지지 않고 있다”며 “안과에서도 안경사를 고용해 환자를 대상으로 타각적굴절검사기기를 사용해 시력검사를 실시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서울 은평구에서 안경원을 운영 중인 L 안경사도 “현재 상당수의 사람이 안경원에서 안경이나 콘택트렌즈를 구입해 시력을 교정하는 게 현실”이라며 “안경사들은 연간 200시간씩 몇 년 동안 각종 검사장비의 사용법 등을 교육받지만 시대에 뒤처진 각종 규제로 인해 배운 것을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새 법안은 검사가 불충분해 도수에 정확히 맞는 안경을 착용하지 못했던 불편함을 개선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며 “안경원에서 눈 검사를 받다가 백내장이나 녹내장 등 안질환이 발견되는 경우에도 안과에서 조기에 치료받을 수 있는 길이 열릴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의료계는 새 법안이 의료계 질서를 해치고 나아가 국민의 눈건강에 악영향을 끼칠 확률이 높다며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대한개원의협회 관계자는 “타각적굴절검사기기는 백내장, 녹내장, 황반변성 등 실명에 이를 수 있는 질병을 포함한 여러 눈 질병의 유무를 일차적으로 함께 알아보는 검사의 첫걸음”이라며 “의료인이 시행해야 하는 전문적인 의료행위이기 때문에 이를 안경사에게 사용하도록 허용해선 안 된다”고 주장했다.
서울 마포구에서 개인 안과를 운영하고 있는 P 원장도 “검영기 등을 사용하는 타각적굴절검사는 기본적인 진단검사에 해당되는 전문적 의료행위”라며 “안경사가 이 검사를 실시하는 것은 무면허 의료행위로 볼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어 “타각적굴절검사를 허용해달라는 안경사들의 주장은 국민건강이 아닌 이권을 추구하기 위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1987년 안경사제도 도입 당시 500명에 불과했던 안과 전문의 수가 현재 3000명에 달해 전국 어디서나 쉽게 안과 의사에게 진단받을 수 있는 상황에서 안경사의 권한을 더 늘리는 것은 의미가 없다는 주장도 나왔다.
안경사의 업무영역을 넓히면 안경과 콘택트렌즈 판매 및 구입 과정이 수월해지고 전보다 정확한 도수의 안경을 맞추는 데 도움되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문제점도 있다. 수많은 의사와 의료기사의 직능간 갈등이 산재하고 있는 상황에서 안경사에게만 특혜를 부여한다면 다른 직군들이 형평성 문제를 제기하며 너도나도 단독법 발의를 요구하는 상황이 올 수 있다. 또 전신질환 증상은 종종 눈을 통해 나타나는데, 검안사가 이를 단순한 시력저하로 판단해 치료를 미루면 질환이 악화될 위험도 존재한다. 이처럼 의료계 전체 질서 및 국민건강과 직결된 사안인 만큼 복지부는 의료계와 안경사들의 의견을 공평히 수렴해 두 직군 모두 윈윈할 수 있는 정책 대안을 내놓을 필요가 있다.
취재 = 박정환 엠디팩트 기자 md@mdfact.com * 본 기사의 내용은 동아닷컴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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