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세의 평균키, 체중도 비슷한 두 사람이 양복점에 방문했다고 생각해보자. 체격은 비슷하지만 두 사람의 맞춤양복은 다를 수 밖에 없다. 팔길이와 어깨선, 가슴 및 허리 둘레가 다르기 때문이다. 본인에게 맞는 보청기를 찾는 것도 맞춤양복을 해서 입는 과정과 유사하다.
몸 치수를 재는 것은 각종 청각검사를 하는 것과 같다. 가봉을 통해 보정하는 과정은 보청기를 조절하는 것과 같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양복 장인들은 수개월에서 길게는 1년 이상 수십 차례 가봉 과정을 걸쳐 최적의 맞춤양복을 만든다. 그 기간 고객과 끊임없이 대화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보청기는 예민한 의료기기이기 때문에 이보다 훨씬 더 긴 시간과 더 많은 조절이 필요하다.
보청기는 난청 환자의 남아 있는 청각을 최대한 끌어올려 일상에서 잘 들을 수 있게 해야 한다. 이는 오랜 조절 과정 속에서 의료진과 환자 간의 끊임없는 상담과 주기적인 검사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또 보청기의 효과를 확인하는 사후관리도 필요하다.
더불어 본인이 매일 접하는 소리 환경을 반영해 청취 전략을 고안하고 교육하는 과정도 중요하다. 즉 청력검사와 처방을 한 전문의와 보청기 조절을 담당하는 청각사, 그리고 소리 환경을 분석하고 청취 전략을 교육하는 상담사와 끊임없이 대화해야 한다.
또 환자 개개인도 착용한 보청기가 자신에게 맞는지 확인해야 한다. 물론 확인하는 건 쉽지 않다. 처음 보청기를 착용하면 대부분의 경우 착용 전보다 소리가 커진 것 말고는 대화가 선명하게 잘 들리는지, 잡음이 잘 들리지 않는지 등 효과를 가늠하기가 어렵다. 이때 착용자가 보청기 효과를 가늠하려면 다음 사항을 확인해 보자.
① 글을 소리내서 읽거나 아는 시를 낭송하면서 본인의 목소리를 들어본다. 이때 소리가 자연스럽게 나오면서 울림이 없어져야 한다.
② 조용하지 않은 여러 장소에서 말소리를 들어본다. 이때 동시에 보청기의 여러 프로그램을 작동시켜 소리를 비교해 본다.
③ 전화기 소리를 확인해 본다.
④ 교회나 성당, 강연장에서 마이크나 TV 소리를 들어본다.
⑤ 음질을 높이기 위한 부가적 부품들의 필요 유무도 확인해 본다.
최근 보청기에 대한 국가 보조금이 인상되면서 보청기의 문턱이 낮아졌다. 반가운 소식이지만 보조금 금액에 맞춰진 보청기로만 획일적인 처방이 이뤄진다면 문제가 생길 수 밖에 없다.
본인에게 맞는 보청기는 삶의 질을 향상시키고 난청의 진행을 막으며 우울증이나 치매와 같은 난청의 심각한 후유증을 예방한다. 이렇게 소중한 보청기를 선택할 때는 신중을 기해야 한다. ‘내게 딱 맞는 양복’을 평생 즐겨 입듯이 ‘내 귀에 끼는 보청기’도 그래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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