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간 6679억원 소요, 건강보험증 대여·도용 문제 해결에 도움 … 실효성 있는 지출인지 의구심
얼마전 의료계를 발칵 뒤집었던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MERS)의 확산 원인이 환자의 동선 및 진료이력 파악 실패로 꼽히면서 전자건강보험증, 이른바 IC카드를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IC카드 도입은 2001년부터 건강보험 부정수급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화두로 떠올랐지만 매번 의료계와 시민단체의 반발로 무산됐다. 최근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재차 IC카드 도입을 위한 여론몰이에 나서면서 공단과 의사단체 및 시민단체와의 갈등의 골이 깊어지고 있다.
최근 성상철 국민건강보험공단 이사장은 “의료기관 이력 등에 대한 환자 정보를 신속하게 파악할 수 있었다면 메르스 사태는 크게 번지지 않았을 것”이라며 “전염병 확산을 방지하기 위해 전자건보증은 꼭 필요한 요소”라는 입장을 밝혔다. 이어 “IC카드 등을 통해 응급실을 방문한 고령자 진료기록 등을 빠르게 확인한다면 긴급상황에서 골든타임을 지킬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건보공단에 따르면 전자건강보험증 도입엔 향후 10년간 총 6679억원의 예산이 소요될 것으로 추산된다. 이 중 도입비만 5525억원으로 △매체 비용 2769억원 △배송 비용 502억원 △리더기 비용 781억원 △소프트웨어 639억원 △하드웨어 264억원 △발급센터 280억원 △관제센터 20억원 등이다. 공단 관계자는 “IC카드 도입에 막대한 예산이 들어간다는 지적이 나왔지만 도입 후 10년이 지나면 건보재정 절감액이 약 1조1946억원에 달해 투입 비용 대비 약 1.7배의 이익을 얻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건보공단을 비롯한 찬성 측은 현재 사용 중인 종이 건강보험증의 경우 환자가 병·의원에 방문했을 때 자신의 성명·주민등록번호 등을 직접 적어 접수하는 과정에서 개인정보가 노출될 수 있다는 점을 IC카드 도입의 근거로 제시한다.
타인의 주민등록번호를 사용하는 등 건강보험증 대여 및 도용 문제가 꾸준히 발생하고 있는 점도 IC카드 도입론에 힘을 실어준다. 지난해에만 4만5000건의 건강보험증 도용 사례가 적발됐으며, 진료비로 따지면 13억원의 건강보험 재정이 누수된 것으로 추산된다.
기존 보험증은 주기적으로 일괄 발급형태로 이뤄지다보니 발급과 배송 비용이 꽤 크다. 매년 1800만건의 신규 또는 재발급이 이뤄지면서 매년 55억원이 소요된다. 메르스와 같은 감염병이 발생했을 때에도 환자의 병원 방문 기록이나 진료내용을 본인의 진술에만 의존하면 확산을 방지하는 데 한계가 있다.
전자건강보험증을 활용하면 알레르기가 있는 환자에게 부작용을 유발할 가능성이 있는 약을 처방하는 문제를 막는 데에도 도움된다. 불필요한 컴퓨터단층촬영(CT), 자기공명영상(MRI) 검사도 줄일 수 있다.
하지만 의료계와 시민단체는 여전히 부정적인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특히 개인정보 유출을 막기 위해 IC카드를 도입한다는 건보공단 측의 논리에 이해할 수 없다는 주장이다. 건강세상네트워크 관계자는 “수기로 작성한 단순 개인정보가 유출되는 것과 IC카드에 담긴 방대한 개인의 의료정보가 외부로 빠져나가는 것은 차원이 다른 문제”라며 “환자가 카드를 분실하거나 전자칩에 담긴 정보가 해커나 악성코드로 인해 인터넷 등에 유출될 경우 보험급여 부당 수급, 보험 사기 등 각종 사회적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IC카드가 국민의 편의성보다는 건보공단 측의 행정편의주의적 발상에서 나온 것이라는 주장도 나왔다. 또다른 시민단체 관계자는 “메르스 등 감염병 확산을 막거나 과잉진료를 억제하기 위해 IC카드를 도입한다는 것은 허울좋은 핑계에 불과하다”며 “현재 시스템으로도 이런 문제를 충분히 진단 및 억제할 수 있는 데도 건보공단은 자신들의 업무 편의성을 높이기 위해 막대한 예산을 쏟아붓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현행 시스템만으로도 건보료 부정수급, 처방전 오류 등 문제를 충분히 예방할 수 있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문정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새누리당 의원은 올해 국정감사에서 “현재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의약품 관련 정보를 실시간으로 제공해 부적절한 의약품 사용을 차단하는 DUR서비스를 실시하고 있으며, 2013년말 기준 99.2%의 요양기관이 참여하고 있다”며 “이 시스템으로도 처방 오류나 감염병을 탐지할 수 있음에도 전자건강보험증 도입을 위해 과다한 경제적·행정적 비용을 부담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정보 보안 문제에도 우려의 뜻을 나타냈다. 문 의원은 “의료정보 유출을 우려해 단순 정보만 기재할 경우 막대한 예산을 들여 전자건강보험증을 도입할 필요가 없다”며 “전자건강보험증은 보안이 필수지만 최근 약학정보원 등을 통해 환자 약 4400만명의 의료정보 47억건이 불법 유출되고, 공단 직원에 의한 개인정보 불법 유출 및 무단 접속이 꾸준히 발생하는 상황에서 정보 보안을 자신하기에는 이른 감이 있다”고 말했다.
의료계는 이런 논란의 초기에는 반대 의견을 피력하다가 최근에는 내부 의견 조율 상태다. 의사단체는 IC카드 제작할 돈이 있다면 낮은 의료수가 인상을 통해 병원 적자를 보전해달라는 게 기본 입장이다. 하지만 최근엔 공단의 논리에 설득당한 자세로 분명한 입장을 유보하고 있다.
취재 = 박정환 엠디팩트 기자 md@mdfact.com * 본 기사의 내용은 동아닷컴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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