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으로 조선을 위기에 빠뜨렸던 선조는 1608년 음력 2월 1일 서울 정릉 행궁에서 갑작스럽게 사망했다. 조선왕조실록에는 선조가 아랫사람이 가져다준 약식을 먹고 갑자기 기(氣)가 막혀 죽었다고 적혀져 있다. 당시 어의였던 허준까지 급히 와서 상태를 살폈지만 손 쓸 방법이 없이 세상을 떠났다. 후대 사람들은 소화가 잘 되는 음식 중 하나로 꼽히는 약식을 먹고 선조가 기가 막혀 죽은 것에 대해 독살이 아닐까하는 의문점을 갖고 있다.
과거 약식(藥食)은 왕을 비롯해 상류층이 즐기는 음식이었다. 찹쌀, 밤, 대추, 잣 등과 함께 평소 구하기 힘든 참기름·꿀·간장을 이용했기 때문에 대보름날이나 잔칫날이 아니면 서민들은 약식을 먹기 어려웠다.
약식은 본래 평소 신세를 진 사람들과 나눠 먹는 보은(報恩) 음식이었다. 약식의 유래는 고려시대 후기 승려 일연이 쓴 ‘삼국유사 사금갑조’(射琴匣條)에 나와 있다. 신라 소지왕 10년(488년) 정월 15일 왕이 절에 가던 중 까마귀가 봉서(封書)를 줘 열어보니 ‘금갑(琴匣, 거문고 상자)에 활을 쏴 두 사람을 죽이지 않으면 한 사람이 죽는다’는 말이 적혀 있었다. 한 사람보다는 두 사람을 살리는 것이 낫다고 왕이 시행하지 않자 내시가 ‘두사람은 백성이요 한사람은 필시 임금님을 의미하오니 봉서대로 하시라’고 간청해 금갑에 활을 쐈더니 그날 밤 모반하려던 신하와 궁녀가 죽고 왕의 목숨을 건졌다. 이에 왕은 까마귀에게 보은하기 위해 까마귀 털빛의 약식을 만들어 까마귀에게 대접했다. 이 시기부터 정월대보름을 ‘오기일(烏忌日)’로도 부르고 약식을 해 먹는 풍습이 생겼다.
한국 전통음식에는 ‘약(藥)’ 자가 들어간 음식이 많다. 1819년 다산 정약용이 저술한 ‘아언각비’(雅言覺非)에는 ‘조선에서는 꿀을 흔히 약(藥)이라 한다. 따라서 밀주를 약주라 하고 밀반을 약반, 밀과를 약과라 말한다’고 쓰여져 있다. 약식도 꿀이 들어가 이같은 이름을 얻게 됐다. 약식의 약(藥)자는 병을 고쳐주는 동시에 이로운 음식이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지역에 따라 약식은 약밥, 약반 등으로 불린다.
1809년 지어진 ‘규합총서’에는 비교적 상세하게 약식 제조법이 서술돼 있다. 이 책에는 ‘좋은 찹쌀 두 되를 백세(白洗)해 하루 정도 불려 시루에 쪄서 식힌 뒤 황률을 많이 넣고 백청(물엿) 한 탕기, 참기름 한 보시기, 간장 반 종지, 대추 한 탕기 등을 버무려 시루에 담아 찌면 약식이 완성된다’고 적혀져 있다.
약식은 중국에서도 귀한 음식으로 대접받았다. 1611년 허균이 지은 ‘도문대작’(屠門大嚼)에는 ‘중국인들은 약반을 좋아한다. 그들은 이것을 배워 만들고 고려반(高麗飯)으로 부른다’고 적혀져 있다. 1819년 김매순이 지은 ‘열양세시기’(洌陽歲時記)에는 ‘중국에 건너간 조선 사신들이 중국인에게 약식을 만들어 나눠주면 귀인들이 그 맛을 보고 반색하며 매우 좋아했다’는 내용이 있다.
약식의 주재료인 찹쌀은 위를 편하게 해주고 소화가 잘 되도록 돕는다. 따라서 위장이 상대적으로 약한 사람에게는 멥쌀 대신 찹쌀을 추천한다. 멥살과 찹쌀은 ‘아밀로스(Amylose)’와 ‘아밀로펙틴(Amylopectin)’ 함량에 따라 구분된다. 찹쌀은 대부분 아밀로펙틴으로 구성돼 있다. 따뜻한 성질로 열이 많은 체질에는 좋지 않다. 멥쌀보다 끈기가 많고 한의학적으로 비위 등 소화기를 튼튼하게 하며 기운을 북돋는 효능을 한다.
대추는 혈액순환 촉진 및 신경안정에 효과적이며 폐와 기관지에 영향을 줘 기침을 멎도록 한다. 특히 체내에 들어오면 비타민A로 활성화되는 베타카로틴이 풍부해 노화를 방지하는데 좋다.
전통적인 방법으로 만든 약식은 두 번에 걸쳐 시루에서 오랜시간 중탕으로 찌기 때문에 부드럽고 잘 굳지 않는다. 또한 쉽게 상하지 않아 오래 두고 먹기에도 적합하다. 최근에는 압력솥, 찜기 등을 이용해 약식을 쉽게 만들 수 있지만 전통방식으로 제조한 약식에 비해 부드러움이 덜하고 쉽게 굳어진다. 꿀과 함께 설탕, 캐러멜 등을 넣을 경우 단맛이 지나칠 때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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