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엠디팩트] 스페인 세비야, 대성당 위용·투우·플라멩고에 빠져

  • 입력 2016년 1월 8일 15시 22분


‘1개월 한인숙박 무료 제공’에 홀려 파워블로거지 신세로 전락 … 투우 보며 문화적 관용 높이다

#. 세비야 1 : 파워블로거지

스페인의 세비야는 치명적인 한 가지만 제외하면 나에게 완벽한 도시였다. 세비야는 스페인 남부 안달루시아 지방에 있는 현지의 맛과 문화, 열정을 모두 느낄 수 있는 대표 도시다. 하지만 많은 여행자들은 바르셀로나와 마드리드에 투자를 하고 이곳은 짧은 일정으로 소화한다. 감칠맛나는 여정 밖 세비야의 모습은 제쳐두고 이번 여행의 가장 큰 오점이었던 경험을 소개한다.

여행이 대중화되면서 여행자들은 많은 여행안내서와 인터넷 정보에 의존한다. 정보의 홍수 속에 보이지 않은 전쟁은 매순간 일어나고 있다. 필자도 블로그를 개인적인 일기의 용도로 오래전부터 사용하면서 이런저런 여행정보를 올리면서 기쁨을 누렸지만 동시에 불행을 불러오는 빌미가 될지 미처 몰랐다.
장기간의 여행으로 한국 음식과 한국인의 정이 그리웠다. 간혹 여행지에서 한국 사람을 종종 만나긴 했지만 한식을 접해본 것은 석 달 전 네팔이 마지막이다. 음식이라는 본능 앞에 세비야의 한인민박으로 향했다. 호스텔과 비슷한 구조의 숙소에서 한국 주인 아주머님과 한국 여행자들, 한국음식이 나를 반겼다.

스페인의 강렬한 햇빛을 피해 여유롭게 시에스타(siesta, 라틴아메리카·지중해 등지에서 이른 오후에 자는 낮잠 또는 낮잠 자는 시간)를 즐기고 있는 나른한 오후였다. 숙소에서 오랜만에 밀린 일기를 작성하고 있는 내게 주인이 다가오더니 소곤거리듯 말을 건넸다. “유럽 여행을 대표하는 카페 A에 숙소 홍보를 위해서는 매달 몇 백만원을 지불해야 하고, 포털의 파워링크 광고 비용도 상당한 수준”이라고 하소연하더니 긴 서론에 비해 명료한 결론을 내렸다. “숙소비를 면제해줄 것이니 우리 숙소를 홍보해 달라”고 했다. 여행의 목적과 어긋나는 행위이지만 그럴 듯한 보상에 내 마음은 심하게 흔들렸다.

결국 “스페인을 여행하는 한 달 동안 한인들이 운영하는 모든 숙소를 소개시켜주겠다”고 약속했다. 즉 여행카페 내에 숙소를 간접홍보하고 내 블로그에 숙소를 소개하는 조건으로 숙박비를 면제받기로 했다. 솔직히 한 달이라는 긴 세월 동안 무료 숙박은 꽤나 매력적인 떡이었다. 마치 무엇에 홀리듯 숙소 주인의 말에 나는 선뜻 ‘그러겠노라’하고 수긍했다.

이 선택이 여정에 큰 스트레스로 다가올 줄은 꿈에도 몰랐다. 매일 원하지 않은 관광지를 방문하게 되고, 원치 않는 숙소의 사진들로 나의 카메라 메모리가 채워졌다. 매일 해가 질 무렵이 되면 숙소에서 혼자 컴퓨터와의 사투를 벌였다. 블로그 홍보는 평균 하루 3시간을 잡아먹는 나의 업무가 돼버렸다. 행여 하루라도 밀리면 다음날 반나절 이상은 붙들려 있어야만 했다. 느린 인터넷 속도와 조작이 불편한 넷북은 나를 더욱 옥죄어 왔다. 하지만 힘든 것은 따로 있었다. 새로운 한인 민박 숙소에 도착하면 은연 중 숙소 사장의 눈치를 봐야 했다. 대부분의 주인들은 크게 내색하지 않고 편하게 보내라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 불편함은 거북함이 되었다.

점점 여행에 대한 정체성을 잃어버렸다. ‘이게 뭐하는 짓일까? 돈에 혹한 순간의 선택이 이렇게 나를 변질시키다니.’ 속상함에 눈물이 핑 돈 적도 있다. 총 다섯 번 숙소를 옮기면서 지독한 계약을 마무리지었다. 물론 이후에 애프터서비스(AS)라는 명목으로 비방글에 대한 댓글을 달거나 글을 조금 더 요청받기도 했다.

‘공짜는 없다’는 세상의 가장 단순한 이치를 간과한 결과가 이런 심리적 스트레스를 가져올 줄은 꿈에도 몰랐다. 이후 여정부터 한인 숙소는 제외했고, 내 자신과의 유일무이한 소통의 장인 블로그와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가끔은 내 자신에게 잠시 창피했던 그 순간을 잊어버리고 싶다.

그들이 나에게만 이같은 제안을 했을리 만무하다. 일부 팩트를 바탕으로 작성된 글도 있겠지만, 소수 혹은 상당수는 그럴 듯한 화려한 포장일지도 모른다. 당신은 아무런 댓가 없이 시간을 투자하는 진정한 파워블로거인지, 아니면 ‘파워블로거지’인지를 꼭 구분해야만 한다. 의도치 않게 또 다른 값진 경험을 가지게 됐다.

#. 세비야 2 : 문화적 차이 투우

파워블로거지로 활동하면서 방문한 의도치 않은 곳들을 제외하더라도 세비야에는 추천할 만한 요소가 상당하다. 정열의 에스파냐 이미지를 대표하는 것은 투우와 플라멩고다. 특히 세비야는 이들의 본고장으로 가히 도시는 1년 내내 축제의 마당이라 할 수 있다.

한국 청도 소싸움에 비한다면 스페인의 투우는 조금 잔인하다. 사전 예약한 티켓을 들고 세비야의 투우 경기장(Plaza De Toros De La Maestranza)으로 향한다. 원형의 투우 경기장은 꽤나 크다. 하지만 어느 좌석이건 코 앞에서 관람할 수 있을 정도로 높지는 않다. 다만 지는 해를 피해 자리를 선정해야 하는 센스는 발휘할 필요가 있다.

축제 서막을 알리는 강렬한 남자의 상징, 투우사가 등장해 장내 행진을 시작한다. 이내 오늘의 용감무쌍한 황소가 등장한다. 관중의 환호성이 터진다. 투우사는 붉은 천(물타레)을 흔들며 암흑의 방에 갇혀 있던 소를 흥분시킨다. 그다지 움직이지 않으며 좌우로 붉은 천을 현란하게 흔드는 투우사의 절제된 조롱이, 미친 듯이 요동치는 황소의 극단적 선택과 역설적으로 어울린다. 이후 짜여진 연출에 맞춰 주연과 조연이 번갈아 가면서 황소와 놀음을 한다. 지쳐가는 황소를 조롱하듯 달래는 투우사의 손짓에 관중들의 환호성은 더욱 커진다. 그 환호성은 황소가 조금 더 버텨주기를 바라는 간절함보다 그들의 쾌락 지속시간을 대변하는 목소리 같다. 20여분의 사투는 최후의 투우사(마타도르)의 등장으로 끝난다.

투우 애호가는 투우의 매력은 인간의 재치가 황소의 용맹무쌍함을 단칼에 제압하는 고상함에 있다고 한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처참한 최후를 맞이한 황소는 인근 고급 레스토랑에 비싼 가격으로 팔린다. 단순한 신의 의식에서 욕망과 즐거움의 수단으로 너무 치우쳐 버린 것은 아닐까?

투우 경기장을 나온 후에도 피를 흘리는 황소의 모습이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징그러움에 미간이 움츠러든다. 피에 흥분하는 아레나 안의 관중들의 모습도 매한가지다. 하지만 이미 스포츠가 아닌 문화로 자리잡은 이 행위를 더 넓은 관점에서 이해하기 위해 노력한다. 마치 우리의 보신탕 문화가 그릇되지 않은 것처럼, 이또한 여행이 나에게 준 문화적 관용이 아닐까.

[TIP 1] 스페인의 많은 도시들이 투우경기장을 갖고 있다. 최근 동물학대로 규정하는 사람이 늘어나면서 규모가 점차 축소되고 있지만 여전히 세비야와 마드리드에서는 투우를 즐길 수 있다. 특히 봄 축제 시즌(4~5월)이 되면 거의 매일 투우경기가 열린다. 스페인 투우 예약 대행 사이트(http://www.servitoro.com/en/bullfighting-calendar)에서 2016년 투우 일정을 확인하고 예약할 수 있다.

#. 세비야에서 즐긴 플라멩고

집시들의 방랑문화가 만들어낸 예술, 플라멩고를 보기 위해 숙소를 나와 세비야의 밤거리를 배회한다. 세비야에는 많은 공연장이 있다. 그 중 여행자로부터 들은 무료 플라멩고 공연장으로 향한다. 허름한 술집 안에는 이미 많은 이들이 무대 부근에 자리를 잡고 있다. 상그리아 한잔을 시키고 무대와 가장 가까운 곳으로 비집고 들어간다.

플라멩고는 안달루시아 지방의 전통 민요와 향토 무용, 기타 반주가 어우러져 있다. 무료 공연장이지만 무대에 있는 예술인들의 비장함이 느껴진다. 집시를 대변하는 남자 무용수의 구두소리가 울린다. 구두 박자의 틈을 무용수가 내는 손뼉 소리가 보충한다. 여기에 잔잔한 기타 선율이 더해지며 본격적인 공연이 시작된다. 반주에 맞춰 남자배우가 노래를 하고 여성 무희가 등장해 우아한 팔 동작으로 춤을 춘다. 때론 절도 있게, 때론 부드럽게 표현하는 모든 동작이 그녀의 표정에서 묻어난다.

그들의 행위는 스페인어로 구사되기에 정확한 노랫가락의 뜻을 알기는 힘들다. 하지만 분명 가슴 아픈 삶의 이야기가 분명하다. 구슬픈 가락과 한서린 춤동작이 무대의 몰입도를 절정에 달하게 한다. 모든 관객들은 그들의 행위에 상당히 매료돼 있다. 삶의 애환이 몸서리치게 전달돼 극도의 전율이 흐르는 순간, 극단적 정지로 한 서막이 끝났음 알린다. 우렁찬 박수소리만이 조그만 바를 진동시킨다.

기교와 가창력이 아닌 순수한 사람 감성만으로 마음을 울리는 플라멩고는 타 도시에서 유료공연으로 다시 찾았다. 일정의 비용을 투자하는 것도 전혀 아깝지 않았다. 아마 한서린 그들의 삶을 가장 잘 표현하는 전통 예술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늦은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숙소로 향하는 거리 곳곳에는 공연이 한창이다. 그들의 열기가 나에게 전해진다. 1년 내내 볼거리와 축제가 끊이지 않는 진정한 스페인의 열정의 도시가 세비야가 아닐까?

[TIP 2] 세비야 플라멩고 공연

여행자들이 많이 찾는 공연장은 플라멩고 무용박물관(Museo del baile flamenco), 엘 아레날(El Arenal), 로스 가요스(Los Gallos) 등이 있다. 가격은 보통 음료 포함 입장료 35~40 유로, 식사 포함 입장료 70유로 수준이다. 공연은 보통 밤 7시 이후에 진행되며, 숙소와 연계된 상품을 이용하거나 예약대행 홈페이지(http://www.flamencotickets.com)에서 직접 예약이 가능하다. 저자가 이용한 무료 플라멩고 공연장은 라 카르보네리아(La Carboneria) 로 한적한 주택가 인근에 위치해 있어 찾아가는 길이 다소 어렵지만 무료 공연의 퀄리티는 기대 이상이다.
La Carboneria 주소 : Calle Levies, 18,41004 Sevilla,

[TIP 3] 세비야 볼거리

△세비야 대성당

세비야 대성당은 바티칸의 산 피에트로, 런던 세인트 폴에 이어 유럽에서 세 번째로 큰 성당이다. 성당 내부로 들어가면 하늘을 찌를 듯한 천장 높이와 웅장함에 탄성이 절로 나온다. 성당을 지탱하는 기둥들을 보면 인간에 대한 경외심마저 든다. 성당 내부에는 중세 왕들의 유해가 안치돼 있다. 특히 남문에 위치한 콜럼버스의 묘가 유명하다. 죽어도 스페인 땅을 다시 밟지 않겠다는 그의 유언에 따라 4인 국왕 조각상이 이를 받들고 있다. 앞 조각상의 발을 만지면 사랑하는 이와 다시 이곳에 온다는 속설이 있어 유독 발등이 닳아 있다. 성당 내부를 둘러본 후 히랄다탑에 올라가면 한눈에 세비야의 전망을 볼 수 있다. 미사가 있는 일요일 오전에는 무료입장할 수 있다.

△ 목조 전망대(Space Metropol Parasol)

엥카르나시온 광장(Plaza de la Encarnacion) 주변에 위치하고 여섯 개의 파라솔 모양으로 구성돼 있어 쉽게 찾을 수 있다. 2011년 완공된 만큼 세비야의 오래된 거리와 그리 어울리지 않게 세련된 모습이다. 전망대의 곡선 형태 목조 계단을 걷다보면 세비야의 360도 전경을 볼 수 있다. 하지만 30m의 낮은 높이임에도 불구하고 설치된 난간이 훌륭한 사진을 방해한다.

△ 스페인광장(PLAZA DE ESPAnA)

10여년 전 모 CF에서 유명 여배우가 등장해 플라멩코를 췄던 장소이자, 영화 ‘스타워즈2’의 배경이 된 곳으로, 1900년도에 지어진 것이 놀라울 만큼 웅장하고 섬세하다. 초승달처럼 생긴 건물을 끼고 있는 광장 주변에는 강물이 흐르고 현지인들이 주변을 산책하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밤이 되면 광장 중앙의 분수와 건물들의 화려한 조명이 더욱 이곳을 빛나게 한다. 세비야에 온다면 꼭 한번은 들러볼 만한 곳이다.

[TIP 4] 맛집

세비야에서 방문한 많은 타파스 맛집 중 가격이 저렴하고 솜씨가 훌륭한 식당으로 ‘엘스라바 레스토랑’(Eslava Bar Restaurante)을 꼽을 수 있다. 특히 이곳을 타파스 경연대회 1위로 만든 우에보(Huevo) 메뉴는 꼭 한번 먹어보길 추천한다. 반숙 메추리알과 부드러운 버섯이 조화돼 달콤한 와인 소스로 맛을 낸 게 특이하다. 레스토랑의 실내는 모던한 인테리어 구조로 이뤄져 있고, 외부 테라스가 여행의 맛을 더한다. 다만 유명세에 비해 좁은 크기에 웨이팅 시간이 걸린다. 일요일 저녁시간과 월요일은 휴무이며 홈페이지에서 예약이 가능하다.

- 영업시간 : 화요일~토요일 13:30~16:00, 21:00~23:30, 일요일 13:30~16:00
- 주소 : Espacio Eslava Eslava, 3 41002 Sevilla
- 홈페이지 : http://www.espacioeslava.com

이밖에 인지도 높은 레스토랑 ‘아조티아(la azotea)’ 에서 다양한 타파스와 ‘틴토 데 베라노’(Tinto de verano, 여름의 레드와인) 한잔으로 지친 목을 축이는 것도 좋다. 후식을 즐길 수 있는 곳으로는 100년의 전통이 있는 ‘코메르시우(Bar El Comercio)’에서 농도 짙은 핫초콜릿과 츄러스를 먹어 볼 것을 추천한다.

장기백 여행칼럼니스트 eyebuson@gmail.com
* 본 기사의 내용은 동아닷컴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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