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평균 수면 시간 4시간, 공부 시간 15시간 30분, 식사시간 1시간. 24살 공무원 준비생의 하루는 바쁘고 치열하게 돌아간다. 커피 한 잔이 삶의 낙이라는 취준생을 만났다.
에디터 송현진 포토그래퍼 윤동길 촬영협조 공단기학원
바야흐로 취업난 시대다. 지난 11월, 청년실업률은 8.1%로 넉 달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근래에 실업률이 낮아졌다는 보도가 있었으나 이는 취업준비생(이하 취준생)을 구직단념자로 정의해 포함하지 않은 것으로, 실제 체감실업률은 10%를 넘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젊은 취준생들은 고시생들의 메카인 노량진으로 향한다.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고용이 안정적인 직업을 택한 것이다. 통계로 봤을 때 취업준비생의 35%는 공무원 준비를 하는데, 이는 3명 중 1명꼴인 셈이다.
안정적인 미래를 위해 자유를 버리고, ‘무조건 합격’이란 꿈만 가지고 하루하루를 점수와 싸워가는 노량진의 취준생들. 대학을 졸업한 지 갓 1년 된 김은비(24세) 씨 역시 이곳에서 9개월 째 공무원 준비를 하고 있었다.
“솔직히 하루에 수백 번도 더 불안해요. 정말 붙을 수 있을지, 만약 떨어진다면 주위에서 어떻게 볼지, 부모님의 실망감은 어떨지.”
Q. 무슨 공부 중이에요?
9급 공무원을 준비하고 있어요. 단계가 제일 낮긴 하지만 만만치 않아요(웃음). 공부한 지는 9개월 정도 됐어요. 원래 집은 강원도인데 제대로 하려고 3월부터 학원 근처 고시원에서 살고 있어요.
Q. 일과가 어떻게 되나요?
오전 6시 30분에 일어나요. 씻고 7시에 학원으로 출발하는데, 학원 바로 앞 고시원에 살아서 3분이면 도착해요. 7시 30분부터 영어테스트를 봐요. 수업 시작하는 9시까지 오답 노트를 작성하고, 오후 1시까지 오전 수업을 해요. 1시부터 2시까지는 점심시간인데 30분만 쓰고 나머지 30분은 자습해요. 2시부터 6시까지는 오후 수업이고, 저녁 6시에 30분간 저녁식사를 하고 6시 반부터 10시까지가 정해진 자습시간인데 보충수업이 있을 때도 있어요. 저는 밤 11시 30분까지 자습하다가 나와요. 이렇게 해도 하루 수업을 모두 정리하기에는 시간이 부족해요. 그래도 다음 날을 생각해서 이 시간을 넘기지 않으려고 해요. 집에 와서 씻고 나면 12시인데 다음날 테스트 공부를 1시간 정도 하고 나서 자요. 아, 자기 전에 엄마와 통화하고요. 하루의 마지막은 항상 엄마와의 통화로 마무리해요. 위안과 안정이 돼요. 주말 일정도 평일과 거의 비슷해요.
Q. 아침은 안 먹나 봐요?
아침을 먹을 바에는 그냥 자는 게 낫죠(웃음). 아침은 걸러요. 점심은 고시식당에서 한 달 식권을 끊어놨어요. 한식뷔페인데 한 끼에 3,500원이에요. 저녁도 끊어놓을까 하다가 질릴까 봐서 그냥 학원 친구들하고 빵이나 김밥으로 대충 때워요. 같이 먹을 때도 있는데 시간이 좀 아깝거든요. 늘 자습시간이 부족해요. 그렇다고 밤을 새우면 다음 날에 지장이 있고. 그래서 공부하면서 먹을 때가 많아요. (공부하면 배가 금방 고프지 않나요?) 아무래도 머리를 계속 쓰니까 그렇긴 한데……. 공부할 게 너무 많아서인지 가끔은 입맛도 없어요.
Q. 건강은 어때요?
솔직히 말하면 안 좋아요. 자주 소화가 안 되고요. 끼니를 자주 거르기도 하고, 밖에서만 사 먹으니까요. 최근에 슬럼프가 오면서 더 안 좋아져서 일주일 정도 병원 신세도 지고, 저번 주에는 아예 집에 내려가서 요양하다 왔어요. 운동할 시간이 없으니까 더 심해지는 것 같아요. 운동을 하려고 해도 그 시간에 공부와 잠을 택하는 편이죠.
Q. 공무원이 원래 꿈이었나요?
원래는 언론 쪽에 관심이 있었어요. 재수를 생각한 적도 있었는데 여차여차해서 행정학과에 들어갔어요. 그렇게 4년을 공부하다보니 행정공부를 더 하고 싶어졌어요. 공무원이라는 직업이 안정성도 있고 여자로서 복지도 좋고요. 제가 장녀이기 때문에 안정성을 무시할 수 없었고, 그래서 대학 졸업과 동시에 자연스럽게 공무원 공부를 하게 되었죠.
에디터가 취준생 인터뷰를 기획했을 때만 해도, 신림동 고시촌에서 늘어난 추리닝을 입고 안경을 코에 걸친 채, 끊임없이 하품하는 피곤한 모습의 취준생을 떠올렸었다. 하지만 김은비 씨는 그러한 모습과는 달리 발랄하고 긍정적인 에너지가 많았으며, 깔끔한 용모를 갖추고 있었다.
Q. 굉장히 발랄해 보여요.
그래 보이나요? 원래 성격이 그래요. 그리고 가급적 옷도 깔끔하게 입으려고 노력하는 편이에요. 옷이라도 예쁘게 입어야 덜 우울하잖아요.
Q. 연애하는 거 아니에요?
아니요. 공부 시작할 때 남자친구가 있었는데 헤어졌어요, 공부 때문은 아니었지만, 지금은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제가 워낙 열정적인 스타일이라 공부만 하는 게 낫더라고요. (학원에 커플 많죠?) 정말 많아요. 스터디 하면서 많이 생기죠. 학원이 일종의 연애 학교가 된 것 같아요. 장단점이 있겠죠. 서로 열심히 하는 커플도 있고, 반면에 공부에 소홀해지는 커플도 있어요.
Q. 스트레스 많죠?
많죠. 이건 정말 자신과의 싸움이에요. 제가 혼자 하는 거잖아요, 절대 누가 해줄 수 없는. 시험이 6월에 있으니까 반년도 채 안 남았어요. 솔직히 하루에 수백 번도 더 불안해요. 정말 붙을 수 있을지, 만약 떨어진다면 주위에서 어떻게 볼지, 부모님의 실망감은 어떨지.
Q. 슬럼프는 어떻게 이겨내고 있나요?
슬럼프가 갑자기 찾아왔던 것 같아요. 문득 ‘내가 아침부터 뭐하고 있는 거지?’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학원에도 반마다 담임선생님이 계시거든요. 많이 상담하고 한강다리를 뛰기도 했죠. 게다가 주위 친구들이 이제 막 취업할 나이잖아요. 취업했다는 얘기 들으면 축하하면서도 부럽고 불안하고 자극돼요. 우울해질 때도 있는데… 합격하기 전까지는 견딜 수밖에 없는 일인 것 같아요.
수업과 자습이 진행되는 교실은 앞에서부터 뒤에까지 책상이 다닥다닥 붙어있다. 약 80명이 함께 공부하는데 책상 사이가 좁은 만큼 동선도 자주 부딪힌다. 온종일 같은 공간에서 공부하는 것이 답답한 학생들은 복도에 나가서 공부하기도 한다. 복도 사물함 앞에는 일반 책상과 키다리 책상이 있고, 정수기 앞쪽에는 모의고사 등의 성적표가 붙어있다.
Q. 만약에 시험에서 떨어지면 어떻게 할 거예요?
또 해야죠. 2년 보고 있어요. 그때도 떨어지면……. 솔직히 많이 불안해요. 근데 지금은 웬만하면 걱정은 안 하려고 해요. 똑같이 스트레스 받을 거, 차라리 그때 가서 걱정하려고요.
지난해 말, 몇몇 대기업은 구조조정의 범위를 20대까지로 확장했다.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신입사원의 티오도 적어졌다. 통계청이 조사한 지난 하반기 실업률 수치의 상승을 보면, 현 상황에서 청년 실업률은 딱히 나아질 조짐이 보이지 않는다.
이에 따라 정부와 여러 취업 관련 업체들이 다양한 정책이나 프로그램들을 마련하고 있다. 정부의 경우, 다수의 청년을 위한 정책들을 시행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인지도와 이용률은 낮은 편인데, 청년 취준생들은 개인별 맞춤 프로그램이 부족하다는 이유를 우선적으로 꼽았다.
이를 반영하여 현재 정부에서는 중소기업의 인턴 기회를 제공하는 ‘중소기업 청년취업인턴제’, 해외취업을 지원하는 ‘해외취업지원 K-MOVE스쿨’, 대학생•사회초년생 등을 위한 저렴한 공공임대주택인 ‘행복주택’ 등 분야별로 다양한 맞춤형 프로그램들을 발전시키고 있다.
“공부가 가장 쉽지”라는 말은 어찌 보면 무례한 말일지도 모르겠다. 하루하루가 불안하지만 그래도 붙을 수 있다는 그 희망 하나로 내일을 위해 오늘도 버티고 있다. 신년이 밝았다. 자고로 신년은 새로운 소망을 의미한다. 어떤 위로의 메시지보다 이 말 한마디를 해주고 싶다. “힘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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