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혈량이 급감하는 방학철이 되면 병원마다 혈액 부족을 호소하는 곳이 많다. 올해 겨울 혈액 재고량도 하루 혈액 필요량의 2, 3일 치 수준인 날도 많았다. 혈액 재고량이 5일 치는 있어야 정상이지만 15일 대한적십자가 밝힌 혈액 재고량은 3.6일 치다.
혈액 부족 사태는 감염병이 돌아 헌혈 기피 현상이 확산될 때 더욱 심해지는 경향이 있다. 2009년 신종플루와 지난해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 당시에는 혈액 재고량이 2일 치 아래로 떨어지기도 했다. 보건 당국은 지카 바이러스 유행 여파로 헌혈량이 줄어들까 전전긍긍하고 있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지카 바이러스 발생국에 다녀오면 한 달가량 헌혈을 하면 안 된다. 이런 현상이 혈액 부족 사태로 이어질 수 있어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고 밝혔다. 더 큰 문제는 혈액 부족 사태가 만성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정부도 헌혈 참여 독려 이상의 근본적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미국 등 선진국에서는 혈액 부족을 해결하기 위해 수혈 감소 정책을 펴고 있다. 미국은 지난 5년 동안 수혈량이 약 40% 줄었다. 수술 등 치료 과정에서 수혈을 최대한 줄이는 치료법을 개발하고 보급하는 데 앞장선 성과다.
박종훈 고려대안암병원 정형외과 교수는 “다른 사람의 피를 자신의 몸에 주입하는 수혈은 부작용 가능성이 있다”며 “혈액 부족 만성화를 해결하려면 무수혈 수술 등 패러다임 변화가 절실하다”고 지적했다.
고용량 철분주사를 활용하는 방법이 대표적인 수혈 감소 치료법이다. 고용량 정맥철분주사제는 철분을 환자의 정맥에 주입해 적혈구 내 산소를 운반하는 헤모글로빈의 농도를 증가시키는 약제다. 출혈이 예상되는 수술을 하기 전 주사제를 투입하면 수혈량을 줄일 수 있고, 적정 헤모글로빈 유지에도 유리하다. 이 주사제는 암을 비롯해 인공관절, 제왕절개, 심뇌혈관질환 등의 분야에서 활용되고 있다. 미국 등 20여 개국에서 시행되고 있다.
실제로 대장절제 수술 이전에 고용량 철분주사제를 투여 받은 환자는 9.9%만 수혈이 필요했다. 하지만 주사제를 맞지 않은 사람은 38.7%가 수혈을 받아야 했다.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서 인공고관절치환술을 받은 김은선 씨(63)도 무수혈 수술의 효과를 체험했다. 평소 같으면 수술 중 400cc 이상의 수혈이 필요할 것으로 예상됐지만, 고용량 철분주사제를 투여받고 헤모글로빈 농도를 유지하면서 수혈 없이 수술을 마쳤다. 김 씨는 “수술 후 하루 만에 몸 상태가 정상으로 돌아왔다. 회복이 빠르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국내에서도 무수혈 수술을 위한 기술 개발이 활발하다. 국내 회사가 출시한 고용량 철분주사제는 1000mg의 철분을 15분 만에 투여받으면 돼 치료 시간이 단축됐다. 기존까지의 정맥철분주사제는 고용량 투여가 어려워 여러 번 병원을 방문해야 했고, 1회 투여 시 40분 이상 소요됐다. 박 교수는 “고용량 철분주사가 더 활성화돼 만성적인 혈액 부족 사태가 해결되는 데 보탬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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