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모르는 병원의 숨은 스텝① 인간적 중재자, 암 전문 코디네이터

  • 입력 2016년 2월 19일 16시 34분


우리가 모르는 병원의 숨은 스텝 ①
인간적 중재자, 암 전문 코디네이터

병원에는 의사와 간호사만 있는 것이 아니다. 수많은 전문직 스텝들이 같이 움직이며 의료서비스를 지원하고 있다. 그러나 잘 드러나지 않기에 그 중요도에서 뒤처진다는 인상을 주기 마련이다. 하지만 업무 강도나 전문성에서 결코 뒤떨어지지 않으며, 환자를 위한 마음도 작지 않다. 우리가 모르는 병원의 숨은 스텝들을 소개한다.

연세암병원은 2014년에 개원했다. 연세대학교 의료원에 속해있지만, 엄밀히 말해 신촌세브란스병원과는 다른 독립병원이다. 그러면서도 건물 전체가 세브란스 병원 본관과 연결되어 거대한 협진 시스템을 이루고 있다. 암병원은 층별로 암종별 전문센터들이 나뉘어 있다. 인터뷰를 약속한 암 전문 코디네이터가 근무하는 곳은 5층 유방암 전문센터였다.

환자의 속사정 나누는 벗

당황스럽고 두려운 현실 앞에서 환자들은 방향을 잃게 마련이다. 암 전문 코디네이터들은 그들의 마음을 위로하고 궁금증을 해결해주는 파트너 같은 사람들이다.

연세암병원 유방암센터는 깨끗하고 밝았다. 시설도 카페처럼 분위기 있고 접수처 간호사들도 친절하고 여유가 넘쳐 보였다. 하지만 진료를 기다리는 여성들의 얼굴에는 긴장감과 어두운 그늘이 드리워져 있었다. 진료실은 학원 클래스처럼 10여 개가 죽 이어져 있고, 그 앞에는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는 환자와 보호자가 무표정하게 앉아 있었다.

그 사이, ‘상담실’이라는 공간에 유방암센터 암전문 배영숙 코디네이터가 근무하고 있다. 아담한 크기에 작은 공간이지만, 코디네이터와 환자가 소박하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공간으로는 충분했다.

“2014년 연세암병원이 개원하면서 암 전문 코디네이터가 생겼어요. 하지만 우리 병원은 2005년부터 코디네이터 개념이 있었어요. 초기에 외래과별로 근무하셨던 코디네이터들이 계셨죠. 유방암 센터에 계셨던 제 선임 코디네이터가 우리 병원 1호 코디네이터였습니다.”

암 발병률이 늘어나면서 그에 대한 전문적인 상담과 생활 전반을 코칭해 줄 수 있는 전문가의 수효도 늘었다. 국가암정보센터에서 발표한 암발병률의 추이를 보면 1999년 10만 명이 조금 넘던 환자수가 2013년에는 연간 22만 명을 넘어섰다.

“많은 암 환자가 겪는 어려움 중에 하나가 암 진단을 받고도 그에 대한 상세한 설명을 듣지 못한다는 것이죠. 대학병원의 경우에도 1, 2차 병원을 거쳐 온 많은 환자를 수용하다 보니 본의 아니게 소홀한 부분이 발생할 수 있어요. 그리고 암 환자가 받아야 하는 검사만 해도 10여 가지가 넘다보니 일일이 상세한 설명을 못 해주는 경우도 발생합니다. 그래서 이를 해소해줄 수 있는 전문 코디네이터의 수효가 꾸준히 늘고 있어요.”

암은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다. ‘곧 행복이 찾아오겠지’라는 믿음으로 열심히 살아가는 이들에게 갑자기 닥쳐온 암은 청천벽력과 같은 일일 것이다. 그 당황스럽고 두려운 현실 앞에서 환자들은 방향을 잃게 마련이다.

암 전문 코디네이터들은 그들의 마음을 위로하고 어떻게 이 위기를 같이 극복할 것인지를 알려주는 파트너 같은 사람들이다.

“외래에서 담당 전문의가 환자에게 암 수술을 하자고 하면, 코디네이터가 환자의 검사나 진료스케줄 등을 담당하게 됩니다. 환자가 보호자와 함께 오는 경우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고 개인마다 사정들이 다 달라요. 각자에게 맞는 관련 의료서비스를 코디해 주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반대의 입장에서 생각하면 이러한 코디네이터 업무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어요. 그래서 업무량이 적지 않죠. 때론 많은 환자가 몰릴 경우 환자와 의사, 간호사와 환자 사이를 중재하는 일도 코디네이터가 맡게 되죠. 홍보팀과도 연계하여 관련 자료를 제출하는 일도 있어요.”

베테랑 간호사로 구성된 전문 의료인

연세암병원에서 근무하는 암전문 코디네이터는 20여 명 가량이 된다. 센터마다 차이가 있지만, 일반 병동에서 수년간 근무한 베테랑 간호사들로 구성되어 있다. 고경력자에 전문적인 부분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다.

“암전문 코디네이터는 간호사 인력에서 충원하게 되는데 아무래도 전문적인 영역에 관한 이해나 지식이 필요하기 때문이죠. 늘어나는 의료서비스에 비해 의료 인력이 부족하다보니 간호사도 더욱 전문화되고 있어요. 과거 의사들이 담당했던 일 중에 간호사가 보충할 수 있는 부분에 대해 이해하고 필요에 따라서는 신속하게 대처할 수 있어야 하죠. 그래서 과거보다 공부를 더 많이 해야 해요. 저 같은 경우에는 외부 학회나 콘퍼런스에 가입해서 전문적인 지식을 꾸준히 보강해가고 있어요. 병원 내부에서도 교수님들과 매주 콘퍼런스를 열어 최신 의료정보나 현장서비스를 업데이트하고 있습니다.”

전공의 특별법에 따라 전공의들은 주 80시간 이상 근무를 하지 못하게 되어있다. 예전처럼 전공의나 인턴의사들이 집에도 못 가고 제대로 씻지도 못한 채 현장에서 눈코 뜰 새 없이 지내는 일이 줄어들게 되었다. 그렇다고 단기간에 전공의 정원이 늘어나는 것도 아니므로 간호사의 전문성이 더욱 강화되게 되었다.

“전공의 선생님들이 진단과 치료에 관한 지시를 한다면, 저희는 환자에게 필요성과 과정에 대해 설명해 줍니다. 유방암의 경우, 재발을 막기 위해 유방 전부를 제거해야 하는 경우도 있어요. 그런 경우, 환자는 여성성을 잃는 것에 대한 심리적 고통을 겪죠. 그리고 남편과의 관계, 직장과 아이들에 대한 문제, 가족들에게 암을 알려야 하는 부담감 등 다양한 문제들이 발생해요. 그리고 결혼을 앞둔 신부가 유방암에 걸려 고민하는 경우도 있었죠. 그런 환자와 주위 가족들을 위로하고 안정된 상태로 수술을 받을 수 있도록 정서적인 지원을 하는 것도 저희 같은 코디네이터들의 역할이에요.”

배영숙 코디네이터는 일반 병동에서 5년, 유방암센터에서 5년 그리고 유방암 전문 코디네이터로서 2년 차에 접어들었다. 총 12년의 경력 동안 그녀가 익히고 배운 현장 감각과 임상이 환자를 위로하는 힘이 되었다.

“보람된 일이지만, 어려운 점도 많아요. 암에 걸리게 되면 어쩔 수 없이 굉장히 예민해지거든요. 심한 표현을 쓰면서 컴플레인을 제기하는 분도 계시고 우울증에 빠져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경우도 있어요. 그래서 최대한 입장을 바꿔 생각해보려고 해요. 저도 여자고 엄마고 아내이기에 이해가 가요. 특히 여성들의 경우는 호르몬의 영향으로 굉장히 힘들어하는 부분이 있어요. 항암치료를 받으면 머리가 빠지고 몸이 너무나 힘든데, 그런 상태로 집안일을 해야 하고 자식들과 부딪혀야 하고……. 참 힘든 일이죠. 제가 더 많은 부분을 심리적으로 챙겨드리지 못하기에 정신과 상담을 받으시도록 권하고 있어요.”

전문 코디네이터의 수요와 필요성 늘어

전공의 인력이 부족하고 의료 서비스에 대한 요구가 늘면서, 각급 병원에서는 전문 코디네이터들의 수요가 많아지고 있다. 대학병원이나 종합병원들에서 전문 코디네이터의 위상과 역할이 높아지고 있다.

“과거 초기 코디네이터들이 수술준비 과정에 대한 설명을 주로 했다면, 지금은 환자의 스케줄은 물론 전반적인 사항을 다 체크해야 해요. 관련해서 데이터 매니저가 통계자료를 분석해 줘요. 그래서 상담의 효율성을 높여주죠. 한 환자에 대해 본 상담 이외에도 평균 2~3번 정도는 추가 상담을 진행하고, 많을 때는 하루에 20여 명 가량의 상담을 진행하다보면 정신없을 때가 많아요. 저 같은 경우는 지원이 아닌, 전임자의 자리를 채우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직책이 주어진 것인데, 하다 보니 이 일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를 실감하고 있어요.”

배 코디네이터는 암 전문 코디네이터로 발령을 받으며, 사실 많은 부담감을 안아야 했다. 당시 아이가 어렸고 둘째 아이를 낳을 계획도 있었다. 그런 가운데 매년 유방암 발병률이 올라가며 연세암병원 같은 선진화된 센터로 환자들이 몰리고 있었다. 유방암 코디네이터들의 업무와 중요성이 강화되는 시점이었다.

“요새는20대에도 유방암이 생겨요. 식생활, 스트레스, 가족력, 기타 환경적인 요인으로 유방암 발병률이 높아지고 있죠. 그러다보니 유방암 코디네이터의 수효가 지속적으로 높아질 거로 생각해요. 물론 현재는 일이 고되고 힘든 측면도 많지만, 형평성과 합리성을 고려해서 나아질 거예요. 전 개인적으로 이곳 연세대학교를 나왔고, 첫 직장이고, 여러모로 참 좋은 병원이라고 생각해요. 자부심과 책임감을 가지고 열심히 일하고 있어요.”

배영숙 코디네이터는 일이 밀려서 식사를 거르는 경우도 있고, 늦게 퇴근해서 허기를 달래기 위해 폭식하는 경우도 있다고 말한다. 맞벌이하느라 아이를 시부모님께 맡기고 주말에만 겨우 보는 정도인데, 아이가 금요일만 되면 엄마·아빠를 만난다는 생각에 들뜬다고 한다. 암 환자들의 속 깊은 사정을 들어주는 직업이지만, 정작 코디네이터들의 사정은 말할 곳이 없는듯했다. 그래도 전문 의료인으로서의 자부심과 책임감을 항상 가슴에 새긴다고 했다.

“일과 육아를 병행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죠. 코디네이터로 오기 전에 정말 고민한 부분이기도 해요. 그런 와중에 병원 내에서 운영하는 상담코칭센터와 동료분들의 조언이 많은 도움이 되었어요. 공부를 더 하면 제가 가진 한계를 극복하고 더 많은 것들을 보게 될 거라고 했는데, 그 말이 맞는 말이었어요. 지금은 종양 전문 간호사 자격증 취득을 위해 공부를 하고 있어요. 더 좋은 서비스를 하기 위해 꾸준히 노력해야죠. 코디네이터에겐 자부심과 책임감, 그리고 인간적인 애정이 중요하다고 봐요.”

사람이 중심인 의료서비스를 실현하다

‘치료라는 것도 결국 사람이 하는 게 아니겠느냐’는 생각이 들었다. 의사, 간호사, 상담 코디네이터 그리고 많은 병원 스텝들이 환자의 무너진 건강과 삶의 밸런스를 바로 세우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병동에 있을 때도 많은 것을 배웠지만, 이곳 외래에 와서 또 다른 점을 배우고 느끼고 있어요. 암 진단을 받았지만, 어떤 분은 완치해서 아이를 낳아 데리고 오시는 경우도 있고, 어떤 분은 생명을 잃는 경우도 있죠. 그 모든 과정의 중심에 사람이 있어요. 그렇기에 병원만큼 인간적인 정이 필요한 곳도 드문 것 같아요. 그런 면에서 우리 병원은 참 좋은 병원이라고 생각해요.”

예민한 암 환자들에게 고객서비스를 제공하는 감정노동자이기에 암 전문 코디네이터는 쉽지 않은 직업이다. 배 코디네이터는 업무 스트레스를 어떻게 풀까.

“역시나 가족이 가장 큰 힘이 되는 거 같아요. 남편하고 이야기도 많이 하고 시간 내서 영화도 보고 그래요. 그래도 모든 피로를 씻어 내리게 하는 것은 우리 아이의 웃음이에요. 둘째 아이도 꼭 낳을 거예요. 그리고 이런 인터뷰 기회를 통해 다시 한 번 마음을 다잡는 기회가 되는 거 같아요. 드러나지 않지만, 병원 구석구석에서 묵묵히 일해주시는 공헌자분들이 많으세요. 그런 분들의 이야기가 앞으로도 많이 실렸으면 좋겠어요.”

암 코디네이터들은 오늘도 각 병원에서 낮밤 가리지 않고, 환자들에게 위로와 희망을 안겨주며 상담과 스케줄을 잡고 있을 것이다. 의료 현장의 인간적 중재자인 코디네이터들의 수고와 노력이 의료서비스의 질을 높일 것으로 기대해본다.

촬영협조 = 연세암병원
글/취재 = 동아닷컴 라이프섹션 임준 객원기자, 촬영 = 윤동길 객원사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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