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의 금기’ 봉인 해제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6월 9일 03시 00분


양말에 샌들, 청바지에 청재킷, 슈트에 스니커즈…

한때 최악으로 치부됐으나 이젠 트렌드가 된 샌들과 양말의 조합 패션.
한때 최악으로 치부됐으나 이젠 트렌드가 된 샌들과 양말의 조합 패션.
질문: 고민이 있습니다. 제 남자친구가 만날 때마다 샌들에 양말을 신고 나옵니다. 양말을 제발 벗으라고 해도 자신의 취향이라면서 고집을 부립니다. 이런 남자친구 어떻게 할까요?

답변: 헤어지세요.

몇 년 전 인터넷에 올라온 고민 상담 중의 하나다. ‘양말에 샌들.’ 남녀를 불문하고 최악의 패션으로 불렸던 조합이다. 1980, 90년대 일부 남성들이 이 스타일로 산이나 바닷가를 거닐던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었지만 어느새 패션의 ‘금기’가 됐다. 샌들에 양말을 신으면 ‘패션 테러리스트’라고 불리기도 했다.

청바지에 청재킷으로 코디한 ‘청청’ 패션.
청바지에 청재킷으로 코디한 ‘청청’ 패션.
바지에도 절대 하지 말아야 할 금기가 있었다. 다리 길이에 맞춘다고 바지 밑단을 그냥 자르는 것이다. 이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의상 수선집에 가서 청바지의 맨 밑단을 살려 청바지를 수선하곤 했다. 일명 ‘청청’ 패션도 금기였다. 청바지에 청재킷을 입으면 ‘촌스럽다’ ‘패션을 모른다’ 등의 얘기를 들었다.

최근 이런 ‘패션 금기’들이 사라지고 있다. 심지어 패션 테러리스트라는 비난을 받았던 샌들에 양말 조합은 몇 년 전부터 패션쇼에 등장하기 시작했다. 지난해 여름부터는 연예인들도 당당하게 양말에 샌들을 신고 나타났다. 인터넷 패션 커뮤니티 사이트에서는 샌들에 어떤 양말을 신으면 좋을지 문의가 심심찮게 올라오고 있다. 한 양말 판매전문점 관계자는 “여름에는 신발을 신을 때 보이지 않는 덧신 양말이 인기가 좋았는데 올해는 발목 긴 양말들이 잘 팔리고 있다”고 말했다.

금기에서 유행이 된 정장-스니커즈의 조합(사진 위)과 커팅 진.
금기에서 유행이 된 정장-스니커즈의 조합(사진 위)과 커팅 진.
청바지도 이젠 밑단을 살리면 촌스럽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다. ‘커팅 진’이라고 불리며 연예인들 사이에서도 유행이다. 금기가 아예 유행이 됐다. 아예 이렇게 만든 청바지를 판매하는 업체들도 생겼다. 청바지에 청재킷을 입으면 이제는 ‘유행 좀 아는’ 사람으로 통한다.

이전에 금기였던 조합과 패션이 어떻게 이런 대접을 받는 존재가 된 것일까. 전문가들은 소비 형태를 바꾼 전 세계적인 불황과 1980, 90년대 복고의 유행, 그리고 취향을 더 우선시하는 문화를 꼽았다. 패션 컨설턴트 남훈 대표는 “불황이 계속되다 보니 사람들이 새로운 옷을 사기보다는 기존에 가지고 있던 아이템으로 변화를 주고 있다”며 “양말과 샌들도 새로 사야 하는 것이 아닌 기존에 있던 것을 조합한 것”이라고 말했다.

드레스셔츠를 대신한 티셔츠와 슈트의 조화.
드레스셔츠를 대신한 티셔츠와 슈트의 조화.
최근 대중문화에서 1980, 90년대를 배경으로 한 드라마가 유행하고 그때 10, 20대를 보냈던 30, 40대가 소비의 가장 큰손으로 떠오른 것도 원인 중 하나다. 패션 디자이너 허환은 “80, 90년대 패션을 포함한 문화 전체가 세계적으로 떠오르고 있다. 더이상 그때의 패션과 문화를 촌스럽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패션과 문화가 유행이 아닌 취향의 공동체로 넘어가고 있다는 점도 이런 현상을 더욱 가속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문화평론가 김헌식은 “패션과 문화에 대한 관점이 시대나 세대에 갇히지 않고 개인들의 취향으로 넘어가고 있다.

김동욱 기자 creating@donga.com
#패션 금기#봉인 해제#양말에 샌들#청바지에 청재킷#슈트에 스니커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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